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내 안의 사유, 155×88㎝ 혼합재료, 2009.

간간히 빗줄기 뿌리는 아스름한 새벽이었다. 여인의 풍만한 둔부같은 고혹(蠱惑)의 선홍색 나팔꽃은 연녹색 여린 손으로 가늘게 지주(支柱) 왼편을 감고 오르다 땋은 검은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말았다. 흠칫, 뜨거움에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돌린다. 살짝 골이 패인 목 줄기와 맨살 허리를 타고 조르르 흐른 빗방울은 가뭇없이 아련한 핑크빛 추억으로 축축이 젖어 들었다.

사랑은 덧없는 것인가! 생애 단 하루. 우연에 피어났던 풋사랑, 그 수줍던 파동이여. 함초롬히 속살을 드러낸 노란 꽃술은 자꾸만 그녀를 향해 가늘게 흔들거렸다. “근원이었던 싱그러움, 번져나간 파문에 대하여 비로소 노래하련다, 강물은 끊임없이/저쪽 능선을 둘러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김명인 시, 순결에 대하여>

여인과 달의 교감. 그 간극사이 환몽적인 아우라에 코발트블루(Cobalt Blue)로 점점이 물들어 가는 갈증은 차라리 미동도 않는다. 무릎 위 실크가 잔바람에 가늘게 일렁인다. ‘그대와 내가 탠덤바이크(Tandem Bike) 페달을 밟아 저 달에 우리 발자국, 그 기록을 남겨두고 싶어!’애수가 묻은 독백은 쓸쓸히 빈 마음을 때렸다.

 

 

구성-사랑, 145×145㎝ 혼합재료, 2010.

느릿한 걸음의 산책처럼 자전(自轉)은 쉼 없고 달빛은 왜 그렇게 하얀 살결을 푸르른 결로 바꿔놓는지. 쪽빛 광선이 여윈 등짝에 밤눈처럼 고요히 내려올 때면 나무들은 놀라 그 아래로 오라했다. 그러나 고독을 녹여 눈부신 은빛으로 되돌린 평온의 시간이 오면 그때 아침이 열렸다. 비로써 그녀가 몇 걸음 내디딘다. “여백에는 사유의 그늘이 드리운다. 우주를 떠다니는 먼지 일 수도 혹은 별을 생성케 하는 원소일 수도 사색의 파편일 수도 있다. 불명확한 존재와 만나는 여체는 그래서 더욱 선명한 존재성을 드러낸다.”<신항섭, 미술평론가>

창(窓)은 성스럽다. 주저 없이 희고도 찬란한 햇살을 초대했다. 환한 방안, 여인의 앞가슴 맨살을 관통해 마음에까지 망설임 없이 사뿐히 꼿혔다. 사방이 고요한 그 때, 붉디붉은 루비(ruby) 덩어리들이 방안으로 굴러와 쩍쩍 갈라져 뜨거운 고백을 토해도 속눈썹 하나 까딱 않는 저 도도한 매혹(魅惑)!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교향곡 ‘전원’이 간결하게 흐를 때마다 가끔 그녀는 싱그러운 대기(大氣)로 길게 호흡했다. 그런 때 엄지발가락은 조금 꿈틀거리거나, 떨렸다.

 

 

 

 

구성-나팔꽃 사랑, 90.9×65.1㎝ 혼합재료, 2010.

어느새 마치 백송(白松)같이 희부옇게 이리저리 굽은 가지는 방안으로 불쑥 들어와 한 마리 새를 앉히고도 거뜬히 중심을 잡고 있었다. 오오 불새, 주작(朱雀)이시오? 반사되어 더욱 빛나는 은빛 깃털 순백의 성(城)같은, 야성적 여체 앞서 단아하게 꼬리를 빚고 운율에 함께하려 몸 비틀며 목젖을 길게 뺀 저….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kdc@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