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스스로 작동하는 능력을 가진 기계라고 할 수 있다. 공장에서 고정된 위치에서 반복된 작업을 하는 로봇을 산업용 로봇이라 부르는 반면에,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위치를 이동하며 주어진 일을 하는 로봇을 이동형 지능 로봇이라 부른다. 특히 지능 로봇이라 함은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기계란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와 별개로 채팅 로봇은 움직이는 기계는 아니지만 사람과 문자 또는 음성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능을 갖춘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로봇에 대한 정의를 특별히 점검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 로봇이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텔의 CEO인 크르자니치(Krzanich)는 CES 2016 기조강연에서 전동스쿠터의 일종인 세그웨이(Segway)를 플랫폼으로 간단히 개조한 세그웨이 로봇(Segway Robot)을 소개했다. 세그웨이는 두 다리의 무게 균형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두 바퀴형 전동스쿠터다. 두 다리 사이의 기둥에 있는 단추를 누르면 로봇 얼굴이 나타나고, 기둥 뒤편 뚜껑을 열어 로봇 팔 단자를 연결하면 로봇 모양의 세그웨이 로봇이 된다. 로봇으로 특별히 설계하지 않아도 기존 상품을 일부 개조하면 쉽게 로봇 기능을 추가하게 되는 사례를 보여줬다. 이 로봇은 대화 기능을 갖추고 리얼센스라는 센서가 장착되어 있어서 주변 사물을 입체로 인식할 수 있다. 세그웨이 로봇은 사람을 인식하고 사람의 음성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CES 2016 전시장엔 이밖에도 전통적인 생활로봇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실내를 이동하면서 공기정화를 하는 실내공기정화로봇 아트모봇(Atmobot), 움직이는 정보패널 퓨로(Furo) 로봇, 고기를 굽고 난 후 오염된 그릴을 금속 브러시로 자동 청소하는 그릴봇(Grillbot), 바다표범 모습으로 치매환자의 심리적 안도감을 제공하는 로봇 인형 파로(Paro)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로봇들은 한 가지 기능을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특화 로봇들이다. 별도의 학습이 필요 없으며 미리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기계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로봇은 스스로 학습하면서 진화해 가는 로봇이다. 미리 배우지 않은 기능이라도 스스로 학습하면서 처리 능력이 향상된다면 자율학습 지능 로봇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앞으로 등장할 미래형 로봇은 인간과 상호 대화가 가능하며 스스로 학습하면서 지능을 높여가는 자율학습 로봇이다. 우선 주목할 사례는 소프트뱅크의 페퍼(Pepper) 로봇이다. 사람들은 보통 로봇이 말을 걸면 자연스럽게 대화에 응하게 된다. 그래서 대화형 서비스 로봇은 항상 고객의 관심거리다. 페퍼는 대화형 서비스 로봇이다. 대화 중에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읽고 간단한 동작과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감성 로봇이다. 주로 은행의 투자상품 안내나 커피메이커 상품 소개 등 간단한 상품 안내 기능에 활용하고 있지만 앞으론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지금까진 미리 주입된 언어패턴이나 지식을 기반으로 대화를 나누는 수준이었다면 앞으론 스스로 대화를 구성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소프트뱅크는 페퍼의 서비스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아이비엠(IBM)과 협력하여 인공지능 왓슨(Watson)의 지능을 빌려 새로운 도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왓슨은 최근에 일본어 학습을 마쳤다고 한다. 앞으론 일본어 대화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페퍼는 왓슨의 지능을 이용해서 고객과 준비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로봇이 주제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 상황은 크게 바뀐다. 서비스 로봇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대화를 통해 고객의 관심사를 재빨리 파악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제때 처리해주는 능력이다. 페퍼는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낼 수 있다. 상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방문자 수, 나이와 성별, 사람들의 동작과 표정 그리고 대화를 통해 본 그들의 관심사들을 날씨와 시간대별로 자동으로 분류하고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다. 인공지능 왓슨의 자연어 처리 능력은 페퍼의 대화 수준을 크게 높여줄 것이며, 빅데이터 분석 능력은 페퍼의 서비스를 급속도로 향상시킬 전망이다. 페퍼는 앞으로 은행과 상점은 물론이고 호텔, 도서관, 박물관, 병원, 콜센터, 기타 다양한 서비스 업무에서 사람을 대신해서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페퍼의 정보수집 능력이나 데이터 분석 능력은 다양한 비즈니스가 새롭게 진화하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CES 2016 기조강연에 처음으로 나선 아이비엠의 CEO인 지니 로베티(Ginni Rometty)는 인지형 사물인터넷(Cognitive IOT)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왓슨이 ‘제오파디’에서 우승할 때만해도 5가지 기술을 활용했었는데 지금은 32가지 기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50개 응용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시스템의 본질이 너무 복잡해서 사람이 직접 프로그램해줄 수 없는 영역이라도 인공지능 왓슨은 많은 연구 자료를 자율학습해서 복잡계의 패턴을 터득하고 시스템을 이해하는 수준까지 인지능력을 높인다는 인지컴퓨팅(Cognitive Computing)을 표방하고 있다. 