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8일 현대차 임단협 상견례.


여기는 베이징 올림픽 야구경기 결승전이 열리고 있던 우커송 야구장. 한국 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이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있다. 스코어는 3:2. 9회말 1아웃 주자 만루 상황. 지고 있던 쿠바가 기회를 잡았다. 타석엔 쿠바의 야구영웅 구리엘이 들어섰다.

한국의 좌완 에이스 류현진 투수와 맞대결이 펼쳐지려는 순간, 김경문 올림픽 대표 감독은 타임을 외쳤다.

최고의 피칭을 하던 류현진 투수를 정대현으로 교체했다. 예상치도 못했던 교체 타이밍. 모두들 의아해 했다. 정대현의 직구는 스피드가 느려 자칫 장타를 허용할 경우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딱! 와∼’ 2스트라이크 노볼 상황에서 3구를 노려친 구리엘의 타구는 병살타가 됐다.

정대현 투수와 진갑용 포수는 완벽한 협동으로 쿠바의 국민영웅을 이길 수 있었다. 당시 진갑용 포수가 선택했던 공은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변화구. 정대현은 포수가 요구하는 코스에 정확히 공을 찔러 넣었다. 만약 정대현이 포수가 원했던 코스에 공을 던지지 못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선진 노사관계 미래를 위한 선택

노사문제도 다르지 않다. 경영전략을 짜고 직원에게 전달하는 회사는 포수, 회사의 지시를 받고 업무 활동을 벌이는 투수는 직원이다. 회사와 직원의 완벽한 조화가 이뤄졌을 때 타석에 들어선 경쟁사를 꺾을 수 있다.

승리의 결과는 모두에게 돌아간다. 조화를 이뤄낼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원만한 노사관계, 성과 보상, 복리후생 확대 등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때 한국 경제는 안심할 처지가 못된다.

상당수 기업은 아직도 여러가지 이유로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해법이 필요하다. 선진 노사문화 정착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내야 한다. 회사 성장의 결과를 직원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문제는 회사와 노조 개개인의 문제로 보기 이전에 정부 차원의 해결 과제이기도 하다. 멍석은 깔려졌다. 지난해 도입된 타임오프제는 선진 노사문화 정착을 위한 첫걸음이다. 1997년 법안이 만들어져 13년의 유예기간을 거쳤다.

타임오프제란 노조 전임자에 대한 회사의 임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다만 노사교섭, 산업안전, 고충처리 등 노무관리적 성격이 있는 업무에 한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009년 말 노사정 합의에 의해 도입, 지난해 7월 1일 시행됐다.

노조 전임자는 노조원의 간부다. 생산 업무에 참여하지 않고 노조 업무만 전담한다. 임금은 회사가 아닌 노조조합비에서 제공된다. 타임오프제는 선진국에서 도입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비대해진 노조의 비리나 무분별한 파업 등 부정적 요소를 없애고 긍정적인 노사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도 컸다.

그런데 시행 1년이 지난 지금,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노사정 모두 제각각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는 타임오프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노조 업무로 분류 하는데 있어 범위가 제대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회사 측은 ‘원리원칙대로’라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비대해진 노조의 비리가 연례행사처럼 터져나오는 만큼 문제 소지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회사가 잘 되어야 직원도 잘 되는 것 아니냐”며 “(타임오프제는) 선진국에서도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제도로 노조 전임자의 급여로 사용되는 비용이 직원 복리후생에 쓰이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현대차의 경우 타임오프제 유예기간 13년 동안 노조 전임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회사에서 부담하는 비용이 증가한 것으로 직원들의 복리후생 비용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차는 노조측에 233명이던 노조전임자의 수를 타임오프제 기준에 맞춰 24명의 명단을 달라고 요청을 한 상태다. 그러나 노조는 명단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현대차는 법에 따라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2달 분을 지급하지 않았다.

국내 노조 상황과 가장 흡사한 일본을 살펴보자. 노조 전임자들은 반드시 무급휴직으로 처리하고 있고, 급여는 노조에서 지급한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도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일부 정치권 재개정 논의 새 불씨

투수와 포수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을 때는 감독의 조율이 필요하다. 각각에게 확실한 팀의 운영방침을 전달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심판격인 정부의 현재 입장은 어떨까. 타임오프제 도입에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다.

철저한 관리감독을 통해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아왔던 노사 갈등의 문제 해결은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타임오프제를 정책적인 차원에서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상황대로라면 유지 자체가 힘들어 보인다. 국회의원 일부가 타임오프제 적용 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단체도 동조하고 있다.

한나라당 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민본21’ 간사인 김성태 의원 등 50명은 조직 형태와 대상을 같이하는 기업 단위 복수노조 설립 불가, 상급 단체에 파견된 전임자 임금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타임오프제는 시행 1년만에 연착륙에 성공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86.1%가 합의했고, 한도준수기업은 전체 98.8%에 달했다. 노동계의 동의를 거쳐 진행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1년 만에 개정을 하겠다고 정치권이 나선 이유는 뭘까.

대기업 관계자는 “선거 등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당리당락에 따르 움직이려는 것에 노동계의 입김이 더해져 타임오프제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임오프제는 정부가 회사와 노조 모두를 위해 도입했던 제도다. 어느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정부 차원의 확실한 노선 정리가 필요하다. 타임오프제를 통해 선진 노사문화를 확립, 한국 경제의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공공기관 도입률 60%대 육박

정부의 타임오프제 도입 의지는 얼마나 될까.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공공기관의 참여 여부로 가늠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노조가 공공기관은 193개. 이중 118개 기관(61.8%)이 이 타임오프제를 도입했다.

(3월 기준) 개별 노조 수 기준으로는 전체 220개 노조 가운데 129개 노조가 타임오프제를 도입해 58.6%의 도입률을 보였다. 타임오프제 도입 이후 공공기관의 노조 전임자 수는 459.5명에서 457.3명으로 2.2명 감소했다. 조합원 수를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눈 공공기관의 노조 조직률은 지난해 60.5%에서 58.4%로 줄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