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간의 화제는 연일 적군과 아군의 피아(彼我) 구분 없이 여야 쟁점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질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도,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꿋꿋하게 거부하게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도 아니다.

단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달구고 있는 무명가수 이애란의 민요조 노래 ‘백세인생’이다. 기자도 지난 주말 아침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단순한 노랫가락도 그렇지만, 가사가 기가 막힐 정도도 해학적인 가사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노랫말 가운데 ‘~라고 전해라’ 부분은 거의 핵폭탄 급 패러디를 폭발시키는 위력을 발휘하며, 이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애란이란 이름 없는 가수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각종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초대손님 출연은 물론 최근에 카카오톡 이모티콘계로 진출할 정도이니 가히 ‘백세인생’이 대세다.

이야기 첫머리부터 이애란의 ‘백세인생’을 들먹이는 이유는 재미있는 노랫말 내용이 다름 아닌 앞에서 언급한 대통령과 정치권이 경제활성화 관련 서비스산업 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5개 법안의 처리를 놓고 다투는 형국과 묘하게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백세인생’ 첫 소절은 ‘육십 세에 저 제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로 시작된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햇수로 치면 재임 3년 차로 굳이 인생 백 세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제 50~60대에 해당한다. 즉, 이애란의 노랫말처럼 ‘아직은 젊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집권 3년차 하반기부터 조급증을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시점은 정확히 기억하기 힘드나, 아마 지난 8월 이후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8월 초 경기도 파주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목함지뢰 폭발로 우리 국군 수색대원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야기된 남북한 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고조, 초긴장의 직전에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통한 위기 수습 등 일련의 숨 막혔던 과정을 거치면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 고수 태도가 국민들 뇌리에 또렷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이후 대통령의 국정 발언 수위와 강도는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공격적, 직설적으로 변했다.

노동개혁 입법을 반대하는 노동계 과격 시위를 파리 연쇄테러와 빗대 표현하거나, 행정부 수반임에도 입법부를 향해 훈계 질타하고, 총선에서 국회 심판론을 들먹이며 ‘권력 의지와 반대되는’ 진영이나 개인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는 국내외 경제여건의 악화로 ‘한국경제 위기론’이 제기되고 상황을 빨리 대처하고 수습하려는 의지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아울러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새누리당의 기강 다잡기, 경제위기 상황의 야당 책임론을 겨냥한 고도의 정치전략도 깔려 있다고 본다.

유감스럽게도 대통령이 조속히 처리되길 강력하게 원하는 쟁점법안이나 노동개혁 법안은 권력 의지로만 밀어붙인다고 해결된 사안들이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야 하루빨리 통과시켜 제도 시행에 차질이 없기를 바랄 것이다. 대통령의 말대로 경제활성화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되니까.

문제는 청와대나 정부가 ‘경제 활성화’ 프로파간다를 마치 국정운영의 만병통치 부적이나 프리패스(자유이용권)처럼 여기고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개혁 5법의 경우도, 노동자의 헌법적 기본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조항들 -가령, 기업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단체행동을 불법으로 간주- 로 반대하고 있는 노동계와 야당을 무시하고 법안처리를 강행하려는 이유로 경제 활성화 내지 선진화를 내걸고 있다.

취임부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훈수를 둬 구설수에 올랐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얼마 전 또다시 한국은행에 ‘디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언급하며 사실상 추가인하 압박을 가한 것도 비근한 사례다.

쟁점법안들을 직권상정하느니 차라리 성(姓)을 갈겠다며 버티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청와대와 여당이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들먹이며 공격하는 모양새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대통령이나 여권의 ‘조갈증’의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자가 길지 않은 정치부 기자 생활에서 정치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정치는 말이야, 물 흐르는 것처럼 순리대로 해야 하는 거야.”

이애란의 ‘백세인생’ 노래 구절 하나로 대통령과 여당의 조갈증에 대한 나름의 처방을 전해주고 싶다.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를 찾고 있다 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