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명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인간의 힘으로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최근 관련 학자들의 믿음이다. 오래 산다는 것, 즉 장수란 노화를 일으키는 영향인자들을 줄여서 수명을 늘리는 일이다. 보통 장수란 노년기의 건강을 잘 보살펴서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장수란 인체의 세포나 조직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청년기나 장년기를 더 오랫동안 유지시키는 일이라고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복용만 하면 수명이 늘어난다는 약들이 등장하고 있다.

칠레령의 이스터 섬은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세 개의 화산이 분출해서 만든 삼각형 모양의 화산섬이다. 원주민들은 ‘커다란 땅’이란 의미로 라파누이(Rapa Nui)라고 부른다. 제주도 돌하르방과 비슷한 모양의 모아이(Moai)라는 석상이 섬 해안선을 따라서 900여개가 흩어져 있는 유명한 관광지다. 1970년대 초에 캐나다의 한 의료탐험대가 이 섬에서 토양을 채취해 갔다. 몬트리올의 한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의 생화학자 수렌 세갈(Suren Sehgal)은, 이 토양 샘플에서 항곰팡이성이 매우 높은 스트렙토마이시스 하이그로스코피쿠스 (Streptomyces Hygroscopicus)라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그는 이 박테리아로 연고를 만들면 무좀이나 다른 곰팡이 질병 치료에 좋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이웃집 아줌마의 딱딱하게 굳은 무좀에 이 박테리아를 정제한 연고를 발라 보니 금방 씻은 듯이 나았다. 그는 이 약을 라파누이 섬 이름을 따서 라파마이신(Rapamycin)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이 마이신의 효능을 충분히 밝히기도 전에 그가 속했던 제약회사가 망하고 연구실이 폐쇄되었다. 그가 속해 있던 캐나다 연구실을 합병한 글로벌 제약사인 바이에스(Wyeth)로 옮긴 세갈은 라파마이신이 항곰팡이성뿐만 아니라 면역 억제능력을 갖고 있음을 추가로 발견하여, FDA로부터 장기이식 환자들의 면역 저항을 없애는 약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 후 바이에스는 라파마이신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페니실린과 마찬가지로 라파마이신 자체는 생물학적 물질인 까닭에 특허를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라파마이신의 파생 물질들은 신장, 폐, 유방암 등의 치료제로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암, 심장병, 알츠하이머병 등 노화 관련 질병들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정상적인 사람의 노화 현상도 늦춰준다고 알려지면서 제약업계의 깊은 관심을 끌었다.

 

세포가 굶어야 오래 산다

스위스의 제약회사인 노바티스(Novartis)는 라파마이신을 진정한 항노화 약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제약 역사에서 노화 방지나 수명 연장을 한다는 물질들은 많이 등장했지만 실제로 임상 단계에서 효과가 인정된 사례는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적포도 껍질에 함유된 레스베라톨(Resveratol)이다. 프랑스인이 포화지방이 많이 함유된 기름진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데도 불구하고 건강한 이유는 적포도주에 함유된 레스베라톨 성분 덕분이라는 주장이 한때 매스컴을 통해 널리 유포되었다. 이로 인해 적포도주가 일반인들의 장수식품으로 인식되었지만, 실제로 레스베라톨로 한 임상실험에서 그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모두 실패했다. 이 실험에 막대한 투자를 했던 그락소스미스크라인(GlaxoSmithKline)은 결국 관련 부서를 폐지하고 연구진들을 해고하고 말았다. 포도주 속의 레스베라톨 성분이 건강에 끼치는 이로움보다, 알코올이 건강에 끼치는 해로움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라파마이신의 효능은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방법으로 인생 후반기에 걸리기 쉬운 만성 질병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식이다. 물론 인간의 노화를 늦추거나 멈추거나 되돌리는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분자생물학적으로 라파마이신 분자는 세포의 성장과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경로를 방해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 경로를 mTOR(라파마이신의 기구학적 표적, mechanistic target of rapamycin)라 부르는데 공장의 전기회로 차단기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것이 활성화되면 세포가 성장하고 분열하면서 영양분을 소비하고 단백질을 생성한다. 그러나 mTOR가 꺼지면 세포활동이 매우 보수적인 모드로 바뀐다. 세포 내부의 잔여물들을 청소하고 오래된 단백질들은 자식(自食)작용(Autophagy)을 통해 재활용한다. 동물이 칼로리 섭취를 줄이면 수명이 연장되는 이유는 mTOR 경로가 막히고 자식작용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라파마이신을 먹으면 실제로는 굶지 않아도 마치 굶는 것처럼 세포가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라파마이신이 하는 실질적인 작용은 영양분 섭취를 줄이는 일이다. 즉, 건강한 사람들이 라파마이신을 복용하면 정상적인 세포작용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라파마이신 복용효과는 부작용 없이 단식을 하는 효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노화 방지는 젊어서부터 해야 하는가?

