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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데이빗 보위의 생애를 두려워 하랴암투병 중 10일 오전 69세 일기로 세상 떠나

다수의 외신매체가 비보를 타전해왔다. 영국의 록스타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전일인 10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암 투병을 시작한지 18개월 만이었고 69세 생일을 이틀 지난 날이었다.

   
▲ 출처=AP/뉴시스

보위는 지난 8일 스물다섯 번째 새 앨범 <★(블랙스타)>를 발표했었다. 그의 사망 소식은 그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에서 처음 전해졌고 보위의 아들 던컨 존스는 매체들에 아버지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해줬다.

보위는 동시대 최고의 록스타이자 아방가르드 팝의 선구자였다. 그는 전성기인 70년대초 중성적인 무대 분장과 과감하고 화려한 패션, 신비로운 창법과 연극 같은 무대 연출을 특징을 선보이며 '글램 록'을 완성했다. 상식과 관념을 깨는 그의 자유분방한 음악과 스타일은 후에 영국 펑크 록을 태동케 한 밑거름이 됐다.

그는 1947년 1월 런던 남부 브릭스턴에서 식당 종업원인 모친과 자선단체에 다니는 부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데이빗 로버트 존스(David Robert Jones)로 음악을 시작한 이후인 20살에 보위라는 성으로 개명한다. 어린 시절 그는 춤과 노래에 특출난 재능을 드러냈지만 반항적이고 고집이 센 아이였다.

15세에 싸움에 휘말려 왼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어버렸고 이로 인 해 양 눈의 색이 각각 다른 보위의 신비한 외모가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때 눈을 다치게 한 조지 언더우드와는 계속해서 친한 친구로 지냈고 후에 앨범 제작에도 참여시킨다.

1964년 6월 5일에 ‘데이비 존스 앤 더 킹 비즈(Davie Jones and the King Bees)’란 이름으로 싱글 〈리자 제인〉을 발표한 그는 1966년 4월 싱글 〈Do Anything You Say〉부터 ‘데이빗 보위‘란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1967년 6월 데뷔 앨범 《David Bowie》 제작 중에 티베트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에 단편영화 《이미지》 촬영에 참여하기로 결정되었고, 촬영 중에 린제이 켐프와 만난다. 그 후 수개월간 켐프의 극단에서 생활하면서 판토마임 등을 배웠다고 전한다.

그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모티브로 해서 1969년 앨범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를 기획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맞춰서 착륙 직전에 발표한 이 앨범은 영국 차트 5위, 전미 차트 15위까지 올랐고 이후에도 보위의 전위적인 사상과 음악을 대표하는 명곡이 됐다.

1972년, 콘셉트 앨범 <지기 스타더스트>를 발표한 그는 가공의 록스타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가 돼 백 밴드인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를 이끌고, 전 세계를 투어한다. 하지만 1973년 7월 3일 영국 공연을 끝으로 보위는 이 가공의 록스타 지기 스타더스트를 버리고 백 밴드를 해체하고 홀로서기에 나선다. 이후 그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가사, 소울, 록, 펑크, 전자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히트시키며 독보적인 음악가가 된다.

70년대 후반 코카인 중독으로 기행을 일삼던 그는 독일 베를린으로 요양을 떠나 브라이언 이노와 함께 작업하면서 의 크라우트락에 영향을 받은 77년 앨범 <로우(Low)> 등 베를린 3부작 앨범을 냈다.

그는 음악 말고 다른 여러 면에도 유별난 인물이었다. 1975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는 히틀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팬들 앞에서는 ‘지크 하일(나치식 경례)’ 같은 손짓을 하기도 했다. 1976년 같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밝혔다.

두 번 결혼을 했는데 두 번 모두 여성과 했다. 1970년부터 1980년까지 앤지 바넷과 결혼 생활을 하며 아들 던컨 존스를 낳았다. 그녀는 후에 보위가 ’롤링스톤즈’의 리드싱어 믹 재거와 동성 연인관계였다고 폭로했다. 두 번째 결혼은 1992년 소말리아 출신의 슈퍼모델 이만과 해 사망 전까지 혼인 관계였다. 이 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다.

보위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한 선후배 음악인, 정치인 등의 진심어린 애도도 줄을 이었다. 후배가수이자 유명 힙합 아티스트인 카니예 웨스트는 데이빗 보위를 가장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 꼽았다. 그는 “보위는 아주 겁이 없고 매우 창조적이며 생애 동안 마법을 준 인물”이라고 평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전총리는 스스로 보위의 열광적인 팬임을 자처하며 그의 죽음을 깊이 슬퍼한다고 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어린 시절부터 보위의 콘서트장을 찾았다면서 후에 그를 직접 만났던 것이 큰 특혜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데이빗 보위는 2000년 11월 영국의 음악 잡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는 뮤지션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현재의 영국 음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물론 데이빗 보위가 없었다면 영국의 명밴드 스미스도 스웨이드도 플라시보도 탄생할 수 없었다.  

대중문화계는 물론 영국인, 또 전세계인에게 그의 죽음은 큰 상실이리라.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라비린스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구인이라기에는 너무나 비범했던, 너무나 경이로웠던, 너무나 열정적이었던 그의 명복을 비는 대신 '간지'나고 그로테스크한 곡을 골라 흥을 돋우면서 그의 귀향을 배웅하고 싶다. 

 

 

이윤희 기자  |  stels.lee@econovill.com  |  승인 2016.01.11  22: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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