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와 애플의 신경전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애플이 영국 하원에 제출되고 심의중인 모바일 통신 암호화에 제한을 부여하는 수사권 강화 법안에 공식적인 우려의 뜻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IS의 파리 테러 이후 안보를 중심에 위치시킨 테러방지법이 속속 등장하는 시점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카카오톡을 기점으로 비슷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내 사정과도 오버랩된다.

신경전

영국 정부와 애플의 신경전은 아이폰 문자 메시지에 적용한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가 핵심이다. 쉽게 말하자면 영국 정부는 테러 방지 등의 이유로 아이폰 문자 메시지에 적용된 암호기술을 해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를 원하지만, 애플은 이에 극구 반대하고 있다. 수사권 강화 법안이 통신비밀 및 사생활 침해로 이어지는 소위 백도어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이유다. 인공지능을 위한 빅데이터 수집에 있어 애플은 데이터를 무자비하게 수집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수준이다. 폐쇄적 생태계 구축에 일가견이 있는 애플은 수사권 강화 등을 이유로 정부가 이용자의 정보를 확보하는 것에 발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카카오톡 감청논란을 겪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카카오는 당국의 협조가 있으면 최대한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일부 감청영장을 허용한다고 밝힌 상태다. 애플의 선택과는 대척점에 서있다. 영국 하원과 애플의 신경전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하지만 영국 정부와 애플의 다툼을 거시적인 현상과 연결할 필요도 있다. 최근 미국 ICT 기업들의 존재감이 강렬해지며 유럽시장을 장악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는 필연적으로 유럽의 데이터를 미국의 ICT 기업들이 확보한다는 뜻이며, 당연히 유럽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때 유럽을 휘감았던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란도 결국 유럽이라는 공동체와, 미국 ICT 기업의 힘겨루기로 봐야 한다.

정부는 OK, 다만 기업은 NO!

유럽은 실리콘밸리의 미국 ICT 기업과 전쟁을 거듭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의 차원에서 유럽 각국은 미국과 정보적인 측면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지만, 그 파트너가 ICT 기업이라면 문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줄리언 어산지가 폭로 후 영국에 들어갔다 부랴부랴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했으며, 에드워드 스노든을 취재했던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당국으로부터 보복성 조사를 받은 것이 단적인 사례다. 정부와 정부는 협력한다. 다만 ICT 기업은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애플은 물론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모두 유럽의 견제를 받고 있다.

이번 영국 정부와 애플의 아이폰 문자 메시지 암호기술에 대한 논란은 페이스북도 자유로울 수 없다. EU 차원에서 정보수집 및 반독점법 논란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페이스북의 경우 지난 6월 벨기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무차별적 데이터 수집에 대해 경고장을 받기도 했다.

아예 보고서도 나왔다.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정책은 EU법 위반이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해당 보고서는 페이스북이 로그인하지 않았거나 계정이 없는 비회원은 물론, 경로추적을 거부한 이용자들의 웹 경로까지 추적했다고 폭로했다. EU는 개인정보보호당국(DPAs·Data Protection Authorities)이라는 별도의 TF까지 꾸려 페이스북의 과도한 개인정보수집을 모니터링하기도 했다.

구글을 둘러싼 반독점 논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디언은 구글이 60억 유로의 벌금이 예상되는 반독점 혐의에 대한 EU의 조사를 중단시키고자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한 로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유럽의회가 구글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검색과 기타 서비스를 분리하는 일명 ‘구글 쪼개기’에 돌입하자 미국 상하원이 우려했던 상황과 겹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26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 재무위원회와 하원 의원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IT기업에 대한 (유럽의회의) 결의안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에 대한 EU(유럽연합)의 생각에 의심을 일으키게 한다”며 "구글 문제를 정치쟁점화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미국 정부 차원의 압박이다.

최근 구글과 유럽 언론사의 저작권 싸움이 다시 시작된 부분도 시선이 집중된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구글에 대해 소위 ‘스니펫세(snippet tax)’ 검토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구글이 뉴스 콘텐츠를 사용하는 대가를 언론사에 지불하라는 것이 골자다.

독일의 악셀 스프링어가 시도했던 정책이지만 구글의 맹공에 굴복했던 역사가 있었던 만큼, 스니펫세를 향한 관심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사실 유럽과 미국 ICT 기업의 신경전은 큰 틀에서 정보, 세금, 플랫폼 시장 영향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구글세는 물론, 애플의 기발한 조세회피도 마찬가지다. 테러방지법을 기치로 내건 영국 정부와 애플의 다툼도 결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일련의 각축전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 배경에는 점점 외연적 확장을 거듭하는 미국 ICT 기업에 대한 유럽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결국 이 전쟁은 각자의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파열음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