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 오데마 피게

시계 브랜드마다 예닐곱에서 많게는 수십 개에 달하는 컬렉션을 두고 있다. 하지만 긴 세월 사람들 뇌리에 남아있는 스테디셀러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브랜드보다 더 유명한 시계 컬렉션’을 살피는 것은 좋은 시계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첩경이다. 또한 갖고만 있어도 돈과 명예가 따르는 확실한 시테크이기도 하다. 브랜드보다 더 유명한 컬렉션의 세 번째 이야기,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Audemars Piguet Royal Oak).

 

▲ 1981년 모델을 리메이크한 뉴 로얄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사진 제공/ 오데마 피게

 

오데마 피게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시계 브랜드다. 140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사람들 뇌리에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인과 테크니션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하게 남아있다. 로얄 오크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흔히 로얄 오크는 오데마 피게이고, 오데마 피게는 로얄 오크로 통한다. 예나 지금이나 로얄 오크가 오데마 피게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 시작도 예사롭지 않았다. 로얄 오크가 처음 나온 1972년의 분위기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에서 개발된 쿼츠 시계 파동으로 스위스를 중심으로 한 세계 시계 산업이 크게 출렁거렸고, 메커니컬 워치에 대한 수요는 급감했다. 오일 쇼크로 불확실한 경제 상황까지 드리운 암울한 시절, 새로운 시계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이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나타난 것이 세계 최초의 럭셔리 스포츠 워치인 로얄 오크였다. 당시 스위스의 하이엔드 워치 메이커들은 스포츠 워치 시장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로얄 오크는 스포츠나 요트를 즐기던 상류사회 귀족이나 부호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수 있었다. 있던 계획도 미루거나 없던 일로 하던 때 오데마 피게는 역으로 제랄드 젠타(파텍 필립 노틸러스, 오메가 컨스텔레이션, 불가리 불가리-불가리, IWC 인제니어, 까르띠에 파샤 등 스위스 시계 브랜드의 대표 컬렉션들을 탄생시킨 전설적인 시계 디자이너)와 함께 리스크가 큰 실험을 감행했다. 이전까지 로-엔드(low-end) 소재로만 여겼던 스테인리스 스틸을 고급 소재로 격상시켜 로얄 오크에 사용한 것이다. 지금이야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아이콘으로 시장의 70%를 점하며 독주하고 있지만, 발표 당시에는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골드와 보석 장식이 강세였던 시계 트렌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예상을 뒤엎는 그 과감한 시도가 지금의 오데마 피게를 있게 만들었다.

 

▲ 1972년에 등장한 최초의 로얄 오크와 스케치. 사진 제공/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란 근사한 이름은 찰스 2세가 왕자 시절, 망명길에 올랐을 때 올리버 크롬웰의 총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숨긴 오크 나무에서 유래했다.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나무 덕분에 왕자의 목숨을 구한 일화 때문에 로얄 오크라는 이름에는 ‘행운’의 의미도 담겨 있다. 그 의미는 영국 해군, 즉 로얄 네이비(Royal Navy)로까지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로얄 오크 군함의 포문과 다이빙 수트 헬멧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한 것이 바로 로얄 오크의 상징인 옥타곤 베젤이다. 8각형의 스테인리스 스틸 베젤에 6각형의 화이트 골드 스크류가 케이스 앞쪽에 장착되었고, 뒤쪽까지 일체형으로 설계되었다. 곡선의 케이스에 정교하고 일정하게 장착된 나사들의 배열은 오메마 피게라는 브랜드의 세심한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특허권까지 보유하고 있는 오데마 피게만의 이 설계 방식은 무엇보다도 어떤 충격에서도 절대 분해되지 않는 견고함을 시계 주인에게 선사한다.

 

▲ 오데마 피게가 자랑하는 피니싱 과정. 사진 제공/ 오데마 피게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가 반드시 갖춰야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뛰어난 피니싱 기술이다. 한 세기 반 동안 쌓은 브랜드의 피니싱 노하우가 집결된 컬렉션이 또한 로얄 오크이다. 케이스 하나를 위해서 장장 12시간 동안 80회의 피니싱 작업이 필요하다. 케이스 외관 전체에는 162회의 핸드 폴리싱 작업이 있어야 한다. 베젤은 그 장식에 70가지의 피니싱 과정이 있은 후에 케이스 백과 함께 조립될 수 있다. 또한 로얄 오크 브레이슬릿을 장착하기에 앞서 138가지에 이르는 여러 각도를 위해 7시간 동안 핸드 폴리싱 작업이 들어간다. 브레이슬릿을 만들고 각 마디들을 조립한 후 피니싱 공정까지 10시간이 걸린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로얄 오크 한 모델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다. 로얄 오크는 피니싱만으로 스틸 소재에서 ‘무지갯빛’을 확인할 수도 있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빛이 각 면들의 디테일을 살려 보석처럼 화려한 광채를 띄는 것이다.

 

▲ 신개념 소재로 주목 받은 로얄 오크 카본 콘셉트 투르비용. 사진 제공/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는 1972년 데뷔 이후 점점 더 럭셔리해지고, 다양해졌다. 1981년에는 로얄 오크 최초로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갖춘 골드 소재의 시계가 등장했다. 1993년에는 기존의 로얄 오크 컬렉션보다 더욱 스포티한 느낌의 크로노그래프 모델인 ‘로얄 오크 오프쇼어(Royal Oak Offshore)’를 선보이기도 했다. 2004년 ‘트래디션 엑설런스’ 콘셉트로 출시된 8개의 모델 중 4번째 모델인 ‘로얄 오크 트레디션 드 엑설런스 no.4(Royal Oak Tradition d’Excellence no.4)’는 컬렉터들의 표적이 되었다. 2010년에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인 ‘로얄 오크 이퀘이션 오브 타임(Royal Oak Equation of Time)’을, 2012년에는 두께 4.46mm의 초박형 핸드 와인딩 칼리버 2924를 넣은 ‘로얄 오크 엑스트라-씬 투르비용(Royal Oak Extra-Thin Tourbillon)’을 선보여 화제의 중심에 섰다.

 

▲ 출시 40주년을 기념하는 로얄 오크 엑스트라-씬 투르비용. 사진 제공/ 오데마 피게
▲ 미닛 리피터 기능을 극대화한 로얄 오크 콘셉트 RD#1. 사진 제공/ 오데마 피게

 

오데마 피게는 도전하는 DNA가 있고, 로얄 오크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들은 지금도 ‘세계 최초의 럭셔리 스포츠 워치’라는 타이틀 방어 대신 신소재를 개발하고 다양한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담은 모델들을 끊임없이 발표해오고 있다. 항공기에 쓰는 카본을 케이스로 채택하고 독자적인 기술력을 더해 만든 ‘포지드 카본(Forged Carbon)’으로 시계 제조사에 한 획을 그었고, 스틸보다 9배 더 강한 화이트 세라믹을 개발해 로얄 오크에 접목하기도 했다. 지난 ‘SIHH(스위스 고급시계 박람회) 2015’에서는 로잔공과대학과 함께 8년간 연구한 끝에 차임의 음향 수준을 끌어올리고 미니트 리피터의 기능을 극대화한 ‘로얄 오크 콘셉트 RD#1’을 발표하는 등 무한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출시된 로얄 오크 투톤이 3천2백만 원대, 로얄 오크 출시 40주년 기념 모델인 로얄 오크 엑스트라-씬 투르비용은 4억2천만 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오데마 피게 특유의 브랜드 DNA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로얄 오크 컬렉션의 고부가가치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