노화 과정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버크 노화 연구소(Buck Institute for Research on Aging) 브라이언 케네디 소장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수십억 년 동안 진화 과정을 통해 식량이 풍부하고 일이 잘 풀리면 아이를 출산하고 곤궁하고 어려워지면 스트레스 저항 모드로 바뀌었다고 한다. 식량이 없으면 다음 사냥의 소득이 있을 때까지 굶어야 했다. 그런 관점에서 스트레스 저항능력은 노화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라파마이신을 복용하는 경우 수명이 9~14%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으로 치면 60세에 복용하면 95세 생일을 맞이할 수 있는 효과다. 문제는 라파마이신의 작용 중에서 인체의 면역 저항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는 점이다. 면역기능이 약화된 고령인의 경우, 이 약을 복용하면 치명적인 질환에 걸릴 위험이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고령인이 복용해서는 안 되는 약제라고 할 수 있다. 장기이식 환자의 면역억제제로 사용하는 에버로리머스(Everolimus), 조르트레스(Zortress) 등 라파마이신 계열의 약품은 면역 저항을 억제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구강 염증이나 상처가 잘 치유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항노화 성분으로 최근 주목받는 것으로 메트포민(Metformin)이 있다. 메트포민은 FDA의 승인하에 1990년대부터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다. 메트포민은 간에서 포도당 생성을 억제하고 인슐린 민감도를 증가시킨다. 그런데 라파마이신과 마찬가지로 메트포민도 설치류 동물들의 건강 수명을 늘리고 전체 수명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효과가 있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당뇨병에 걸리면 수명이 5년 정도 줄어든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당뇨치료제로 메트포민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다른 치료제를 사용하거나 당뇨병에 걸리지 않은 환자보다도 사망률이 15% 정도나 낮아진다는 임상 보고가 있다. 뉴욕에 있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과대학교 노화 연구소장인 니르 바질라이(Nir Bazilai)는 메트포민은 전립선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암에 걸릴 확률을 30% 정도 낮춘다고 주장한다. 메트포민은 심장병을 줄이고 인지능력 감퇴현상도 줄인다고 믿는다. 한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메트포민을 복용한 사람들이 더 비만이고 허약했지만, 메트포민을 복용한 이후로 당뇨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 메트포민은 세포 내의 산소 분자를 증가시키고 세포의 항산화방어시스템을 증강시켜 더 건강하고 수명이 길어진다고 한다.

 

노화도 치료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청(FDA)가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며 노화 방지와 관련된 약품은 인체에 대한 임상실험조차도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FDA가 메트포민에 대해선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는지 임상실험을 해도 좋다고 승인했다. 바질리아 교수가 주도하는 메트포민의 노화 방지 연구, 일명 TAME(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이 바로 노화 방지의 미래를 여는 연구프로젝트다.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노화도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증명하는 셈이고, FDA가 공식적으로 노화도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노화 연구에 막대한 연구자금을 모을 수 있다.

일부 해양생물의 경우 전혀 노화되지 않는 현상을 보이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영생의 가능성을 피한다. 자칫하면 경솔하고 무책임한 인식을 주도한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젊음의 샘물을 찾는다는 개념이다.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건강한 수명을 늘리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TAME 임상실험은 대표적인 노화 질병인 암, 심장병, 치매 중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병을 이미 앓고 있는 70, 80대 환자 3000명을 선발해서 내년부터 5~7년 동안 임상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참가자 선발에서 제2형 당뇨병 환자는 제외한다. 참가자들은 메트포민을 복용하게 되고 당뇨병이나 죽음을 포함해 이전에 갖지 않은 질병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지 관찰하게 된다. FDA도 매우 전향적인 자세로 이번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노화는 대부분의 만성 질병의 위험 인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0대에 당뇨병, 암, 심장병,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진 않는다.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수명이 아닌 건강 수명이다. 사실 장수하는 원리가 전 생애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발현되는지 아니면 노년기에 들어서서 발현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분석이 없다. 인체 기능을 관장하는 유전자들이 노화에 어떻게 관여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인류는 지금 생명과학의 원리를 규명하여 노화를 방지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