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민의 휴식처로 자리 잡은 울산대공원.


SK그룹의 오늘을 있게 한 수많은 주역 중 빼놓을 수 없는 위인이 있다. 고 최종현 회장이다. 최 회장은 친형이자 선경그룹(SK 전신)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뒤를 이어 선경의 경영권을 넘겨 받았다. 최종건·종현 회장 형제가 희망했던 꿈은 ‘섬유에서 석유까지 일원화된 기업 건설’ 즉 바로 ‘수직계열화 완성’이었다.

최종현 회장은 수직계열화 프로젝트의 종착지로 석유회사 경영을 꿈꿨다. 그는 섬유회사(선경직물)에서 시작한 선경을 에너지·종합화학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꿈을 현실로 일궈냈다. 최 회장은 1975년 ‘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석유회사 필요론’을 설파했다. 그리고 그의 꿈은 머지않아 실현됐다.

정부가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을 때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인 기업은 선경이었다. 최 회장의 선경은 각축전 끝에 유공을 손에 넣었다. 선경은 유공의 핵심 사업지역인 울산에 설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작은 정유공정 2~3개에 불과했던 울산공장(현 울산CLX)은 꾸준한 확장을 통해 단순한 정유 사업 이외에도 석유를 기반으로 한 각종 응용화학사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1991년 6월 15일. 최 회장의 40년 꿈은 실현됐다. 유공 울산공장에 폴리에틸렌 공장, 파라자일렌 공장 등 9개 새 공장이 들어서며 석유개발, 원유 정제, 화학제품 생산 등 석유 산업의 모든 부분을 총괄하게 됐다. 수직계열화 프로젝트는 그렇게 이뤄졌다.
선경은 울산에서 이룬 수직계열화 성공을 발판 삼아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 회장의 마음속에는 빚이 남아 있었다.

평소 ‘울산에서 얻은 이익을 울산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던 최 회장은 큰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바로 울산대공원 조성이었다.

당시 울산에는 마땅한 공원이 없어 시민들의 불편이 많았다. 평소 조림사업과 농업에 관심이 많던 최 회장은 대공원 조성을 통해 ‘회색 도시’ 울산을 친환경도시로 바꿔보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마침 울산시에는 556억원을 들여 매입한 공원용 부지가 있었다. 그래서 SK가 이 땅에 10년간 1020억원을 투자해 공원을 만든 뒤 시에 무상 기부하기로 했다. 1995년의 일이었다.

잘 진행되던 울산대공원 조성 사업은 1998년 암초를 만났다. IMF 외환위기로 인해 비사업성 투자 금액이 축소되고 뒤이어 최종현 회장마저 세상을 떠났다. 후계자 최태원 회장과 SK로서는 대공원 조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안팎 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 큰 돈을 들여 대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하지만 최 회장은 공원 조성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자고 결의했다. 아버지의 유언이자 울산시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결국 울산대공원 조성은 외환(外患)과 상관없이 그대로 진행됐고, 2002년 4월 1차 개방을 거쳐 2006년 완전 준공됐다.

무료 공원인 울산대공원의 크기는 369만㎡(약 110만평). 110만 울산시민에게 1인 1평씩 공원을 나눠주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7대 도시 중 공원 면적 꼴찌였던 울산은 단숨에 공원 면적 1위 도시로 올라섰고, 회색 도시 이미지도 서서히 누그러졌다. 울산대공원은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기업과 도시의 동반 성장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울산=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