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인체 유전자 치료기술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DNA서열분석기술이 고도의 컴퓨팅 기술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지식영역은 확장되고 있다. 새로운 유전자 정보로부터 예전에는 몰랐던 통찰력을 값싸게 얻을 수 있다. 예전에는 손대지 못했던 유전병들도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렇지만 곱씹어 보면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인체의 DNA 서열을 발견한 지도 벌써 15년이 지났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젠 질병을 퇴치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유전자 치료약은 아직껏 세상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유전자 가위도 인체에 적용하기엔 위험한 수단이다. 유전자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지만 인체적용에는 항상 예기치 않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일부 생명의학 연구자들은 인체 유전자 대신에 미생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체미생물 연구는 인체의 유전자를 변형시킬 우려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우선 안심이다. 체내 미생물은 분석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수정하거나 교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특히나 고무적인 이유는 많은 쥐 실험 연구에서 체내 미생물은 질병을 치료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건 미생물이다. 소화기관에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들은 민족마다 다르고 가족마다 다른 특징이 있다. 내장에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들은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음식을 소화시키고 비타민을 만들고 면역체계와 상호작용해서 질병을 방어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어떤 종류의 미생물들은 소화되지 않은 탄수화물을 예로 들면, 사람처럼 잡식동물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녹말 같은 탄수화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낸다. 이들 좋은 미생물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미생물들을 쫓아내기도 한다. 결국 의사가 영양실조나 비만환자를 치료하는 데 미생물들이 크게 도움이 된다.

인체의 기질은 미생물이 좌우한다

인체에 거주하는 미생물의 수는 수십조개로 인체의 모든 세포의 개수보다 10배나 많다. 이들을 모두 합친 무게는 약 2㎏ 정도로 인체의 어느 장기보다도 더 무겁다. 미생물들은 장내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고 피부에도 입안에도 심지어 생식기에도 거주한다. 태아는 엄마의 산도를 통과하는 동안에 엄마의 박테리아를 삼키고 태어난다. 이후 일생동안 주변 환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새로운 미생물들을 받아들인다. 이 체내 미생물들의 집합체를 우리는 미생물군(Microbiome)이라 부른다.

유전자 분석기술이 발달하면서 미생물들의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인체 유전자는 태어나면서 고정되지만 체내 미생물들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미생물군이 함유한 유전자들이 계속 변하는 셈이다. 미생물군의 유전 정보가 우리 인체의 기질을 결정짓는 일에 더 많이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인체 미생물의 유전자 변화를 제어할 수만 있다면 개인 건강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상당히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들의 유전자 정보가 인간 유전자 정보의 100~150배나 되고 다양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비만의 원인은 주로 건강하지 못한 식단, 앉아있는 생활습관, 그리고 어쩌면 비만 유전자 등으로 유추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엔 많은 연구를 통해 장내에 체류하는 미생물들이 원인이라고 믿게 됐다. 미생물의 역할은 소화 작용에만 국한하지 않고 지방을 저장하고 혈당량을 조절하고 포만감을 느끼는 호르몬 분비까지도 작용한다는 근거들이 밝혀지고 있다. 장내 미생물이 잘못 구성되면 어릴 적부터 비만해지거나 당뇨에 걸리고 아토피 증상까지도 나타내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미생물이 비만이나 알레르기, 우울증 그리고 두뇌 발달과 관련이 있다고 미처 생각지 못했다. 미생물군과 신진대사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놀랄만하다. 가장 놀랄만한 사실은 미생물군이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칼텍(Caltech)의 폴 패터슨 교수는 임신한 쥐에 바이러스 공격을 시뮬레이션하고자 RNA를 주입했다. 그러자 태어난 새끼 쥐는 인간의 자폐증에 해당하는 거동을 나타냈다. 그 새끼 쥐에 인체의 대장에서 채취한 좋은 미생물들을 이식해준 결과 증상이 많이 치료되었다. 다시 어미 쥐의 미생물을 채취해서 주입해보니 새끼 쥐는 다시 자폐증 증세를 나타냈다. 인체에서 미생물이 사회적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쥐에서의 실험을 통해 추정하면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흥미로운 점은 장내 박테리아는 단순히 음식물을 소화시키거나 면역체계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데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발견된 바에 의하면 체내 미생물군은 인체 조직과 같다고 할 정도다. 장내 미생물이 두뇌의 화학작용이나 정신건강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한다. 즉, 장내 미생물로 우울증이나 걱정까지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미생물군이 두뇌 정신작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연구자들은 장내 미생물군을 ‘제2의 두뇌’라고도 부른다.

