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가 5% 남았습니다. 충전기를 연결하세요.’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는데 휴대폰에 다음 문구가 뜬다.

‘배터리가 부족해 10초 후에 전원이 꺼집니다.’ 그 다음 엄습해오는 불안감은 오롯이 사용자 몫이다. 어디서 중요한 연락이 올까봐 불안해진다.

최신폰인데 배터리가 너무 금방 바닥나는 건 아닌지 불만 가득 눈매로 폰을 노려보기도 한다. 당신에게 주어진 배터리 잔량은 애초에 한정적이었다. 휴대폰이 신상이든 구형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니 남아있을 때 아껴 써야 한다. 번거롭게 충전기나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방법이다.

당신은 배터리 때문에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것은 충분히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아주 조금 기쁜 소식을 전하자면 그럼에도 배터리 기술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배터리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너는 왜 폰 꺼둬? 나 피하는 거야?”라는 억울한 핀잔을 피할 수 있는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1회 충전으로 15일 버티는 폰 등장

휴대폰 배터리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지표는 무엇일까. 배터리 용량이다. 용량이 1000mAh대에 불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출시된 제품들은 3000mAh대의 배터리를 장착하는 추세다.

물론 용량이 많다고 해서 전원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제품마다 배터리 소모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은 크기를 유지하면서(혹은 더 작게) 용량이 큰 배터리를 탑재한 제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은 순전히 기술력이 발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 출처=샤오미

이 분야에선 중국 제조사들 활약이 두드러진다. 최근 제품들을 보자. 샤오미 홍미노트3와 화웨이 메이트8의 배터리 용량은 4000mAh이다. 배터리 용량 앞자리가 4로 시작하는 휴대폰은 결코 흔하지 않다. 홍미노트3의 경우 시리즈 전작보다 용량이 1000mAh 늘어났는데 무게는 4g밖에 늘지 않았다. 오키텔이 최근 선보인 K10000은 더욱 어마어마하다. 무려 1만mA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했다. 1회 충전으로 최대 15일을 버틸 수 있다고 오키텔은 설명했다.

 

보조배터리와 배터리 케이스로 '간편 업그레이드'

더 오래 버티는 배터리를 맛보고 싶으면 휴대폰을 최신 제품으로 바꿔야 할까? 어찌 보면 무식한 방법이다. 돈을 아끼면서도 배터리 용량을 늘리고 싶다면 관련 액세서리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보조배터리와 같은 제품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휴대하면서 휴대폰에 잭을 연결하면 충전이 되는 식이다.

보조배터리는 샤오미 제품이 인기가 많다. 용량이 크면서도 가격은 타사 제품 대비 저렴한 덕분이다. 소비자들은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대륙의 실수’라고 불렀다.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한 것이다. 2만mAh 용량의 샤오미 보조배터리는 4만 원 이하에 구입 가능하다. 같은 용량 타사 제품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배터리 케이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보조배터리와 휴대폰 케이스가 결합된 형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타임지는 이달 초 ‘휴대폰 배터리를 오래 이용하기 위한 10가지 방법’이라는 기사를 통해 배터리 케이스의 이점을 소개하기도 했다. 보조배터리와 비교하면 별도의 잭 연결 없이도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출처=애플

애플도 아이폰6S 전용 배터리 케이스를 출시했다. ‘스마트 배터리 케이스’라고 명명된 이 제품을 아이폰에 장착하면 배터리가 80%까지 회복된다. 배터리 용량은 1877mAh로 그다지 넉넉한 편은 아니다. 이 제품이 출시되자 혹평이 이어졌다. 애플답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디자인이 일단 도마 위에 올랐다. 10만 원을 넘는 비싼 가격 역시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는 못했다.

 

'현기증 나는 속도감' 고속충전 기술

배터리 충전 기술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퀄컴은 차기 고속 충전 기술 퀵차지3.0을 공개했다. 퀵차지 기술을 탑재하지 않은 제품 대비 3배는 빠르게 충전이 가능하다. 퀵차지2.0에 비해서도 충전 속도가 27% 빠르며 전력을 45% 아낄 수 있다. 퀵차지3.0은 퀄컴의 차기 모바일 두뇌 스냅드래곤820 등에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해 이스라엘 스타트업 스토어닷은 더욱 파격적인 충전 기술을 선보였다.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최한 콘퍼런스에 참가해 배터리가 27%가량 남은 갤럭시S3를 29초 만에 100% 충전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스토어닷은 이 기술이 적용된 충전기를 오는 2016년부터 양산할 것이라고 전했다.

