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면적의 3배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정유공장 SK에너지 울산CLX에서는 하루 84만배럴의 원유가 정제되어, 이중 60%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 대한민국 석유 수출의 전진기지다.


1980년대 히트한 대중가요 ‘고래사냥’의 무대는 동해다. 안성기, 김수철 주연의 동명(同名) 영화 ‘고래사냥’의 무대는 강원도 양양 남애향이었다. 하지만 진짜 유명한 고래사냥터는 따로 있다. 바로 울산 장생포다. 포경선에 잡힌 고래의 피가 바다를 물들여 바다 빛깔이 붉게 보였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울산 장생포는 대한민국 고래잡이의 메카였다. 울산의 특산물로 고래고기가 유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에서의 고래잡이는 1986년 법으로 금지됐다. 고래잡이가 사라지면서 북적였던 장생포의 옛 모습도 사라졌다. 가끔 울산 앞바다에 고래가 출몰하기는 했지만, 잡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됐다. 핏빛 바다는 다시 푸른빛으로 돌아왔다. ‘고래 포구’ 장생포는 조용하다. 하지만 소리 없는 혁명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되고 있다.

고래사냥터에서 이제는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으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는 ‘대한민국 석유 산업의 메카’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이하 울산CLX)가 있다. 총 면적 826만㎡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유공장인 SK에너지 울산CLX를 기자가 직접 둘러봤다.<편집자 주>

울산CLX의 총 면적은 826만㎡. 비법정 단위인 ‘평’으로 환산하면 250만평에 이른다. 단일 공장으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대 규모다. 여의도 면적의 3배에 육박하는 광활한 부지에는 원유 저장시설, 정유 공장, 중질유 분해공장, 나프타 분해공장, 윤활유 공장, LPG 지하 암반 저장시설, 송유관, 울산CLX 전용 부두가 모여 있다.

최근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의 지주회사를 등장시켜 SK에너지(정유), SK종합화학(석유화학), SK루브리컨츠(윤활유) 등 에너지 계열 업체를 3개사로 분할했다. 울산CLX는 이 3개사가 한꺼번에 모여 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각 업체 간의 벽은 없었다. 한 지붕 세 가족인 셈이다.

걸어서 공장 전체를 둘러보기에는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공장의 면적이 워낙 크기 때문에 버스를 통해 공장을 돌아봤다. 그마저도 시간에 쫓기다보니 공장을 세세하게 보기는 어려웠다. 울산CLX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총 면적이 826만㎡에 이르는 초대형 공장이지만,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기자가 울산CLX를 찾은 날, 울산은 낮 기온 섭씨 31도의 땡볕 날씨를 보였다. ‘날씨가 더워서 사람이 바깥에 없나’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람 구경하는 일은 드물다. 김기열 SK에너지 울산CLX 홍보팀 과장은 “이 공장에는 원래 사람이 적어서 식당이 아니면 사람을 볼 일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여의도 3배 단지에 2000만배럴 저장

울산CLX에서 직접 일하는 근로자의 숫자는 3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인근에 있는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등 다른 중화학 공업 공장에 비하면 8분의 1 수준이다. 종업원의 숫자가 적은 것은 이유가 있다. 모든 공정에 컴퓨터 자동화 시설이 탑재됐기 때문이다. 24시간 가동 체제를 갖추고 있는 울산CLX는 3000명의 근로자들이 4조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울산CLX 본관에서 500m 떨어진 제1정유공장과 제2정유공장. 군데군데 녹이 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굴뚝은 40여년의 세월을 그대로 나타냈다. 이곳이 국내 최초의 정유 공장임을 증명하는 가장 뚜렷한 증거였다.

울산CLX 안에는 34개의 둥근 탱크가 있다. 바로 원유 저장시설이다. 중동 등 주요 산유국에서 캐낸 기름을 배로 실어온 뒤 장생포 앞바다에 설치된 부이 시설(Buoy, 육지 저장탱크와 바다를 해저 송유관으로 연결한 해상 하역 장치)을 통해 탱크로 옮겨 기름을 저장하고 있다.

울산CLX 인근의 석유화학공단에는 석유 응용형 종합화학 공장인 폴리머 제조공장 등이 첨단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가동되고 있다.


이 탱크의 크기는 육안으로 봐도 매우 웅장하다. 몇몇 탱크에는 울산 장생포의 상징 동물인 검은색 범고래가 크게 그려져 있어 탱크의 웅장함을 더하고 있다. 탱크의 크기는 대략 어느 정도일까? 울산CLX의 원유 저장탱크의 지름은 100m, 높이는 27m에 이른다. 위에서 보는 모습은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과 유사하다. 크기도 체육관급이다. 김기열 과장은 “서울 장충체육관 건물 3동이 한꺼번에 넣고, 그 위에 축구장을 하나 더 얹어 놓을 수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옆에서 보면 원유 탱크에 지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탱크에도 엄연히 지붕은 있다. 기름이 없을 때는 지붕이 바닥에 가라앉았다가, 기름이 채워지면 지붕이 올라오는 방식이다.

34개의 원유 탱크에 저장할 수 있는 원유는 약 2000만배럴. 탱크에 담긴 원유를 드럼통에 나눠 담으면 약 1600만개에 이른다. 우리 국민이 하루에 사용하는 석유의 양이 200만배럴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울산CLX에 저장된 원유량은 우리 국민이 10일간 넉넉히 사용할 수 있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원유 탱크와 울산CLX 내부는 긴 송유관으로 연결돼 있다. 공장 곳곳에 설치된 흰색과 회색 송유관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수치상으로 나타난 길이는 약 60만㎞에 이른다. 울산CLX 홍보도우미 권희선씨의 설명을 그대로 들어보면 송유관 길이에 대한 이해가 빨라진다.

