한화테크윈의 한국항공우주(KAI)의 지분매각 소식에 업계는 당황했다. 하지만 한화테크윈인 두산DST 인수전 참여에 뛰어들자 일부 의문은 해소됐다. 큰 틀에서 보면 한화그룹은 여전히 방산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한화그룹이 국방 항공산업을 포기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화그룹은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가격변동성을 고려해 여전히 KAI에 대한 지분 확보 및 인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KAI인수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병력이 줄어드는 대한민국과 안보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형국에서 방산업을 바라보고 있는 한화그룹의 행보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014년 말 삼성그룹과의 빅딜로 인수했던 한화종합화학, 한화테크윈의 실적이 한화의 실적에 연결됐다. 그러나 한화의 지난해 3분기 연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75.3% 급락한 1024억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실적부진 배경에는 작년 3분기 기준 한화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건설이 있다. 한화건설은 해외플랜트 준공 임박에 따른 예정 원가 상승 및 미착공 주택사업장 비용 반영으로 작년 3분기 2836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지난 15일 한화건설은 이라크 정부로부터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 기성액 1억6600만 달러(약 2000억원)를 수령했다며 긍정적인 소식을 전했지만 한화 주가는 이후에도 내림세를 지속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눈치다.

▲ 한화그룹 지배구조(보통주 기준) 출처:한화그룹

한화생명은 고수익 보장성 판매를 통한 위험률차익 증대 노력을 지속함과 동시에 지속적인 비용절감·손해율 안정화 등 경쟁력 향상에 집중하고 있으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한화건설과 함께 한화그룹 실적의 ‘불효자’로 한화생명도 꼽힌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26.5% 하락한 1298억원을 기록하면서 한화의 실적 부진을 부추겼다. 보장성 보험 중심의 신계약 성장으로 같은 기간 수입보험료가 증가하고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운용자산 이익률 하락 등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화그룹 전체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3분기 신규 편입된 한화테크윈의 실적은 240억원의 신규실적으로 반영됐으며 같은해 2분기부터 연결되기 시작한 한화종합화학도 실적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 줄어드는 병역자원...무기 구매비용은 증대

현재 한화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꼽히고 있는 부문은 방산과 화학부문이다. 이중에서도 방산부문은 여타 사업대비 중심적 열할을 하고 있다. 최근 한화그룹 방산부문의 주력 계열사라할 수 있는 한화테크윈이 약 10%를 보유하고 있던 한국항공우주(KAI)의 지분 중 약 5%를 블록딜하면서 당시 업계는 뜻밖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의문이 일부 해소됐다. 한화테크윈이 관심없을 것으로 예상됐던 두산DST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두산DST는 장갑차 중심의 지상 기동무기에 특화돼 있다.

기존에는 항공기부품을 생산하는 한화테크윈과 시너지를 위해 KAI 인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화탈레스가 각종 전장에서 활용되는 시스템 생산에 주력하고 있어 두산DST 인수전 참여는 사업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한화그룹은 지난 2014년 삼성그룹과의 빅딜로부터 이어진 방산업 역량을 강화시키고 있다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화그룹이 방산업에 치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지정학적 특성상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4% 달하는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라는 지정학적 얘기는 차지하더라도 병역자원 감소 추세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국내 국방비 지출 중에서 단연 늘어나는 부분은 무기 구매다.

▲ 출처:삼성증권

국방산업은 지출규모가 큰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방비의 절감과 효율적 운용이 중요하다. 물론 국내 방위산업의 무기 구매처는 정부 한 곳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해외 무기 수출이 본격화됐음을 감안하면 그만큼 방산업의 성장여부도 정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한국 정부의 방산업 육성의지는 확고하다. 방산업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 전시 상황시 무기체계의 자주적 공급능력 유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도 한국 지형에 맞는 적합한 무기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타 분야에 대한 예산책정은 늘 논쟁의 대상이 되지만 보안 산업은 논쟁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장애물이 없는 셈이다.

한화는 KAI 인수를 정말 포기한 것일까

이러한 틀에서 볼 때, 한화테크윈의 KAI 지분 매각은 일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로 풀이된다. 우선 두산DST의 경우는 상장사가 아니다. 반면, KAI는 상장사다. 따라서 지분 매입이나 매각 이슈는 상장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두산그룹이 기존 사업분야에서 위기를 겪으면서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가치는 현저히 낮아진 상태다. 반면, 한화테크윈이 KAI 지분을 매각하자 한화테크윈은 KAI의 인수후보에서 제외됐다. 두산DST의 가격은 시장에서 책정되지 않는데 반해 KAI의 가격은 시장에 즉각 반영됨은 물론 인수후보자 수에도 영향을 받는다.

설령 한화테크윈이 보유한 KAI의 나머지 지분 약 5%가 주가 하락으로 가치가 낮아진다 해도 한화테크윈은 더 낮은 가격에 KAI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 KAI의 가치가 빨리 하락할수록 한화그룹의 입장에서는 KAI는 물론 두산DST의 인수전에 필요한 ‘실탄’이 더 확보되는 셈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한화테크윈의 KAI 지분 매각 후 군수 엔진사업 역량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두산DST 인수전 참여 소식이 들리자 또 한 번 혼란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국방산업 강화에 의지를 드러낸 것은 분명하며 KAI 지분매각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고 기회를 엿보며 KAI 재매수와 여타 군수사업분야로의 확대 등도 예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