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추앙받은 장수(將帥)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뉜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용장(勇將)과 양장(良將)이다. 특히 후자는 글자 그대로 부하나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진 장수를 말한다. 특히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부하를 아끼는 지휘관이 있다면, 아랫사람들은 신뢰와 믿음으로 이에 응하게 되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전형적인 양장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을 역임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장군이다. 소탈하고 후덕한 성격을 갖고 있던 그는 항상 스스럼없이 주변 사람들을 대했고, 병사들이 모인 곳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춰 병사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실시 전날 강둑에서 한 병사와 나눈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는 일화다. 작전 실시 전날 부대 주변을 시찰하던 아이젠하워 장군은 강둑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병사를 발견했다. 아이젠하워는 그를 불러 “왜 그러나 병사, 무슨 일이 있나?”라고 물었고, 문제의 병사는 머뭇거리다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불과 2개월 전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 내내 있다가 바로 어제 퇴원해 이곳에 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별로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이에 아이젠하워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자네와 나는 좋은 짝이겠군. 왜냐하면 나도 지금 불안하다네. 그래도 우린 이번 공세를 오래 전부터 계획했을 뿐 아니라 필요한 항공기와 무기, 공정대원을 모두 확보했네. 잠시 나와 함께 강가를 걷겠나? 그렇게 하는 게 서로 도움이 될 것 같구만.”

또 한 번은 아이젠하워가 차로 이동하던 중 앤트워프 근처에서 일단의 병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던 적이 있었다. 대다수의 병사들은 집으로 귀환하기 위해 배편을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대화 중 그는 인솔하던 대위가 이미 다섯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젠하워는 그에게 다시 복귀하게 되면 어디로 가겠냐고 물었는데, 문제의 대위는 서슴없이 “다시 자대로 돌아가 싸우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아이젠하워는 그 자리에서 끄덕거린 후 다른 병사들과 대화를 마치고 차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차가 얼마 이동도 하지 않았을 때 동석하고 있던 연합군 병무국장인 벤 리어(Ben Lear, 1879~1966) 장군에게 말했다. “이보게 벤. 아까 그 대위 같은 경우는 다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지 않나? 또 그런 일이 없도록 자네가 좀 조치를 취해주게.”

병사를 아끼고 교감을 나눈 것으로 잘 알려진 또 다른 인물은 1991년 걸프전(1차 이라크전) 당시 다국적군 사령관을 역임한 노먼 슈워츠코프(Norman Schwarzkopf, 1934~2012) 장군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대대장을 지낸 그는 지뢰밭에서 부하들이 부상을 입고 고립되자 직접 기어들어가 부하들을 구출해 나와 동성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병사들에게도 큰 신망을 얻었다.

처음 대대장으로 부임했던 당시 슈워츠코프 중령은 간부들이 병사들과 다른 시간에 별도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일부러 폭우 속에서 식당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병사들 뒤로 가 줄을 섰다. 이에 식당 관리관이 뛰어나와 “대대장님은 식사 자리가 따로 지정되어 있으니 줄을 서시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으나, 슈워츠코프는 줄에 계속 선 상태로 이렇게 말했다. “중사, 만약 내 병사들이 빗속에서 줄을 서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나 또한 여기서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릴 걸세.” 그리고 그는 병사들과 지휘부가 별도로 식사하는 것이 양자 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행위라고 판단하여, 식당 내 간부의 별도 지정구역을 모두 없애고 병사들과 함께 식사할 것을 지시했다.

지휘관이란 부하들과 항상 교감을 나누며 고된 현장에서 함께 해야 한다는 철학은 슈워츠코프의 또 다른 일화에서 읽을 수 있다. 추수감사절이 돌아왔을 때 그는 예하 중대에 방문했는데, 중대장이 부상병들을 돌보기 위해 후방 병원에 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칭찬하고자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병원에 간 슈워츠코프가 본 광경은 깨끗한 전투복을 갖춰 입은 문제의 중대장이 병원 식당에서 다른 장교들과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슈워츠코프는 우선 그가 부상병들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 간 점에 대해서 칭찬한 후 왜 곧장 부대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대위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사실 대대장님께서 병사들에게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가지고 오신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저는 잠시 이곳에 남아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저녁도 잠깐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슈워츠코프는 대위에게 이렇게 일갈했다.

