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 휴대폰이 시장에서 퇴장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가전박람회 CES 2016에서 들려온 비보다. 릭 오스털로 모토로라 CEO가 더 이상 ‘모토로라’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천천히 모토로라를 지워나가고 있다.” 그의 말이다.

모토(moto)라는 별칭과 ‘M’ 로고는 한동안 유지한다. 기존 모토로라 제품은 이름을 바꾼다. 모토로라는 이제 모회사인 레노버의 색채를 더욱 강화할 생각이다. ‘모토로라’라는 브랜드를 고수해봤자 별다른 이득이 없다고 여긴 탓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라는 브랜드를 버린 것과 같은 이치다.

이토록 위대한 회사

모토로라는 대단한 회사였다. 무려 1928년에 생겨난 유서 깊은 회사다. 폴 갈빈이 직원 5명을 데리고 갈빈제조회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정류기를 만들어 팔았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최초의 차량용 무전기를 개발했다. 이 제품을 ‘모토로라’라는 상표를 달아 팔았다.

1947년에는 아예 회사 이름을 모토로라로 바꿨다. 모토로라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승리에 기여했다. 군사통신에 중추적 역할을 한 최초의 휴대용 무선통신 기기를 개발해 보급하면서다. 워키토키(Walkie-Talkie)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 출처=레노버

‘M’을 활용한 로고는 1955년에 디자인해 채용했다. 이후에도 역사에 기록될 행보는 계속된다. 1956년엔 삐삐를 최초 개발했다. 4년 뒤 최초의 무선 휴대용 텔레비전을 만든다. 1969년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육성을 지구로 전달한 무전기도 모토로라 작품이다.

최초의 휴대폰도 모토로라가 만들었다. 1973년 일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반도체 분야에 힘을 주며 큰 성과를 얻었다. 최고 전성기는 1990년대에 찾아왔다. 글로벌 무선통신 최강자로 군림한다.

1996년 전설의 휴대폰 ‘스타텍’을 선보였다. 최초의 플립형 모델이었는데 무척이나 가벼웠고 디자인은 미래에서 온 물건 같았다. 1998년 노키아가 등장하면서 왕좌를 내주기는 했다. 그래도 레이저(RAZR)와 같은 글로벌 히트작을 탄생시키며 저력을 보여줬다.

199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휴대폰 시장 점유율 절반을 가져갔다. 그러나 1999년에는 17%까지 추락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더 암울했다.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엔 답이 없어 보였다. 좀처럼 반등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왜 서서히 무너져 갔을까. “전통에 집착하다 시장 흐름을 놓쳤다. 레이저의 성공이 모토로라 발목을 잡았다.” 시장조사업체 로라그룹의 분석이다. 모토로라는 2011년 회사를 모토로라 모빌리티와 모토로라 솔루션으로 쪼갰다. 휴대폰 사업부와 산업용 기기 B2B 사업부를 나눈 것이다.

구글의 단물 빨아먹기

구글이 거액을 배팅했다. 2011년 8월 분사된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사들였다. 124억달러(약 13조3000억원)을 지불했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이유’에 대한 온갖 해석이 난무했다. 정작 구글은 ‘특허 방어용’이라고 일축했다. “모토로라의 특허가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안드로이드를 더 잘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의 말이다.

모토로라의 하드웨어와 구글의 소프트웨어가 만나 폭발적 시너지를 보여주진 못했다. ‘모토로라G’나 ‘모토로라X’는 인수 뒤 선보인 제품이었다. 미미한 시장 반응만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최대 파트너사인 삼성전자를 자극하는 결과만 낳았다. 삼성전자가 자체 OS인 타이젠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절 일어난 일이다.

모토로라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구글은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정리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팔기로 작정했다. 특허 대부분은 빼고. 일단 2013년 연말 모토로라 사업부를 휴대폰 제조 부문과 기술개발 부문으로 분리시켰다. 매각은 제조 부분만 하기로 했다

이때 레노버가 모토로라의 새 주인이 됐다. 정확하게는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휴대폰 제조 부문만 넘겨받은 것이다. 29억1000만달러(3조1000억원)에 계약이 성사됐다. 숫자만 놓고 보면 구글은 10조원 이상을 까먹은 셈이다.

레노버가 거머쥔 모토로라는 ‘앙꼬 없는 찐빵’이었다. 구글은 레노버가 보유한 특허 약 1만7000건 중에 2000건 정도만 레노버에 넘기기로 했다. 나머지 특허에 대해선 라이선스를 통한 사용권만을 허락했다. 특허 소유권은 그대로 구글이 차지했다. 알맹이는 구글이, 껍데기는 레노버가 나눠가진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

레노버 역시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레노버는 그럴싸한 껍데기가 필요했다. 브랜드 인지도가 절실했던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잘 알아보는 ‘모토로라’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 공략 교두보로 삼겠다는 셈법이었다. 모토로라가 이미 세계 50여곳의 신사와 파트너십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모토로라 효과’는 강력하지 않았다. 화웨이·샤오미·ZTE 등 중국 업체가 ‘그럴듯한 껍데기’ 없이 글로벌 무대에 이름을 알리는 장면도 분명히 봤다. 모토로라 인수 당시 레노버는 글로벌 3위 휴대전화 업체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중국 업체들에 밀리고 만다.

모바일 사업 적자가 이어지자 양위안칭 레노버 CEO는 “모토로라 인수가 다소 성급했다”고 털어놨다. ‘모토로라’는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레노버’의 이름값이 나아 보일 지경이었다. 세계 PC 시장 1위 브랜드인 ‘레노버’ 역시 이름값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모토로라’라는 유서 깊은 브랜드를 폐기하기로 했다. 합리적 판단이자 과거와의 결별이다. 다만 모토로라가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다. 모토로라 솔루션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스마트 치안시스템 구현을 위한 B2B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엔 영국에서 차세대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사업자 중 하나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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