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있다. 그는 자신만의 창고에서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그의 아이디어를 세상은 기다린다. 아이디어는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시장에서 실현 가능할 때 창의성으로 실체화된다. 하지만 개인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기란 녹록치 않다. 청년은 다시 창고로 들어간다. 이렇게 닫힌 창고문은 얼마나 될까. 문화 콘텐츠 강국인 영국은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의 10%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2.3%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한국의 콘텐츠 파워는 세계 7위다. 문화창조융합벨트는 가능성에 불을 지핀다. 닫힌 청년의 창고를 열고 그를 세계 무대 위에 세운다. 모든 영웅에겐 조력자가 있듯 창의적 인재의 출연을 돕는 전문 조력시스템이 된다. 이 과정의 핵심 인프라가 ‘문화창조벤처단지(cel, creative economy leader)’다.

문화가 경제를 이끌고, 창의성이 자본을 리드한다

지난해 12월 29일 개소한 cel벤처단지는 창의적이고 역량 있는 벤처기업들의 집합소로 기획에서 사업화까지 원스톱 지원한다. 이곳에 대한 이해는 ‘문화·창조’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면 쉽다.

문화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한류 콘텐츠와 같은 예술-관광부터 가상현실, 인터넷, 로봇과 같은 IT까지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모든 콘텐츠 영역을 포괄한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이미 구현된 창의성들을 모아 만들어내는 ‘융합’을 나타낸다. 김대호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창조경제의 이해 (2014)>에서 “창의성이란 단번에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다”라며 “ICT 융합 시대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킹과 협력이 창의성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도식

청년들의 아이디어는 ‘문화창조융합센터’, ‘콘텐츠코리아랩’에서 확장해 원형으로 만든다. ‘문화창조벤처단지’는 실제 제작과 투자 해외 진출 등 사업화를 일괄 지원한다. 여기에 ‘문화창조아카데미’까지 더해 떡잎부터 알아보며 기술과 인력을 육성한다. ‘K-컬쳐 벨리’, ‘K-익스피리언스’, ‘K-팝 아레나’ 공연장은 완성된 아이디어를 시연하고 대중과 연결해주는 식이다. 정부는 올해 본격 시행되는 문화창조융합벨트로 향후 5년간 약 5만3000개의 일자리 창출, 세계 5대 콘텐츠 강국을 전망하고 있다.

 

입주 업체들 목소리 들어보니 “든든한 후원자 만났다”

“창의적이라 불릴 만한 아이디어나 업적은 한 개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상승작용의 결과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의 말이다. 1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주한 93개 기업, 500여명의 벤처인들이 cel벤처단지에 둥지를 튼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cel벤처단지는 서로 소통하는 네트워크가 취약한 벤처기업의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5개 층에 ‘입주단지’를 조성했다. 10층은 1인 기업과 4인 스타트업 등 51개 기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열린공간, 11층부터 15층에는 42개 기업 사무실이 있는 독립공간으로 운영된다. 두 곳 모두 임대료는 없고 독립공간 관리비만 내면 되는데 이마저 50%를 지원해준다.

▲ 문화창조벤처단지 내 독립공간 및 열린공간. 사진=박재성 기자.

입주 업체들은 만족하는 분위기다. ‘아이포트폴리오’ 김성윤 대표는 “11층부터 15층까지 상층부 천장을 뚫어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이는 기업 간 협업과 소통을 위한 신의 한 수였다”며 “영국, 핀란드,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스타트업 센터들을 방문해 봤지만 기업 간 협업을 위한 이러한 공간 디자인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평했다. ‘맛조이 코리아’ 강병호 대표는 “사업상 접근성이 좋은 중구 한복판에서 2년간 사무실 임대료 지원 및 관리비를 지원받으며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CNBOX’ 유미란 대표는 “사실상 단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한국 콘텐츠 진흥원에서 담당 위원들을 각 기업에 배치해 도와주니 든든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cel벤처단지는 ‘투자 및 사업화’도 지원한다. 콘텐츠 기획 및 창작에 필요한 시설 및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 운영 및 투자 유치도 돕는다. 또 ‘유통-네트워크’ 지원을 위해 분야별 전문가를 섭외하고 기관 마케팅 및 컨설팅의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스타트업들의 투자 유치, 해외 진출, 마케팅 등 각종 사업화 과정의 현안을 컨설팅해주는 ‘cel비즈센터’가 16층에 있어 입주 기업들이 언제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 이곳에는 법무법인, 회계법인, 콘텐츠진흥원, 저작권위원회 등 관련 기관들이 들어와 있다.