인지형 사물인터넷이란 인지능력을 사물에 심어준다는 의미다. 이 말의 의미는 지금까지는 데이터가 쌓여도 80% 이상은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고 저장만 해왔다면, 앞으로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의미다. 또 왓슨은 자연어로 쌍방 대화가 가능한 소프트웨어다. 즉 모든 사물이 분석 결과를 근거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능개체가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미 사물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비엠의 생각은 사물인터넷을 구성하는 수십억대의 디바이스, 센서, 시스템에 인지 컴퓨팅 기능을 삽입하면 새로운 서비스 역량이 생겨 전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다. 아이비엠은 이미 한국을 비롯한 41개국에 블루믹스(Bluemix)란 플랫폼을 구축하고 120여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한국어 처리 능력도 개발되고 있다. 기업이나 개발자들이 이 플랫폼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새롭게 바꿔줄 응용소프트에어를 만들 수 있다. 기존 비즈니스와 인지컴퓨팅 서비스를 연계하면 왓슨 API가 모든 비즈니스에 인지 기능을 삽입해준다. 금융업, 헬스케어, 보험, 여행업 등 서비스 산업은 물론이고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에너지, 화학, 기계, 섬유 등 전통 주력 산업들에도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전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는 열려 있다. 아이비엠 측 설명에 의하면 사물인터넷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이해, 추론, 학습을 가능케 하는 왓슨만의 차별화된 인지능력을 활용하면 빅데이터 속에 파묻혀 있는 새로운 연관성을 기초로 기업, 정부, 개인들이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는 통찰력을 찾아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최근에 구글의 생명과학 자회사인 베릴리(Verily)와 존슨앤존슨의 의료장비 업체인 에치콘(Ethicon)이 합작해서 의료로봇기업 버브(Verb)를 창업했다. 그리고 폭탄제거 로봇기술을 가진 에스알아이 로보틱스(SRI Robotics)로부터 손재주가 매우 정교한 로봇 손과 햅틱제어 로봇 기술을 이전받았다. 버브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정밀 수술 로봇을 개발하고자 한다. 그런데 버브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술은 로봇 자체의 손재주라기보다 첨단 이미징, 데이터 분석, 기계학습을 통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황에서도 최적의 조건으로 수술 방법을 찾아내는 인공지능 기술에 더 관심이 깊다. 버브는 수술 전문가를 위한 첨단로봇기능과 함께 최고 수준의 의료정보와 지식을 통합하는 포괄적인 수술 종합솔루션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한다. 수술전문의와 지능 로봇이 협동하여 수술 흔적을 최소화하는 고도의 정밀수술을 하고자 한다. 수술 로봇의 지능이 쌓여나가면 어느 시점엔 로봇이 자율적으로 수술을 주도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마치 자율운행자동차가 운전자가 제어하는 상황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듯이 수술 로봇이 숙련된 수술전문의보다 더 정교한 수술을 처리해내는 상황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로봇이 엄청난 양의 의료데이터를 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신속하고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앞으론 로봇 수술은 기능적인 면뿐만 아니라 지능적인 면이 중요해지며 로봇이 자율적으로 수술을 주도하는 전혀 새로운 영역까지도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보통 인간은 아인슈타인처럼 두뇌가 명석하지도 않고 간디처럼 극한적인 인내심도 없다. 컴퓨터에 비해 기억 능력도 매우 제한적이다. 조금만 계산이 복잡해져도 계산 방법을 잘 모르고, 모든 편견에 취약한 판단을 한다. 복잡한 것을 처리하는 능력이 매우 낮다. 그런데 인간의 인지능력을 확장할 기회가 다가왔다. 왓슨과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은 앞으로 모든 생활주변 기기에 지능채팅 기능을 부여할 수 있게 한다. 집안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일도 챙겨주는 가정용 소셜 로봇들은 MIT의 지보(Jibo), 프랑스 블루프로그로보틱스(Blue Frog Robotics)의 버디(Buddy), 우브테크(Ubtech)의 알파2, 에코박스(Ecovacs)의 패미봇(Famibot) 등 여러 모델들이 있다. 그런데 구태여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라도 통신을 통해 인공지능이 삽입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스피커에 인공지능 알렉사(Alexa)를 삽입한 에코(Echo)가 좋은 사례다. 자동차, 인형, 침대, 변기, 조명기구, 가전기기 등 모든 사물이 정보를 분석하여 제공하는 대화형 지능 로봇이 될 수 있다. 지금 세상은 만물이 지능형 대화로봇으로 변해가는 진화 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