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대형 제과회사인 A 사에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법률 상담을 받을 일이 있다는 것이다. 방문하기 전에 관련 자료를 보내주면 먼저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한 후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이메일이 도착했다. 첨부된 자료에는 필자도 잘 알고 있는 A 사 유명 캐러멜 과자 제품의 낱개 사진 및 포장 사진, 처음 보는 B 사 캐러멜 과자 제품의 낱개 사진 및 포장 사진, 그리고 A 사 과자 제품의 제조 이력 및 매출 자료가 있었다. A 사에서 문제를 삼고자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대충 감이 왔다. 이윽고 흥분한 모습의 고객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필자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먼저 고객의 설명을 경청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A 사는 캐러멜 과자 제품을 오랜 기간 동안 판매해왔고 이를 통해 높은 매출을 올렸는데, 최근 B 사가 유사한 종류의 캐러멜 과자 제품을 출시했다는 것이다. 우선 두 제품은 캐러멜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맛이 유사했고, 게다가 낱개 과자의 모양 및 제품의 포장 디자인 역시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마트(Mart) 등에 양 제품이 나란히 진열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B 사 제품이 A 사 제품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두 제품을 비교해 보니 고객이 분개한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두 제품은 재료와 맛, 모양(둥근 상·하면을 지닌 구부러진 원기둥 형태) 등이 유사했고, 두 제품 모두 제품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포장지 좌측 하단에 그려져 있었으며, 포장지 중앙에는 과자 낱개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다만 제품 명칭이 다르고 제조사 이름이 상단에 표시되어 있기는 했지만, B 사 제품이 A 사 제품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만든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고객은 자료에 대한 설명을 끝낸 후 필자에게 거침없이 물었다. “이거 저희 것을 베낀 거 아닙니까? 저작권 침해 맞지요?”

저작권에 관한 상담을 하다 보면, 이처럼 ‘저작권 침해’와 일상적인 의미로서의 ‘모방’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모방’은 전체적인 느낌이 유사한 경우에 사용하는 일상적인 용어인 반면, ‘저작권 침해’에 있어서는 ‘저작권의 보호 범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저작권 침해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저작권의 보호 범위’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저작권법은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저작권법 제2조 제1호). 즉 저작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이 ‘표현’되어 있어야 하고 ‘창작성’이 존재해야 한다. 이는 저작물 성립 요건이기도 하지만 ‘저작권의 보호 범위’이기도 하다. 저작권법에 따라 저작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효력 범위는 ‘창작성’이 있는 ‘표현’에 한정되는 것이다.

먼저 ‘표현’에 대해서 살펴보자. 저작권법에서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은 겉으로 드러난 ‘표현’이지 그에 내재된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좌측은 SBS에서 방영된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인 <짝>이고 우측은 TvN의 개그 프로그램 <SNL(Saturday Night Live)>에서 방영된 콩트 <쨕>이다. 제목의 유사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SBS의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TvN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를 이용한 콩트를 만들어 방영했다. 이에 SBS는 CJ E&M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두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양자 모두 (ⅰ) 방송 도입부에 ‘짝’ 또는 ‘쨕’이라는 붓글씨 문양이 있는 간판이 등장한다는 점, (ⅱ) 남녀 출연자가 파란색 및 분홍색의 유니폼을 착용한다는 점, (ⅲ) 남녀를 ‘남자 O호’ 및 ‘여자 O호’로 호칭한다는 점, (ⅳ) 애정촌 입소 다음날 오전에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한다는 점, (ⅴ) ‘도시락 선택’을 통해 마음에 드는 이성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는 점, (ⅵ) 데이트 권리를 얻기 위해 동성끼리 게임을 한다는 점 등이 유사하다. 이 부분만을 비교한다면 TvN의 <쨕>이 SBS의 <짝>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혹자는 이를 두고 ‘모방’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영상물의 내용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라 할 수 없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서울고등법원 2014. 7 .3. 선고 2013나54972 판결). 즉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을 표현하는 방식, 출연자가 상대방을 ‘O호’로 부르는 방식, 족자에 강령의 내용을 적어서 걸어놓는다는 점, 출연자의 등장 방식, 자기소개의 방식, 도시락 선택 방식, 데이트 권리를 얻기 위한 게임 방식 등은 ‘아이디어’에 불과하여 ‘저작권의 보호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위와 같은 부분은 저작권 침해를 판단함에 있어서 대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외견상 비슷해 보이더라도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은 저작권법상 보호될 수 없으므로, 저작권 침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저작물 중 ‘아이디어’에 속하는 부분을 제거한 후 나머지를 대비해야 한다.

