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주최한 복수노조 설명회.


“7월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현장에서는 미묘한 분위기입니다. 우리 회사도 새로운 노조가 생길 것 같습니다. 지난 봄에 신임 노조위원장이 선출됐는데 불과 몇 표 차이로 낙선한 전임 노조위원장이 새로운 노조를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전 노조위원장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새 노조 결성에 대한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닙니다. 노조가 분리되면서 조합원들 간 갈등이 커질까봐 걱정입니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택시회사의 한 임원은 복수노조 허용이 사업장에 새로운 걱정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 사업장은 노동조합 안에 두세 개의 계파가 공존하는데 몇몇 활동가를 중심으로 강성파, 온건파로 나뉜다고 했다.

7월 1일부터 우리나라도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지난 1997년 여야합의로 복수노조 허용을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제정되었지만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2001년 말까지 그 시행이 유예됐다.

그 후 노사정 간 논의와 타협을 거쳐 2001년과 2006년 두 차례 법 개정을 통한 13년 간 시행이 유예됐다. 지난 2010년 1월 1일 개정법에 의해 올해 7월1일부터 시행하게 된 것.

복수노조는 이름 그대로 기업 단위에서 노동자가 자유롭게 2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가입할 수 있는 제도다. 복수 노동조합은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정해 사용자와 교섭해야 한다.

다만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에는 개별교섭이 가능하고, 현격한 근로 조건의 차이, 고용 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해 동일한 사업장 내에서도 교섭 단위 분리가 가능하다.

기업단위 복수노조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최초로 허용되는 것인 만큼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기업은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가져올 노사관계의 변화, 단체교섭 구조의 변화 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안정화 되어가던 노사관계가 또다시 바람을 타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우리 노사관계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최근 들어 2000년대 중반 300~400건에 달하던 노사분규가 100건 미만으로 급감하고, 지난해 노사화합 선언이 4012건에 달하는 등 협력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같은 안정기조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 허용으로 인한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다양한 형태의 노조 설립이 예상된다. 기존 무노조 대기업이나 소수의 근로자만이 노조에 속해 있는 대기업에 대한 집중적인 조직화 시도가 있을 것이다.

무노조 경영의 상징인 삼성의 계열사는 78개이며 서류상으로는 7개 회사에 노조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무노조 사업장인 포스코 역시 서류상으로는 노조가 존재한다. 조합원 20명의 페이퍼 노조가 있고, 노경협의회가 활동하고 있다.

삼성은 고용노동부 국장급을 영입하고, ‘무노조 특별 교육’을 그룹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삼성전자 일부 계열사의 노사협의회 대표 선거를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변경하는 등 ‘당근’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삼성이나 포스코에 노조가 신설되는 것 자체를 물리적으로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페이퍼 노조'를 신고해 노조 설립을 막아왔지만,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두 명 이상이 결성하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기회로 민주노총은 ‘삼성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삼성노조 설립을 공언하고 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빠른 시일 내에 삼성에 민주노조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노총도 과거 삼성에서 노조 결성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직원을 개별접촉하며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한국노총은 다음달 도입되는 복수노조 제도 중 교섭창구 단일화를 규정한 조항의 폐지를 촉구하는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기존 노조 활동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던 사무, 관리직이나 연구인력(R&D)의 노조 설립 가능성도 크다. 기존 노조에서 분리되는 경향도 강해질 것이다. 근로 조건이나 환경이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내 하도급업체 근로자나 비정규직도 노동계의 주요 조직화 대상이다.

노사전문가들은 “그동안 활동량이 많지 않았던 사무직이나 연구 관리직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칼라 노조 설립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989년 19.8%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10.1%까지 줄었으나, 복수노조 허용 이후 반등이 예상된다. 노동계의 조직 확대 과정에서 제3노총, 제4노총 등이 출현하고, 노총 간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아울러 노동계는 조직의 외연이 확대되면 독자정당 활동이나 기존 정치권과의 연대를 통해 노사관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기업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개별기업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단일 노사관계가 다원화되면서 노노 갈등에 따른 부담을 상당부분 사용자가 도맡아야 한다.

예컨대, 다른 노조에 속한 근로자 간에 갈등이 발생하면 사업부서의 성과 도출이나 효율성에 악영향이 초래될 수 있는 만큼, 사용자는 인력배치를 새로 해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노조 조직화에 따라 단체교섭 구조도 매우 복잡해진다. 현재는 1기업, 1단체교섭, 1단체협약이 원칙이나 복수의 교섭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현행 노조법에 단체교섭 창구단일화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만, ‘사용자의 동의’나 ‘노동위원회 결정’에 따라 분리교섭이 가능한 만큼 교섭단위가 분리될 수 있다.

교섭단 구성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자율적으로 대표노조를 정하거나 공동대표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복수노조 각각의 간부들이 교섭단을 공동으로 꾸릴 수 있고, 기업별 노조간부와 산별 노조간부가 섞여 교섭위원을 구성할 수도 있다.

또한, 소수 노조의 경우 부족한 교섭력을 만회하기 위해 외부인에게 교섭을 위임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이럴 경우 단체교섭 과정에서 타 노조를 의식한 선명성 경쟁으로 요구 수준이 상향 조정되고, 외부인에 의한 교섭 간여로 의견 조율이 힘들어 질 수 있다. 대개 교섭 기간이 길어지고, 교섭 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한상오 기자 hanso110@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