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부 송원제 기자]


대전시의 어느 산업연구소. 연구원들은 알칼리성의 일반 분말세제로 양모(울)나 견(실크) 소재 옷을 세탁할 때 생길 수 있는 옷감 수축 및 손상 문제 해결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유기용제를 이용한 드라이클리닝을 하자니 매번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거슬렸다.

고급 의류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집에서 물빨래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았다. 중성세제를 개발키로 한 것. 손세탁에 적합하도록 섬유와 피부에 안전한 세정 성분을 적용했는데 꼭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한 것처럼 기막힌 성능을 보였다.

하루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해보는 건 어떨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샴푸와 보디용품 등에서만 볼 수 있었던 펄감을 넣어봤다. 펄 들어간 세제는 처음이었으므로 차별성도 일품이었다. 1990년 울과 실크 의류 세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내 첫 중성세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울샴푸’. 범상치 않은 이름만큼이나 중성세제 시장을 평정한 브랜드의 위용은 대단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더욱 커져만 가는 경쟁력을 갖고 있는 울샴푸의 비결을 조인식(56) 애경 중앙연구소장 겸 전무이사를 통해 들여다봤다.

대전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애경종합기술원. 눈처럼 새하얀 건물이 인상적인 이곳은 생활용품·화장품 등 애경의 신기술 기반 고부가가치 사업들이 개발되는 중앙연구소다. 인터뷰를 위해 연구동으로 향하는 도중 만난 조 소장은 건물 앞 드넓은 잔디밭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110억원 매출·시장점유율 70% 독보적

장마 영향으로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흐리고 바람도 심하게 부는 날, 웬 빨래? 그런데 함께 있던 연구원들과 웃으며 기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빨래하기 참 좋은 날씨죠?” 옆에는 와이셔츠와 수건 등 빨랫감들이 널린 건조대, 울샴푸를 비롯한 각종 세제들이 놓여 있었다. 연구개발 및 생산 총괄 책임자로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펼치는 익숙한 일상의 단편들이리라.

울샴푸를 개발중인 연구원.


2층 사무실에서 빨래를 마친 그와 마주 앉았다. “출시 20년이 됐는데도 ‘중성세제 1위’를 수성하는 울샴푸의 원동력은 무엇이냐”고 묻자 자신감이 깃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시장 70%를 점하고 있는 독보적 브랜드니까. 중성세제 시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체 159억원 중 울샴푸가 110억원을 팔아치웠다. 최근 3년간 매출도 지속적인 상승세다. 올해 시장 규모는 170억원이 예상되는 가운데 매출 130억원, 점유율 73%로 목표를 더 높게 잡았다.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수긍이 가는 성적표요, 실감할 수 있는 인기다. 조 소장이 되물었다. “대한민국 주부라면 모두 쓰고 있지 않나요? 세탁기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옷에 대한 고민을 속시원하게 풀어줬는데….” 그렇다. 울샴푸라는 로고는 이제 중성세제와 동격으로 인식될 정도로 보통명사화 됐다. 의류매장에서 “이 옷, 반드시 드라이클리닝 해야 되나요”라고 물어보면 “울샴푸로 물세탁하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점원도 흔하다.

“주부들의 세탁 개념이 ‘클린’에서 ‘케어’로 옮겨 가면서 울샴푸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어요. 최근 액체세제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어 다시 한 번 도약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혁신적 제품인 만큼 ‘울샴푸 오리지널’이 처음 나왔을 때 큰 반향을 일으켰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별로였단다. “당시 의류 세탁은 분말세제로 물빨래하거나 드라이클리닝을 이용하는 정도였습니다. 울·실크와 같은 고급 의류도 보편화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죠. 중성세제라는 개념 자체를 알리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초기 제품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 판매가 힘들다는 영업사원들의 불평도 이어졌습니다.” 방법은 하나. 품질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섬유 손상 억제, 색상 보호, 이염 방지 등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키며 국제양모사무국으로부터 울마크를 획득했다. 가격은 낮췄다. 시간이 지나면서 울샴푸의 진가를 알아본 소비자들에 의해 입소문이 났다. 그 결과 ‘고급 의류에는 울샴푸’라는 공식이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경쟁업체 잇단 카피 제품에 마음 고생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울샴푸도 지난 세월 동안 변화를 겪었다. 고객의 여러 니즈를 맞추기 위해 종류가 다양해졌다. 울샴푸 오리지널을 필두로 향과 탈취 기능이 뛰어난 ‘울샴푸 후레쉬’, 드럼 세탁기에 적합한 ‘울샴푸 드럼’이 나왔다. 기능성 의류 전용인 ‘울샴푸 아웃도어’와 컬러 옷을 위한 ‘울샴푸 블랙앤컬러’도 있다.