다음으로 ‘창작성’에 관해 살펴보자. 저작권법상 ‘창작성’은 특허 등과 같이 높은 수준의 창작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남의 것을 베끼지 않은 정도의 독창성만 있으면 저작물로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법이 요구하는 ‘창작성’의 수준이 낮다고 하더라도 창작성의 정도는 저작권 침해 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좌측은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가 강원도 삼척에 소재한 섬을 촬영한 <솔섬>이라는 작품이고, 우측은 대한항공이 2011년 TV와 인터넷 광고에서 사용한 사진으로서 아마추어 사진작가 김성필이 같은 섬을 촬영한 <아침을 기다리며>라는 작품이다. 마이클 케나 측은 김성필의 작품이 마이클 케나의 작품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한항공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진 작품을 비교해 보면, 언뜻 보더라도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서울고등법원 2014. 12. 4. 선고 2014나2011480 판결).

위 사건에서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먼저 사진저작물의 보호 범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 대법원은 “사진저작물은 피사체의 선정, 구도의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의 설정, 셔터의 속도, 셔터 찬스의 포착, 기타 촬영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인정되어야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된다”(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08다44542 판결 등)라고 판시한 바 있다. 사진은 미술과 달리 인물, 풍경, 물건 등의 대상을 그대로 촬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산출물인 사진의 모든 부분이 저작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촬영 과정에서 촬영자의 ‘창작성’이 발휘되는 부분에 한하여 저작권으로 보호된다는 것이다(만약 그렇지 않으면 증명사진에 찍힌 내 모습에 대해서도 촬영자가 저작권을 가진다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위 사건과 같이 풍경, 자연물 등을 대상으로 한 사진저작물에 대해서는 사진저작물의 창작성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피사체의 선정’ 및 ‘구도의 설정’ 등에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위 ‘솔섬’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자연물이므로 이를 대상으로 선택하고 촬영하는 행위 자체로 인한 창작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 또한 자연물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는 일반적으로 공개되고 알려져 있거나 반대로 주변 환경에 따라 매우 제한되어 있어 그 장소의 선택에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사건에서는 과거에도 위 사진들과 유사한 구도에서 ‘솔섬’을 촬영한 사진이 있어 위 사진에 나타난 ‘구도의 설정’에 특별한 창작성이 인정될 수 없었다.

또한 위 두 사진에서 ‘피사체의 선정’과 ‘구도의 설정’ 부분을 제외한 후 양자를 비교해 보자. 좌측의 사진은 흑백 사진으로서 장노출을 통해 피사체인 솔섬을 제외한 나머지 하늘과 수면 부분을 어둡게 처리해 마치 ‘수묵화’와 같은 사진을 만들었다. 반면 우측은 컬러 사진으로서 하늘과 수면에 구름을 강조하는 한편, 뒤편의 여명 등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즉 양 사진은 창작성이 인정될 수 없는 ‘피사체의 선정’과 창작성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구도의 설정’ 부분과 관련해서만 동일 또는 유사할 뿐, 그 밖의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상과 같이, 저작권 침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창작성’이 인정되는 ‘표현’을 기초로 유사성을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캐러멜 과자 제품의 저작권 침해 여부에 관해 다시 살펴보자. 먼저 ‘캐러멜을 재료로 사용한 과자’라는 점은 아이디어에 불과할 뿐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과자의 낱개 모양은 너무 단순하여 창작성이 인정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과자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과자의 포장지에 캐릭터를 사용하고, 중앙에 과자 낱개의 사진을 표시하는 방식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고, ‘표현’에 해당하는 캐릭터의 모양이나 과자 낱개의 사진은 양자가 상이하다. 이처럼 고객이 유사하다고 지적하는 부분은 대부분 저작권의 보호 범위에 속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답변도 ‘저작권 침해의 성립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안은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만일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소송을 제기했다면 적어도 소정의 착수금은 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객사는 저작권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선임비, 소송비용 등은 물론이고 소송 진행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그 인용 가능성을 냉정하게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저작권 침해 판단에 있어서는 ‘표현’과 ‘창작성’이라는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는 ‘저작권의 보호 범위’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