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보다 고령화 시기가 빨랐던 일본도 은퇴는 여전히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정년이 지난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형태로 근로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의 전체 취업자 중 65세 이상의 비율은 10%를 돌파했다. 일본의 고령자들 역시 늦은 나이까지 어떤 형태로든 일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일본 정부는 2000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65세까지 안정된 고용을 확보하도록 정년을 61세 이상으로 연장하거나,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하도록 의무화했다. 이후 2004년에는 법을 다시 개정해 정년 연령이 65세 미만인 기업은 ‘65세까지 정년 연장’, ‘계속 고용제도 도입’, ‘정년제 폐지’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하도록 해 2006년부터 시행했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펼쳤던 이유는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사회보장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연금 수령 연령을 늦췄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1년부터 연령 수급 개시 나이를 60세로 정하고 3년마다 한 살씩 늦추기로 정했다. 따라서 2013년부터는 연금 수령 연령이 65세가 됐다. 연령 수급 연령은 늦춰졌는데 퇴직 연령이 이보다 빠르면 당연히 고령자들은 수입이 전혀 없는 시기가 생기게 된다. 일본은 당시 법정 정년 나이가 60세였고 기업의 실질 정년이 60세인 것을 고려해 연금 수급이 늦춰진 만큼 기업이 정년을 늦추도록 법을 개정해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해준 것이다.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

일본은 현재 고용 중인 고령자가 정년 이후에도 근무하기를 희망한다면 계속해서 고용해야 하는 계속 고용제도의 도입을 의무화했다. 정년을 보장하는 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향후 점차적으로 70세까지 정년을 늘릴 수 있도록 경영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또한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제정해, 모든 민간 기업들은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전체 종업원 수의 6.0% 범위 내에서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해 고령자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현재 일본 기업의 98%는 정년을 정해두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09년 기업의 15.1%는 ‘정년연장’을 택했고, 2.9%가 ‘정년 폐지’를 선택했으며 82%가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계속고용제도는 정년으로 일단 퇴직한 뒤 재고용하는 ‘재고용제도’와 퇴직하지 않고 계속 고용되는 ‘근무연장제도’로 나뉘는데, 2012년 기업의 도입 비율은 ‘재고용제도’가 71.6%, ‘근무연장제도’가 11.4%, ‘혼용’이 9.1%, ‘제도 없음’이 7.9%였다. 비록 기업이 재고용제도를 선택해 근로자의 임금이 기존보다 낮아지더라도 이런 제도가 있음으로 해서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퇴직 시기가 더 늦춰진 셈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출처=일본 후생노동성

일본 정부는 고령자의 계속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체에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근무 연장 제도 도입 장려금, 고령자 다수 고용 장려금, 고령자 고용 환경 정비 장려금, 고령자 직장 개선 자금 융자 제도, 고령자 계속 고용 급부 제도 등이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일본의 55~59세 연령층의 고용 형태는 정규직이 89%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촉탁/계약 사원이 6.2%, 파트/아르바이트가 3.6%, 파견근로자가 0.6%, 기타가 0.6%다. 이 연령대의 근로자가 대부분 정규직인 것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기업의 정년을 늘리도록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60세 이상 연령층의 정규직이 많지는 않다. 60~64세 연령층 고용 형태는 정규직 24%, 촉탁/계약사원 34.4%, 파트/아르바이트 37.6%, 파견근로자 2.0%, 기타 2.0%로 계약사원이나 아르바이트직이 과반수를 넘는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계속 고용된 적이 있는 사람은 67.2%로, 계속 고용된 사람들은 이후 월급이 줄어들긴 하지만 만약 임금이 25% 이상 줄어들 경우 감소분에 따라 국가에서 ‘고연령자 고용계속급부금’으로 일정 비율을 보상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일본은 2001년부터 연금수령연령이 상향조정 돼 2013년부터 65세가 됐고, 이후 3년마다 한 살씩 올라가 계속고용을 신청해 일을 하게 될 경우 연금 수급 개시 시점과 은퇴 시점 사이의 갭이 1~2년 사이로 그렇게 크지 않다. 또한 기업에 따라서는 기업 연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업연금을 받는 60~64세 연령층은 44%에 이른다.

후생노동성의 설문에 따르면 계속 고용자의 경우 ‘정기적인 수입으로는 부족하지만 절약하면 어쨌든 생활할 수 있다’가 28%, ‘급여 등의 수입이 있어 연금이 없더라도 생활할 수 있다’가 22.7%, ‘급여 등의 수입으로만은 무리이지만 연금이 있어 생활할 수 있다’가 16.8%로 67.5% 가량이 급여와 연금으로 생활을 하는 데 무리가 있을 정도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65~69세 연령층의 고용 형태를 보면 정규직은 16.7%, 촉탁/계약사원이 24.1%, 파트/아르바이트가 52.7%, 파견근로자가 2.0%, 기타가 4.5%로 아르바이트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설문에 따르면 정년 나이가 되서 기업을 퇴직한 이유는 ‘회사 규정으로 상한 연령에 도달했기 때문’이 48.7%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은퇴하고 싶어서’가 23.0%, ‘체력적으로 힘들어서’가 11.2%의 응답률을 보였다.

