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세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이제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작년 8월에 칼럼 ‘행복은 과학이다’를 시작했으니, 1년 반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다. 행복에 대해 평소 공부하고 발표한 내용과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했다. 행복을 바라보는 많은 시각들, 예를 들어 철학, 종교, 사회학 등에서 벗어나, 가능하면 보다 과학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필자에게는 심리학이라는 과학의 틀에서 행복이 더욱 발전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 과학은 검증 가능하고 재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실직적인 행복과, 특정한 사람의 행복이 아닌 나와 너 모두의 행복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 몇 가지 행복에 대한 조언으로 이 칼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

행복이란 말이 넘쳐난다. 넘쳐난다고 나쁠 것은 없겠지만, 이왕이면 좀 더 깊은 맛의 행복이어야 삶에 긍정적이다. 그런데 요즘은 피상적인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 만연해서 걱정이다. 명품에 대한 소유욕, 목숨을 건 성형까지 감행하게 하는 외모에 대한 강박, 그리고 건강과 절제는 전혀 고려치 않는 먹방까지. 어느 정도의 소비는 미덕이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TPO(Time, Place and Occasion)에 어울리게 꾸미는 것은 에티켓이고, 당연히 맛없는 음식보다는 맛있는 음식이 좋다. 적당하면 이런 행복도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너무 지나치니 문제라는 것이다.

즐거움만으로는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 의미가 동반되어야 진정한 행복이다. 더구나 즐거움만 탐닉하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도 조절하기 힘든 쾌락 중독이 되기 쉽다. 중독은 뇌가 병든 상태이므로, 의지로 다스리기가 힘들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중독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적당히 즐기는 것이다. 더불어 재미와 함께 의미를 추구하여, 서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행복은 긍정적이고 지속가능하다.

 

행복방정식, H=S+C+V

금수저니 흙수저니, 요즘 운명론적 ‘수저론’이 회자되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당연히 쉽게 성공하고(아니, 성공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지 못한 수저들은 보잘 것 없는 삶을 살아야 할 운명이란다. 잘 살아보고 싶은 욕구마저 박탈당하는 느낌이다.

행복은 어떠할까? 안타깝게도 행복도 일부분 타고난다. 경제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금수저 아이는 태생부터 행복해질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환경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우리는 그 영향을 완전히 무시하기란 어렵다. 뿐만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쉽게 불행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은 불행으로도 오래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거꾸로 작은 행복으로도 오래도록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마 가지 못해 불행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행복과 불행이 원상 복귀되는 시간, 즉 행복의 세트포인트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도 수저에 따라 달라질까? 부정할 수 없지만, 다행인 것은 수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복공식 H=S+C+V에서 정리를 해보자. 행복의 수준(H)은 타고난 환경(C)이 10% 전후이다. 또 사람마다 다른 세트포인트(S) 역시 10% 전후의 영향을 미친다. 두 가지 변수를 다 합쳐도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최대 20~30%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노력(V) 여하에 따라, 무려 70~80%까지는 행복을 얻어낼 수 있다. 행복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Stay weird, Stay different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우리가 남이가!’에 있다. 외세침략이 많았고,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군사정권 치하에 있어서인지, 남과 다르면 불안하다. 외세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남과 다르지 않는 결속력은 큰 방어 무기가 되었다. 군인에게는 일치단결이 가장 큰 전략자원 중의 하나다. 튀면 패배하고 죽는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다. 강산이 변해도 엄청나게 변했을 터인데, 우리 유전자에 박혀있는 집단 무의식은 여전히 ‘다르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지 못하게 한다. ‘다르지 않다’는 신념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온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슈에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창조적이고 다변화된 문화, 사회, 경제, 학문의 환경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이제는 달라야 살아남는다.

남과 다른 것에 대한 불안은 행복에 어떻게 작용할까? 남과 다르지 않으려면 눈치를 봐야 한다. 비교하고 개성을 죽여야 한다. 튀면 안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비교는 불행을 자초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의 단점, 결함, 부정을 비교하게 마련이다. 이 비교라는 불행의 불꽃에 경쟁이라는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남산에서 가장 높은 소나무는 몇 그루일까? 오로지 한 그루이다. 모두가 가장 높아지려고 비교하고 경쟁한다면, 그리고 승리를 해야 행복하다고 믿는다면, 나머지 나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미테이션 게임>이란 영화로 각색상을 수상한 그래함 무어(Graham Moore)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수상소감으로 감동을 주었다. ‘남과 다른 나만의 삶을 살아라!(Stay weird, Stay different!)’ 행복은 모든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지금부터 행복하자!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이 밖에도 적지 않다. 행복은 혼자 오는 것이 아니니, 주변과 이웃을 배려해야 한다. 혼자 살아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인간관계의 안정과 즐거움이야 말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친절을 베풀고 감사를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해지기 쉬운 방법인데, 이 역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

사랑 또한 행복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특히 결혼은 대부분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라고 했다. 섹스는 너무도 중요해서 행복 연구에서는 오히려 배제된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날 때 가장 행복하고, 사춘기가 되면 불행하지만, 자녀들이 집을 떠날 때쯤 되면 행복이 돌아온다. 또 너무 커다란 행복보다는 작은 행복이라도 자주 오는 것이 좋다. 행복은 강도순이 아니고 빈도순이니까 말이다.

훗날 큰 행복을 맛보려고 현재의 작은 행복들을 무시하다가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을 예측하는 실험에서 밝혀졌듯이, 현재 행복한 사람만이 훗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의 시제는 늘 진행형이어야 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행복을 위한 조언은 ‘실천’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행복을 위한 아이디어와 전략이 있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하나라도 좋다. 의미를 중시하든지,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든지, 남과 다른 자신만의 삶에 정진하든지, 어떤 행복의 조건을 선택하든지, 바로 시작해야 한다.

이 순간이 우리 모두의 행복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모든 독자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