“울산CLX에 설치된 송유관을 곧게 펴서 거리를 재면 지구와 달을 왕복하고 다시 한 번 달에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서울에서 울산CLX까지 무려 1700번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로 단일 공장에 설치된 송유관 길이로는 세계 최장 거리입니다.”

2조 투입 ‘지상 유전’ 핵심시설 급부상

탱크에 저장된 원유는 송유관을 거쳐 정제공장(상압증류탑)으로 이어진다. 현재 울산CLX에 설치된 정제공장은 총 5개. 1964년에 지어진 제1공장부터 1996년에 완성된 제5공장에 이르기까지 5개의 공장에서 하루 84만배럴의 원유를 정제하고 있다.

기름의 정제 과정은 학창시절 과학 시간에 배웠던 그대로다. 원유의 주성분은 탄소와 수소의 화합물인 탄화수소다. 액체 상태인 원유는 증류를 통해 분류할 수 있다. 끓이면 기체가 되고, 파이프로 냉각을 시키면 액체가 된다. 원유를 증류시키면 끓는점에 따라 층이 형성되어 제품이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원유의 정제 원리다.

원유를 끓이면 증류탑의 제일 높은 층에 액화석유가스(LPG), 그 밑으로 휘발유, 나프타(석유화학의 원료), 등유, 경유, 아스팔트, 중질유(벙커C유)가 차례로 증류돼 나온다.

벙커C유는 원가가 싼 덕에 한때 활용 빈도가 높았다. 하지만 유황 과다 발생 등의 환경 문제 때문에 최근 들어 사용 빈도가 줄어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증류된 기름을 버릴 수도 없는 일. 대안은 있다. 울산CLX 내에 별도로 설치된 중질유 분해시설에서 다시 증류해 새로운 기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히 제2중질유 분해시설(FCC)은 SK에너지가 야심차게 개발한 일명 ‘지상 유전’이다. 바다에서 기름을 못 캐니 이미 나온 중질유를 재분해해 새로운 기름을 얻어내는 것이다. FCC는 울산CLX가 자랑하는 대한민국 정유 기술의 핵심시설이다. 이 시설을 거쳐 벙커C유를 다시 정제하면 고급 휘발유, 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을 얻을 수 있다.

SK에너지는 제2FCC공장에 2조원을 투자하는 노력을 보였다. 과거 사택 자리였던 이곳에 FCC 시설이 들어선 것은 2008년. 제2FCC 준공식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여할 정도로 중질유 분해 분야는 정부와 SK에너지 모두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이다.
울산CLX는 기름을 수출하는 수출의 전진기지다.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기름을 수출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할 수 있다. 물론 원유는 우리나라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원유를 정제한 정유 제품을 해외 각국 특히 중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국가로 수출하고 있다.

하루 50만배럴씩 세계 각지로

SK에너지는 울산항 내에 8개 부두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1, 2부두는 울산 내항에 있고, 3부두부터 8부두, 이른바 ‘T-5’지역은 울산CLX 안에 있다. 특히 장생포 앞바다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7, 8부두는 초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다. 대형 선박 부두가 먼 이유는 따로 있다. 수심이 얕은 앞바다로 올 경우 유조선이 좌초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평균 수심 약 20m에 이르는 지점에 7, 8부두를 설치했다는 것이 SK에너지 측의 설명이다.

22척의 유조선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울산CLX 부두는 하루 평균 2척, 연간 750척의 유조선이 접안해 정유 제품을 실어가고 있다. 기자가 찾은 이날 마침 7부두에 싱가포르 선적(船籍)의 대형 유조선이 해상 출하 시설인 ‘로딩 암(Loading Arm)’을 통해 정유 제품을 싣고 있었다. 로딩 암은 송유관과 유조선을 연결한 3개의 흰색 관으로, 이 관을 통해 정유 제품이 유조선에 실리게 된다. 정유 제품 선적(船積) 소요시간은 꼬박 하루 정도다.

울산CLX T-5지역의 정유 출하를 책임지고 있는 정대호 석유수출2팀 팀장은 “하루 50만배럴의 정유 제품이 울산CLX 부두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50만배럴은 울산CLX 1일 정제량인 84만배럴의 60%에 이른다.

2010년에 석유 제품은 320억달러의 수출을 기록해 자동차를 제치며 국내 수출품목 중 4위를 기록했다. 원유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화학제품의 수출까지 더하게 되면 국내 석유 및 화학제품의 수출순위는 1, 2위를 다툰다.

수직계열화 완성 원년인 1991년 당시 선경그룹의 석유화학 산업 매출은 4조원에 불과했다. 그 중 수출액은 1조원 수준이었다. 20년이 지난 2010년 SK의 석유화학 산업은 45조8660억원의 매출 중 27조7208억원의 수출을 기록했다. 20년 사이에 매출은 11배, 수출은 27배가 성장한 것이다.

SK에너지 측은 “수직계열화는 내수 시장에서 ‘완성’을 의미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시작’일 뿐이라는 최태원 회장의 판단에 따라 투자를 공격적으로 강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울산=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