“자네 생각엔 병사들이 자기들은 크리스마스 날 전투화를 갖춰 신고 추운 바깥에서 근무하는 동안 중대장은 따뜻한 후방에 있다는 걸 모를 것 같나? 불편하더라도 자네가 병사들과 함께 야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는다면, 저 친구들 입장에선 전투에 돌입할 때 자네가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믿고 따르겠나?”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손자병법(孫子兵法) 구변편(九變編)에서는 ‘정도가 지나치게’ 부하를 아끼는 것은 어느 정도 희생을 항상 감수해야 하는 전쟁터에서 자칫 불필요한 갈등과 번민을 불러오게 되기도 한다(愛民可煩也)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부하를 보듬는 리더의 모습은 아랫사람을 감동시키고, 부하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하는 용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전국시대 때 진(晉)나라의 충신이던 예양(豫讓)은 자신이 섬기던 지백(智伯)이 조양자(趙襄子)에게 패하고 살해당하자, 거지 행세를 하면서 조양자를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당했다. 어차피 폭군으로 악명을 떨친 데다 이미 죽은 지백을 위해 왜 의미 없는 복수를 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예양은 이렇게 답한다. “여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하고, 선비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이를 위해 죽는 법이다. 비록 그가 폭군으로 악명이 자자했던 건 사실이지만, 나에겐 나를 알아봐준 현군이었다.”

이와 관련한 일화는 오자병법(吳子兵法)의 저자인 오기(吳起)의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위(衛)나라 장수이던 오기는 행군 중 병사 한 명이 등창으로 괴로워하자 직접 그의 상태를 살핀 후 즉시 자신의 입으로 그의 고름을 빨아냈다. 병사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이 직접 고름을 빨아주는 사실에 크게 감격했고, 이 일화는 그의 모친에게도 전해졌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친은 기뻐하기는커녕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등창은 집안 내력인데, 이 아이의 아버지도 전쟁에 나갔다가 등창 때문에 고생하자 오 장군이 고름을 빨아내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격한 애 아버지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전사했죠. 이 아이도 또 고름을 직접 빨아내주셨으니, 틀림없이 전쟁터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전사할 것입니다.”

진정한 양장은 자신이 이룩한 업적 뒤에는 언제나 자신을 도와주던 이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다. 자신에게 돌아온 영광이 홀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 그날이 있기까지 도와준 모든 이들의 희생이었음을 되새길 줄 아는 것도 명장, 양장의 필수적인 덕목인 것이다.

미군의 첫 해병대 출신 합참의장을 지냈던 피터 페이스(Peter Pace) 장군은 합참의장 퇴임식을 한 직후인 2007년 10월 1일 해병대 박물관을 찾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그는 감회에 젖어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본 후 방명록을 적으며 손수 싸온 자신의 별 넷짜리 계급장 몇 개와 쪽지 몇 장을 그곳에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각각의 쪽지에 적힌 이름과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네 장의 쪽지에 적힌 내용은 모두 유사했다. 이 쪽지들은 자신이 베트남 전쟁 때 잃은 소대원들에게 바치는 내용이었다.

“이 별들은 자네 것이지, 내 것이 아닐세!(These stars are yours, not mine!) - 사랑과 존경을 담아, 그대의 소대장 피터가.”

기업이든 군이든 모든 조직은 사람의 손으로 움직인다. 결국 성공의 열쇠는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묶인 모든 사람의 힘이기 때문에 부하들과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리더의 덕목인 것이다. 미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장군의 말처럼, “리더십이란 문제를 푸는 것이다. 그리고 병사들이 당신에게 더 이상 문제를 가지고 오지 않는 순간부터 당신은 그들을 이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하들은 당신에게 신뢰를 잃고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가져오는 문제 따윈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건 리더십의 실패”다. 리더가 항상 부하들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