▲ 출처=화웨이

최근 화웨이도 고속 충전 기술을 선보였다. 3000mAh 용량의 배터리를 5분 만에 절반을 충전하는 기술이다. 다만 당장 상용화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크기의 특수 충전기를 통한 충전 방식이기 때문이다. 양자점(quantum dots) 충전 방식도 주목된다. 미국 밴더빌트대학 연구진은 양자점을 통해 충전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휴대폰을 초 단위로 완전히 충전하고 며칠 동안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디스플레이를 충전에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충전 방식도 등장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산하 연구기관 바들테크놀로지는 전기 펄스를 이용해 전력을 만들어내는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디스플레이가 배터리 소모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에서 착안한 기술이다. 역시 당장 상용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수소연료전지를 이용하는 방식도 개발되고 있다. 지난 8월 영구 인텔전트에너지는 아이폰6의 설계를 바꾸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소형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했다고 전했다. 1회 충전으로 일주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용화까지는 2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회사 관계자는 내다봤다.

소프트웨어(SW)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배터리 혁신에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퍼듀대·인텔·모바일애널리틱 공동연구팀은 SW 개선을 통해 휴대폰의 전력 소비량을 16%가량 줄여주는 앱 ‘허쉬’를 개발했다. SW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알아서 관리해주는 앱이다. 개발팀은 향후 앱을 발전시켜 휴대폰 배터리 수명을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와이파워'부터 '플렉시블'까지

무선충전 기술도 이목을 끈다. 제품과 충전기를 잭으로 연결하지 않아도 충전이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미 LG전자·삼성전자 등은 무선충전 패드를 출시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공공장소에 이 패드를 설치해 무선충전 인프라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이케아의 경우 가구에 무선충전기를 탑재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퀄컴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원거리에서도 여러 대 단말기를 동시에 충전 가능한 자기공명 방식 무선충전 기술인 와이파워를 선보였다. 기존 상용화된 것은 자기유도 방식인데 단말기를 무선충전 패드와 접점을 맞춰 올려놓아야지만 충전이 된다. 반면 와이파워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마치 와이파이(Wi-Fi)처럼 특정 구역에 단말기를 들여놓으면 충전을 할 수 있다.

▲ 출처=LG화학

다양한 형태의 배터리를 만들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SDI는 섬유와 같이 자유자재로 휘는 배터리를 개발했다. 목걸이, 헤어밴드 등 다양한 형태의 단말기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은 2013년 세계 최초로 전선 형태 와이어 배터리를 개발했다. 최근에는 육각형 모양의 헥사곤(Hexagon) 배터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스마트워치에 적용하기 알맞은 형태의 배터리다.

 

미래로 수렴되는 배터리 혁신 노력들

이처럼 배터리 혁신은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를 종합해 미래 배터리의 기준을 정리해볼 수도 있겠다. ‘크기는 작을수록 좋고, 수명은 길수록 유용하며, 충전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며, 다양한 기기에 탑재할 수 있도록 모양을 자유자재로 변경 가능해야 하고, SW는 배터리 소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물론 미래 배터리 기술을 선취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배터리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산업 분야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보인다. 웨어러블 기기 산업은 어떤가. 소비자들은 상용화된 대부분 웨어러블 제품의 배터리 성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수명이 짧아 자주 충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애플워치 배터리는 일반 용도로 사용해야 하루를 겨우 버티는 수준이다.

드론은 어떤가.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 받고 있으나 이대로라면 배터리 기술에 발목을 잡힐지도 모르겠다. 현재 배터리 기술로는 1시간을 날리기도 버겁다. 배터리 기술이 개선된다면 성장 잠재력이 폭발하지 않을까. 전기 자동차는 어떤가. 역시나 배터리 기술이 발전되면 성장판이 활짝 열릴 여지가 다분하다. 결국 배터리 혁신의 노력들은 미래로 수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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