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매뉴얼에 문제가 있었어요. 당시 공장이 완전 먹통이 돼버린 이유를 알아보니 매뉴얼이 문제더군요. 당시 시설 관제와 관리 요원들은 예비 장비를 작동하려면 ‘주 장비를 꺼야 한다’는 사용법을 몰랐답니다. 매뉴얼 자체에 그런 내용이 없었던 거죠. 이런 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매뉴얼이 문제여서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확률은 생각보다 무척 적습니다. 아마 그런 지적은 사후 책임이나 평가를 벗어나기 위한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매뉴얼에는 위기 발생 시 직원들이 실행해야 할 모든 활동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100%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매뉴얼은 위기 발생 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직원들에게 대응 프로세스들을 보여주는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군인들이 총을 쏘며 전투 중인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사격을 하는 데 있어서도 군에는 간단한 매뉴얼이 있지요. 영점을 맞추는 방식이나 과녁 조준, 탄창 삽입, 방아쇠 격발 방식 등이 일종의 프로세스로 죽 나열되어 있습니다. 군인들은 이 매뉴얼을 글자로 읽지 않습니다. 읽더라도 이후 작동 실연을 보고 몸으로 무한 반복 경험하면서 총을 실제 다루고 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병사들이 총탄이 빗발치는 치열한 전투 중에 상사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상상해 보죠. “소대장님, 매뉴얼이 잘못되었습니다. 매뉴얼에는 총을 쏘는 방식만 나와 있고, 탄알들이 모두 소진되면 새 탄창을 삽입해야 한다고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대장의 마음은 어떨까요?

더 나가서 “소대장님, 두 번째 탄창을 끼울 때 첫 탄창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아 우리 동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새 탄창을 삽입하기 위해서는 꼭 첫 번째 탄창을 제거해야 하는 건가요?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어떻습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질문 속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관리는 사람이 합니다. 매뉴얼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위기를 관리한다면, 그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훈련이 제공되어야 맞습니다. 매뉴얼에 기반을 둔 훈련이죠. 그 후 반복 시뮬레이션들을 통해 공장의 시설을 먹통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숙련된 직원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 숙련된 직원들이 매뉴얼에 의해 뚝딱 만들어진다고 믿는 경영진들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매뉴얼에 주요한 설비 작동 절차가 생략되어 있어 문제가 되었다면, 이는 해당 매뉴얼을 실제 시뮬레이션을 통해 한 번도 제대로 검증해 보지 않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시뮬레이션은 직원들에게 반복적 ‘익힘의 과정’도 제공하지만, 매뉴얼의 현실성과 구체성을 검증해보는 ‘진단의 과정’도 함께 제공합니다. 그런 중요한 작동 절차 명기가 빠져 있었다면, 절대로 단순히 그 매뉴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만 안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 ‘우리 회사에는 위기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위험한 기대입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마지막이나 완성이 아닙니다. 그 매뉴얼은 위기관리 시작이자 밑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활성화 노력이 필요한데도, 많은 기업들은 이를 결승점으로 생각하니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후 대부분의 매뉴얼은 낡아 갑니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고, 존재했다는 사실도 잊혀 갑니다. 운 좋게도 일부 매뉴얼의 존재를 기억하는 임직원들도 그 매뉴얼이 실제 위기 시 작동될까 하는 질문에는 자신 없어 합니다. 일부에서는 위기가 발생하면 그 두꺼운 매뉴얼을 한 장 한 장 펼쳐 봅니다. 마치 군인이 전장에 매뉴얼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총이나 수류탄을 사용하는 셈이죠. 의사가 환자의 배를 갈라놓고 매뉴얼을 읽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매뉴얼에 이런 이런 명기가 빠져 있어서 전투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환자가 죽은 이유도 매뉴얼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매뉴얼이 문제의 핵심은 아닙니다. 최고경영진들은 그 부분을 정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