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운, 53×72.7㎝ oil on canvas, 2015

 

떠오르는 상념의 물결위에 청춘의 풋풋했던 연모의 꽃잎들이 피어나누나. 조용히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긴 듯 한 여인. 미몽이런가. 몽실몽실 안개처럼 불타고 후끈 달아오르는 가슴에 돋아나는 빨간 입술 가는 떨림이 고해로 녹아드는데….

 

▲ 존재의 감춤,130.3×130.3㎝, 2013

 

다차원미술 그 에너지 덩어리

마치 의식을 가진 입자처럼 천체를 운행하는 것들의 목격이나 비실재적(非實在的) 대상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근본에 흐르는 것은 에너지다. 화면은 인간존재를 내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개별적 존재들의 가치를 느끼고 깨닫는 이미지를 다차원적으로 인식하고 다중(多重)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호흡명상을 함으로써 작품의 스케치 과정에서 순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 에너지는 계속 연결되어 완성될 때까지 지속, 종결 된다”라고 말했다. 자의식이 지향하는 이를테면 무한차원을 열어가는 순전한 초월의 출발지로서 명상(meditation)을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 사랑, 72.7×60.6㎝, 2014

 

화백은 이러한 자신의 작업세계를 ‘다차원미술’이라는 용어로 명명했다. 에너지덩어리들의 살아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임은 자명한데 이러한 지속적 시도는 열망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파니샤드’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원성(二元性)이 있는 곳은 말하자면 하나가 다른 것을 보고, 하나가 다른 것을 냄새 맡고, 하나가 다른 것을 맛보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곳에서는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본단 말인가?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냄새 맡는다는 것인가?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맛본단 말인가”<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著, 범양사>

 

▲ 화엄공간, 116×91㎝, 2015

 

참됨, 마음을 두드리는 조언

단군신화의 환웅이 하늘에서 처음 그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는 신단수(神壇樹). 쌍영총, 무용총 등 고구려시대 벽화고분에 나타나는 태양을 상징하는 세 발 달린 삼족오(三足烏). 최근작업에 등장하는 이들은 작가가 지향하는 하나의 거대한 정체성, ‘나’와 우리민족의 아이덴티티까지 몰두하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것은 화엄(華嚴)과 천부사상까지 하나의 빛의 근원, 인간의 해탈을 향해 달려가는 관계를 탐구하는 지난한 노력과 다름 아닌데 그는 “생활에서 그것을 만들어 내려 정진 한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작품 ‘화엄공간’에선 모든 사람을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로 이끄는 하여 저마다 생동의 만휘군상 저 만다라(maṇdala)의 철학이 느껴져 오기도 한다.

 

▲ 화합-차원의 향연, 130.3×130.3㎝, 2013

 

작가는 “결국은 원시반본(原始返本)에서 ‘나’와 우리의 근본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궁극적으로 빛의 혼(魂), 살아있고 의식하는 입자가 인간이니까….”라고 말했다. 이러한 하나로 모아지는 결합들, 빛과 명상적 자아와 한민족의 정체성 등엔 존재에 대한 물음이 펼쳐져 있다.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의식세계를 지향함으로써 이들을 아우르는 빛으로 향하는 회화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공(空)은 마음의 자유와 무애를 말하고, 마음이 자신을 양명하게 드러내는 마음의 본질을 나타냄과 다르지 않으리라. 그런 자유와 무애는 한 민족의 문화와 역사의 본질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하이데거와 화엄의 사유, 김형효 지음, 청계>

 

△글=권동철, 경제매거진 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