 

체내 미생물을 교체로 체질을 바꾼다

입원환자에서 발생하는 설사나 생명을 위협하는 염증성 장 질환은 주로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사일 세균 감염(CDI, Clostridium Difficile Infection)이 원인이며 병원에서 감염되는 전형적인 병이다. 치료 방법으로 환자의 장내에 침입한 세균을 건강한 사람의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로 치환해주는 방법이 있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군을 환자의 대장 속으로 내시경, 대장내시경, 혹은 관장의 방법으로 이식시키는 방법이다. 이를 분변미생물이식(FMT)이라 부른다. 항생제로는 치료 효과가 20~30% 정도밖에 안 되는데 비해, FMT법으로 건강한 사람의 분변(糞便)을 이식시키면 90% 이상의 치료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분변이식의 경우 설사 등 거부현상도 발생하지 않는다. 분변이식 전에 항생제를 복용하면 오히려 치료효과가 줄어든다. 어떤 미생물이 이롭고 또 해로운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선 분변 이식을 통해 미생물군을 통째로 바꿔주는 치료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FMT는 비만 치료에도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워싱턴의과대학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한 명은 날씬하고 다른 한 명은 비만인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이들의 분변에서 채취한 미생물군을 각기 다른 무균 쥐에 이식했다. 쥐들은 같은 양의 먹이를 제공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날씬한 쪽 미생물을 전달받은 쥐는 홀쭉하고, 비만 쪽 미생물은 이식받은 쥐는 비만해지는 실험결과를 얻었다. 또 무균 쥐에 단백질 결핍성 영양실조인 말라위 어린이에서 채취한 장내 미생물들을 이식시켜본 결과 3주일 만에 체중이 30%나 줄어든 반면에, 비만인의 체내 미생물을 무균 쥐에 이식한 경우엔 비만 쥐가 되는 결과도 얻었다.

정신적인 측면의 실험도 있었다. 조용한 쥐와 불안해하는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불안해하는 쥐의 분변을 조용한 쥐에 이식해 보니 이 쥐도 불안해했다. 반대로 조용한 쥐의 분변을 불안해하는 쥐에 이식하면 불안해하던 쥐가 자신감을 갖고 차분해졌다. 이들의 성격은 유전자나 두뇌의 화학물질의 변화 때문이 아니고 단지 장내 미생물의 변화만으로 전혀 다른 정신 상태를 나타내었다. 장내 미생물이 사람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한 실험도 있다. UCLA연구팀은 심리적으로 특별한 증상이 없는 36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먼저 12명에겐 좋은 박테리아라고 인정되는 발효된 요구르트 즉, 프로바이오틱스를 하루에 두 차례씩 4주 동안 먹게 하고, 11명에겐 요구르트 맛이 나지만 프로바이오틱스가 함유되지 않은 유제품을 먹였다. 그리고 나머지 13명에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실험 전과 후의 두뇌활동을 fMRI로 측정해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발효된 요구르트를 복용한 사람들은 화나고 겁먹은 얼굴 표정을 보면 감정과 감각에 관련된 두뇌영역의 변화가 훨씬 더 두드러졌다.

 

미생물을 정복하여 인류 건강 문제를 해결한다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건 미생물 덕분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최근에 전 세계 50개 연구팀이 미생물합동연구단을 구성했다. 연구의 목표는 박테리아에서 곰팡이와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에서 인체에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들의 복잡한 생태계, 즉 미생물들의 비밀을 알아낸다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자료는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개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미생물은 모든 환경조건에 존재하며 탄소나 다른 영양소를 순환시키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식물 성장을 촉진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역할도 한다. 미생물의 정체를 밝혀내면 항생제 저항을 줄이고 질병을 쉽게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폐화된 대지를 되살리고 비료나 살충제를 개선하고, 태양빛으로부터 유용한 화학물질을 구하는 방법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지구 극지방의 영구동토층에도 수많은 미생물들이 존재하는데 만약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아내리면 이들 미생물들도 함께 퍼지게 된다. 지구가 뜨거워지면 중동지역이 너무 뜨거워져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어진다고 걱정하지만, 어쩌면 이들 얼었던 미생물들이 확산되는 문제가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