▲ (첫 번째 부터 시계방향) 맛조이코리아, cnbox, 아이포트폴리오 단체사진. 출처=각 사.

입주 업체들은 ‘협업’과 ‘해외 진출’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아이포트폴리오 김 대표는 “이런 시스템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해준다는 것 자체가 해외 클라이언트들에게 주는 신뢰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글로벌 시장 진출 및 해외 업체와의 협업에 지원사격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맛조이코리아 강 대표는 “기존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진행했던 자체 프로젝트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입주 기업 간 공동 프로젝트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의 다양한 전문성이 프로젝트 규모를 키우고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NBOX 유 대표는 “시도해 보고 싶던 프로젝트와 기술이 보류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획부터 상품화까지 체계적인 지원이 기대된다. 이를 통해 대중이 즐기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창조와 융합에 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이포트폴리오 김 대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제 딸아이의 장래희망은 ‘작곡하는 만화가’입니다. 음악과 미술의 융복합 창조적 발상인 셈이죠”라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미있는 웹툰에 OST도 흘러나와 감동을 더하는 뷰어를 아빠가 개발해 줄게.” 벤처인들이 창조한 문화는 누군가의 꿈을 키운다. cel벤처단지는 그들의 꿈을 현실로 만든다.

 

“문화창조벤처단지, 새로운 아이디어 경제적 가치로 실현”

[인터뷰] 이진식 문화창조융합본부 부단장

▲ 사진=박재성 기자.

문화창조벤처단지에 꼭 입주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성실실패’. 평소 제가 자주 쓰는 말인데요. 혼자 하면서 성실하기만 하면 실패하게 된다는 뜻이에요. 특히 콘텐츠 분야는 특성상 혼자 할수록 실패 가능성이 높죠. 벤처단지에선 ‘공생’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서 만나죠. 그들 중에는 선배도 있고, 먼저 실패해본 사람도 있고, 다른 일을 해본 사람도 있어요. 벤처단지는 면밀한 기업분석을 통해 각 기업의 특성을 파악한 뒤 적절한 이들과 매칭해 프로젝트화 시켜줍니다. 투자금이나 운영체계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지원해주죠. 또 기업들은 임대료와 관리비 등 연간 1억원 상당의 경상비를 절감할 수 있고, 중국 등 해외자본 유치에 있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융복합 콘텐츠의 파급력은 얼마나 클까.

문화창조융합벨트 정책의 주 목적이 융복합콘텐츠 생산입니다. 폭넓은 문화 분야와 기술이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오는 거죠. 잘 만든 한류 콘텐츠 하나가 끊임없이 수익을 창출하듯이, 문화는 경제의 한 분야가 아니라 경제를 끌고 가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벤처단지에선 기업들이 갖고 있는 프로젝트를 글로벌 마켓에 통하는 킬러콘텐츠가 될 수 있게 돕습니다. 벤처기업들의 자산가치는 10억 미만인 경우가 절대 다수인데, 그들의 핵심 콘텐츠와 기술을 시장에서 팔리게 도와주면 그 가치가 100억 이상 혹은 1조 이상 되는 기업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현재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2.8% 정도인데, 나머지 97% 잠재시장이 있다는 얘기죠. 이를 위해 입주 기업과 단지 외부 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혁신적인 융복합 콘텐츠 개발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해 올해만 100억원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또한 1800억 규모의 펀드 등 풍부한 투자 재원도 마련됩니다.

▲문화창조벤처단지 주요사업. 

기업들의 다양한 참여가 중요하겠다.

문화창조벨트는 민과 관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벤처들을 키우는 것은 이른바 민간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입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생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화창조아카데미와 같은 단체를 통해 알찬 인재들을 많이 발굴할 예정이니 기업들이 많은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또 공간도 적극 개방할 예정입니다. 공연장이나 대규모 공간을 마이스산업과 리셉션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대여해주는 식이죠. 지자체나 교육기관에서 시찰 및 견학 교육 연수프로그램도 생깁니다. 또 대학들도 참여할 수 있는 폭이 넓습니다. 아카데미와 함께 일종의 랩을 함께 운영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과 대학들의 참여가 연결고리가 돼 벤처기업들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