특히 기능성 제품은 보다 업그레이드된 기술력을 자랑한다. 아웃도어용은 등산복·골프복·스키보드복 등 아웃도어 의류의 투습 및 발수력을 향상시켜 오랫동안 옷의 기능성을 유지해준다. 컬러 의류용은 특수 처방으로 이염과 표면 손상, 색 바램을 방지한다. 통상 제품 가짓수가 늘어나더라도 전부 사랑받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 중 몇몇은 소비자의 선택을 못 받아 사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 울샴푸는 이런 틀을 깼다.

제품 라인이 골고루 인기를 누리고 있어 현재까지 모두 생존해 있다. 마케팅도 용도 확장을 통한 시장 확대 전략을 택했다. 꼭 울이나 실크에만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란 얘기다. “순면, 마, 모시는 물론 와이셔츠, 티셔츠, 란제리도 가능합니다. 스타킹, 손수건, 모자까지도 울샴푸로 빨 수 있어요. 옷을 더욱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비결이죠.” 그 일환으로 의류 업체들과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 속옷회사 비너스와 올바른 속옷 세탁법 캠페인을 실시하기도 했다.

성숙한 성년이 되기까지 성장통이 왜 없었겠는가. 울샴푸의 성공에 조급해진 타 업체들이 초기에 카피 제품을 잇따라 내놓기 시작한 것. 패키지 디자인부터 서체, 제품명까지 유사하게 흉내냈다. 이 때문에 애경과 조 소장의 마음 고생도 적지 않았다.
“이 시기에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으면서 잠시 울샴푸의 상승세가 주춤했어요. 그래도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묵묵히 우리 갈 길을 갔습니다. 그게 애경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품질이 자신 있었기에 소비자들의 선택을 믿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섬유 보호 전문 세제 브랜드로 도약

울샴푸의 출생부터 성장까지 곁을 지키며 애경과 함께 해온 조 소장에게 연구소를 경영하는 원칙을 물었다. “소비자 우선주의, 안전성, 친환경이 핵심 가치의 세 축입니다. 간혹 연구원들이 자아도취에 빠져 ‘내가 만든 게 최고’라고 생각하면 나는 ‘그건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개발해야죠. 연구원들에게 항상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그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1983년 애경에 입사해 28년간 연구개발에 매진해온 ‘애경 역사의 산증인’이다. ‘하나로’ 샴푸, ‘케라시스’ 샴푸, ‘동의생금’ 치약, ‘2080’ 치약, ‘리큐’ 겔 타입 세제 등 숱한 히트작을 써냈다. 울샴푸도 그 중 하나다. 그의 사전에 ‘현상 유지’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지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최고의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고 계속해서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바로 여기서 나오는 거죠.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끊임없이 기술을 진화시키고 신제품을 개발해온 것이 결국 울샴푸 성공의 핵심입니다.”

이는 장영신 애경 회장의 경영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울샴푸를 개발할 때만 해도 애경은 다국적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와 합작 형태의 회사였다. 외국 선진기업의 기술을 제품에 접목, 품질을 높이겠다는 전략에서다. 합작을 하게 되면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나 기술을 무조건 써야 하는 계약을 맺는 게 일반적이었던 현실.

그러나 장 회장은 ‘국내 소비자에게 맞는 제품은 국내 연구원의 기술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 뚜렷했단다. 결국 주관을 관철시켜 50대50 합작을 이뤄냈고 소신대로 뜻을 펼쳤다. 그는 장 회장의 철학이 울샴푸가 우리 연구진에 의해 개발돼 한국 브랜드, 애경의 브랜드로 나올 수 있었던 중요한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울 집을 두고 20여년을 주말부부로 지내면서까지 대전에서 애경과 동고동락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애경人’으로서의 보람과 자긍심이 충만하다. 회사는 고마운 존재이자 인생의 동반자”라며 소회를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울샴푸가 더 긴 역사를 써내려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섬유 보호 전문 세제 브랜드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소비자의 니즈가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해질수록 세제도 스마트하게 변화해야 하죠. 그 첫 발판이 기능성 의류 전용 세제로 내놓은 울샴푸 아웃도어입니다.” 울샴푸의 진화는 계속될 것이란 기대감을 주는 그의 말처럼 소비자가 있는 곳에 애경이 있었고 애경은 아직 보여줄 게 많았다.

‘울샴푸’란 특이한 상표 때문에 출시 초기 머리 감는 고객까지
세제 제품명 ‘샴푸’를 붙여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출시 초기, 정말 샴푸인 줄 알고 머리를 감은 후 ‘이게 도대체 뭐냐’며 항의하는 소비자가 있었다. 울샴푸로 강아지를 목욕시키는 사람은 아직도 간혹 있단다. 울 소재에만 사용하는 세제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소비자도 많았다.

모두 ‘울샴푸’란 이름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바꾸지는 않았다. 의류도 모발처럼, 피부처럼 보호하고 케어하겠다는 게 브랜드의 기본 이념이었기 때문이었다. 품질·콘셉트·브랜드가 삼위일체한 제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