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할아버지가 청년시절 약주 한 잔 하며 즐겼을 그곳에, 아버지가 퇴근 후 동료와 들렸을 그곳에 내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 추억을 함께할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대를 잇는 원조집의 매력일 것이다. <이코노믹리뷰>에서는 여름특집으로 7~8월 두 달간 50년 이상의 전통을 잇는 원조집을 찾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을 알아본다. 그 첫 번째 원조집 열전의 시작은 서서갈비의 원조 <연남 서서갈비>이다.

눈이 매울 정도로 자욱한 연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부터 뒷목이 열기로 후끈거린다. 때 이른 장맛비에 밖은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데 이곳은 마치 사우나 같다. 신촌 로터리에서 강변북로 방면으로 5분 정도 가다 보면 골목길 언저리에 보이는 서서갈비의 원조 ‘연남 서서갈비’. 원조집답게 간판도 60~70년대를 연상케 하는 상당히 투박스런 느낌이다.

45년 전통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는 간판 걸 때 숫자고 1953년 휴전협정 시 세워졌으니 어느새 58년의 기간 동안 서서갈비의 맥을 잇고 있다. 6.25전쟁이 끝난 후 노동자들의 목을 축였던 대포집이 연남 서서갈비의 시초다. 70~80년대 노동자들이 짧은 식사 시간 동안 연탄불에 급하게 고기를 구워먹고 가다보니 자연스레 서서 먹는 분위기가 됐고 이제는 그것이 서서갈비집의 브랜드가 돼 지금도 의자를 놓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드럼통을 개조한 테이블만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어디 서실래요?” 서서 먹는 곳이니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어디 앉으실래요?” 란 질문에 익숙한 기자로선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미련 없이 한 귀퉁이 자리한 드럼통을 가리켰다. 곧 이어 이어지는 질문 “몇 대요?” 갈비 몇 대를 주문할 것인지 묻는 질문이다. 메뉴가 소갈비 하나밖에 없으니 주문이 짧다. 하다못해 공기밥도 없다.

드럼통을 개조한 테이블 위에 척척 올려진 반찬은 풋고추, 고추장 마늘, 양념간장이 전부다. 갈비는 두루마리식이 아닌 통갈비로 칼집을 내 간장양념을 했다. 소 안창살과 국내산 육우를 사용하는 이곳의 갈비 값은 1대 1만4000원. 두 명이 먹으면 3대가 적당하다. 철판 위에 올려진 갈비는 화르륵 타는 연탄불의 화력에 육즙이 맛깔스레 남는다. 그것을 파, 마늘, 통깨, 참기름, 후추가 들어간 달달한 양념장 소스에 듬뿍 찍어먹으면 그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기가 막힌다.

20~30년 전부터 이곳을 찾았다는 이영우(70)씨는 “20년 전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서 한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먹었다”며 서서 먹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서서갈비니까 서서 먹어야 제 맛이지!” 하며 껄껄 웃는다. 바로 이어지는 말. “주변에 서서 갈비집들이 많은데 봐봐! 다 의자들이 놓여있지! 의자가 놓인 집은 다 가짜야.”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초등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재미교포 샘 노(Sam Noh·45)씨는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찾은 서서갈비에 대해 “무엇보다 생동감이 있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라며 초등학생 아들에게 구운 갈비를 입에 넣어준다. 옆 테이블에서는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가 자신이 데려온 친구에게 원조집인 서서갈비집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비 오는 날 안성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지인을 데려온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양념간장도 좋은 재료만 들어갔으니 보약이라며 친구에게 마실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손사래를 짓는 친구에게 보란 듯 양념장을 마셔 보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정겹다.

감칠맛 나는 달달한 양념장, 화르륵 구운 야들야들한 소 갈비살, 그리고 서서 먹는 원조집 문화. 이 삼박자가 어울리며 오늘도 연남 서서갈비 앞에는 사람들의 줄 행렬이 이어진다.

미니인터뷰 ‘연남 서서갈비’ 이대현 대표
물자 부족 불편함이 낳은 대박

원조인만큼 ‘서서갈비’의 역사가 궁금하다.
1953년 휴전협정이 끝나고 전쟁 통에 아내와 딸을 잃은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드럼통 한 개 놓고 대포집으로 시작했다. 당시 갈비는 막걸리 안주 개념 정도였는데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살만해지니까 술보다 갈비가 더 유명해졌다.

서서갈비 문화가 왜 생겼다고 보나.
당시만 해도 물자 부족으로 의자가 귀했다. 요정이나 방석이 있었을까? 아버지가 긴 나무의자 한두 개를 놓고 시작하셨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급하게 고기를 먹다 보니 의자 놓을 자리도, 의자 놓을 필요도 없게 됐다. 자연히 서서 먹는 분위기가 됐고 지금은 그것이 하나의 브랜드가 돼 일부러 의자를 놓지 않는다.

50년 이상 명성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인가.
원조집의 명성을 지켜준 것은 ‘맛’이다. 우리는 고기를 다른 집처럼 하루 전에 재지 않는다. 매일 아침 고기를 재 손님들에게 바로 바로 제공한다. 육즙을 제대로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화르륵 타는 불에 달달한 간장양념을 찍어먹는 우리만의 갈비 맛이 손님들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또 서서 먹다 보니 오래 있기 힘들어 회전율이 빠른 것도 이유라고 본다.

손님이 매일 줄을 서 기다릴 정도로 많다. 주인장으로서 흐뭇하겠다.
줄을 서 기다리는 손님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특히 먼 곳에서 찾아온 고객들도 많은데 그런 분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적당하게 사람들이 찾아와 기다리지 않고 고기를 즐기고 정담을 나누고 가길 바란다.

찾아가는 법 : 신촌역 7번 출구에서 직진. 신촌로터리에서 강변북로 방향 5분. 마포 노고산동 치안경찰서 건너편
메뉴 : 단품 소갈비 한 대 1만4000원
문의 :02)716-2520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