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신세계에 돈 묻어라”

“PER(주가수익배수)이나 PBR(주가순자산배수)만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는 역부족입니다. 워런 버핏이 애용한 DCF가 대안입니다.”

김진환 회계사. 휘문고와 한국외대를 나와 한영회계법인과 컨설팅 회사인 언스트앤영(Ernst& Young Advisory)에서 인수합병 실사(M&A Due Diligence)업무 및 부동산 재무자문 업무를 담당했다. 워런 버핏의 DCF 기법에 정통한 ‘버핏 전도사’이기도 하다.

가치주는 ‘잠룡’이나 ‘항룡’에 비유할 수 있다. 전란을 피해 융중에서 은거하며 밭을 갈던 제갈량은 천하경륜의 지혜를 보유한 잠룡이었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격파하고 중국의 패권을 사실상 쟁취한 조조는 욱일승천의 ‘항룡’이었다. 잠룡이나 항룡은 모두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 전도사인 김진환 회계사는 가치주 투자도 비슷한 이치라고 강조한다. 잠룡이 모두 ‘항룡(亢龍)’의 위치에 오르는 것은 아니며, 항룡이 영원히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무기’에 비해 탁월한 역량을 자랑하는 이들이 재물을 몰고 올 확률은 더 크다.

“환율이나 유가의 흐름, 혹은 금리의 추세를 미리 예측하기는 극히 어렵습니다. 브랜딩, 매출, 현금흐름을 비롯한 개별 기업의 경쟁력 지표를 분석하고 가치주를 골라 투자해야 하는 배경입니다.” ‘천시(天時)’를 분석하는 일은 능력 밖의 일이며, 될성부른 기업을 조기 발굴하는 것이 ‘투자의 첫걸음’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신(戰神)으로 불리던 중국사의 영웅 한신은 유방을 도와 훗날 제후의 반열에 오르지만 결국 토사구팽의 장본인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천하의 재사이던 순욱도 조조의 분노를 사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조조와 사돈지간이던 순욱이 자결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회계법인과 외국계 컨설팅사 인수합병 전담팀에서 근무하던 김진환 회계사는 ‘가치투자 전도사’이다.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이 주특기인 그는 ‘시장을 예측하는 일(market-timing)’은 불가능하며 저평가된 가치주를 발굴해 장기보유하는 방식이 금융위기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유비에 ‘올인’한 제갈공명은 훗날 2대에 걸쳐 재상을 지냈다. 몰락한 황실의 후손으로 짚신이나 삼으며 입에 풀칠을 하던 유비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꿰뚫어본 결과이다.

대표적인 가치 투자인 셈이다. 배포가 크고 얼굴이 두꺼웠으며, 황실 후손이라는 후광까지 업고 있던 유비는 대박을 터뜨릴 가치주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었다.

수대에 걸쳐 재상을 배출한 명문가의 후손 원소, 강동을 제패한 손견의 아들 손권도 잠재력이 풍부했다.

조조는 특히 ‘코카콜라’에 견줄 수 있는 당대의 가치주였다.
당대 지식인들이 소수의 영웅들에게 모인 것은 면밀한 인물 분석의 결과였다. 가문이나 군사력, 할거지역의 규모, 뛰어난 참모의 유무 등이 그 기준이었다. 가치투자자들이 PER(주당 순이익 비율), 매출, 현금흐름, 부채, 브랜드 파워 등으로 기업가치를 판단하는 작업과 유사하다.

문제는 분석의 정교함이다. 조나라에 인질로 붙잡혀온 진나라의 별 볼일 없던 왕족에 투자한 거상 ‘여불위’나, 유력인사들의 문간방을 전전하던 유비를 도와 훗날 재상이 된 제갈공명은 사람 보는 눈이 탁월했다. 반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모사 ‘심배’는 속 좁은 원소에 줄을 섰다 패퇴하고 목숨도 잃고 만다.

PER, PBR는 잊어라

“지난해 주요 기업들의 주가를 분석해 보면 고평가돼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어요. 가치투자 펀드들은 빨리 청산을 해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대다수는 그 신호를 읽지 못했다. 김 회계사는 ‘“PER(주가수익배수)’나 ‘PBR(주가순자산배수)’만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그 평가방식이 단순해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만, 정작 워런 버핏은 사용하지 않는 기법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가치투자 전도사인 김진환 회계사가 ‘DCF(현금흐름 할인기법, Discounted Cash Flow)’를 이들 평가 방식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회계사들도 인수합병 대상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이 기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정작 투자 부문에서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기업의 매출 추정치를 시나리오별로 분류하고 주가를 평가하는 ‘민감도 분석’이 DCF기법의 핵심이다.

“마이클 모부신과 알프레도 레퍼포트가 저술한 《기대투자》를 원서로 읽다 그 잠재력을 충분히 깨달았습니다. 회계법인 인수합병 팀에서 이 방식을 적용해 기업가치를 산정하면서 그 정확성도 충분히 입증해 보았습니다.” 김 회계사는 한 자동차 부품회사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이 회사는 당시 이익은 많이 발생했지만, 그 대부분을 설비에 재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수합병에 나선 고객사는 이 회사를 인수한 뒤 구조조정을 거쳐 기업가치를 높일 방침이었지만, 그의 답변은 ‘인수불가’였다. DCF 기법으로 적용해 분석해 본 결과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였다.

“예상보다 높은 매각가를 감당할 만한 유인이 없었습니다. 공장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그는 당시를 떠올렸다. DCF 기법을 적용한 가치투자는 지극히 보수적이다. 금감원 사이트에서 항상 참조할 수 있는 공시나 사업보고서가 이러한 분석의 기본 자료이다.

거시 지표들은 판단 대상에서 제외한다. 유가나 환율 등의 급등락에 좌우되는 이른바 ‘테마주’에 거리를 두는 것도 ‘불확실성’ 때문이다. 짐 로저스를 비롯한 상품(commodity)투자의 귀재들은 니켈이나 금, 구리 등을 투자 유망종목으로 꼽아왔다.

하지만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니켈 광산산업이 중단위기에 내몰리면서 국내 증권사, 보험사들이 손실위험에 직면했다는 보도는 톱다운(Top-Down)방식의 한계를 가늠하게 한다.

“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의 경쟁력 이론(five forces theory)도 산업 내 분석 대상 기업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분석틀입니다.” 그가 애용하는 또다른 분석 틀은 포터의 다이아몬드 이론이다.

NHN은 수익성 추정불가

NHN의 주가를 평가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회사는 매년 20~30% 정도 성장해야 현 주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김진환 회계사가 DCF 기법으로 분석한 밸류에이션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이 정도 성장을 감당할 잠재력이 있는 지는 미지수이다.

소재 분야 기업들을 평가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비슷한 논리다. 이 분야 기업들의 적정 주가를 산정할 노하우가 없다고 그는 솔직히 고백한다. 주가가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국내 기업은 어디일까. 그는 지난 8년간 회계사로 활동하며 추린 풀무원, 신세계 등 20여개 기업들을 공개했다.

이들 기업에 돈을 묻어두고 기다리라는 것이 그의 권유이다. 김 회계사는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펀드를 운용하는 일본의 ‘사와카미 투자신탁’과 같은 자산운용사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