후생노동성의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 의식에 대한 설문에 따르면 ‘65세 이후라도 아직 기업 조직을 지탱할 수 있다. 연령으로 배제하지 말고 고령자도 활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4.7%로 매우 높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고령자도 사회를 지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법은 일 외에도 다양하게 있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79.4%로 매우 높다는 것이다. 즉, 6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일할 의욕이 높으면서 동시에 꼭 일이 아니더라도 사회 참여의 형태로 사회 공헌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의욕도 높다고 볼 수 있다.

실버인재센터

▲ 출처=실버인재센터 공식 홈페이지

일본 고령자들이 일할 의욕이 높고 사회 공헌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것에도 일본 정부는 적극 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의 노인 일자리 사업과 같은 형태로 일본은 앞서 실버인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실버인재센터의 경우는 전국적으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데 구인을 원하는 기업체와 구직을 원하는 노인들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진행한다. 실버인재센터는 교육·육아·간병·환경을 중심으로 지자체와 공동으로 기획하고 제안하는 사업을 지원한다. 사회참여를 희망하는 고령자에게 지자체와 협업해 업무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앙에 실버인재센터 사업협회가 있고 도·부·현에 실버인재센터 연합 본부 47개소가 있으며 시·정·촌에 실버인재센터 1790개소가 있다. 지역사회에서 고령자에게 적합한 직종을 개발하고 구인, 구직을 서로 연결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센터는 회원제로 운영되며 회비를 납부한 60세 이상의 건강하고 일할 의욕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이 센터는 회원 개개인이 쌓은 경험과 지식을 지역사회 공동체와 협력해 일할 기회로 만들어 주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버인재센터는 고령자의 사회참여를 이끌어내고 소득을 창출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특별히 다른 직업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사업 수주를 맡는 경우는 일을 하고 수익금을 참여 노인에게 배분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수주와 홍보에도 참여하고 있다.

실버인재센터는 임시·단기 취업을 희망하는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지역사회와 연계한 업무를 제공하는데, 청소·주차관리·정원관리·시설관리·서기·회계·방문판매원·편집·번역·목공·어린이 돌보기와 같은 단순 노무가 주가 돼 고령자 경험을 살린 업무 배치 비율은 낮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버인재센터는 지역 공동체화 고령자들이 협력해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급여보장의 성격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1980년부터 실버인재센터에 국가 보조를 실시한 것은 노인의 노동이 단순히 생계유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보람이 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일본은 정년 퇴직자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정년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퇴직하기 3년 전부터 직업 훈련을 시켜준다. 지식이나 기능을 배울 수 있는 직업 강좌는 위탁하거나 통신을 통해 교육하고 있으며 수강료는 무료이고 별도로 수강 지급금까지 준다. 덧붙여 일본의 노동성 장관은 고령자의 취업 활성화를 위해 고령자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직종을 선정해 발표하고, 이 직종에 우선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실버직원’과 기업, 윈윈(Win-Win)

▲ 가토제작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일본 정부가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하면서 고령자의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자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자연스레 이런 환경이 조성되니 기업들이 고령자를 채용하는 데도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기피직업군에서는 고령자 고용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소규모 건설업체 세키가와구미(關川組)는 2012년 3월 만 60세 정년을 폐지해 전체 직원 40명 중 10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로 남았다. 간병서비스 전문업체인 ‘케어21’도 올해 4월부터 65세 정년을 아예 없애기로 했다.

그런가 하면 일용품 도매업체 팔탁(Paltac)은 2014년 10월부터 시간제근무자를 포함, 7400여명의 전 직원 재고용 기간을 65세에서 70세로 늘렸다. 편의점 업체 로손의 경우 일본 내 전국 지점에서 일하는 파트타임직 약 20만명 중 60세 이상인 직원은 1만명이 넘는다. 로손은 “노동인구가 감소하는 지금 건강하게 일하는 노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60세 이상 고령자를 고용해 매출을 3배나 늘린 기업도 있다. 금속부품 가공공장인 가토제작소의 일화는 이미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가토제작소는 2001년 처음으로 ‘60세 이상만 고용한다’는 채용 공고를 내걸었다. 현재는 전 직원의 절반가량이 60세 이상인 ‘실버직원’이다. 가토제작소는 주문이 늘어 공장을 더 많이 가동해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존 직원들이 연장근무나 주말근무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데다, 그렇게 추가 근무를 하게 되면 추가 수당을 줘야 해 금전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됐다. 그 대안으로 가토제작소가 선택한 것이 고령자 채용이었다. 주중에는 현역 직원이 주요 업무를 담당하고 주말과 공휴일에 실버직원이 출근해 단순 업무를 지원하는 식으로 공장을 가동했다. 이로써 공장을 365일 가동할 수 있게 됐고 매출은 3배 이상 뛰었다. 가토제작소에서 일하는 ‘실버직원’ 중 70세 이상 노인은 50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