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한 인식과 전망은 결코 밝지 못했다. 한 때 무섭게 성장세를 보이던 비트코인은 종종 돈 세탁의 배후로 지목됐고 하루아침에 폭락해 버리기 일쑤였다. 낙폭도 17세기 네덜란드를 집어삼킨 튤립 투기 버블 붕괴 사태를 연상케 할 만큼 컸다.

2009년 10월 첫 환율 공시 당시 개당 0.0008 달러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3년 연초에 15 달러, 그 해 11월 초엔 500 달러를 기록했고 한달 뒤엔 2배가 넘는 1147 달러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해킹 위험, 중국 정부의 규제, 투기 자본 개입 가능성 등이 대두하면서 가격폭등을 떠받치던 자금 대부분이 빠져나갔다. 비트코인 가격은 2014년 2월 세계 최대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Mt.Gox)’ 거래소 해킹 이후 결정타를 맞았다. 버블이 붕괴됐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요즘 비트코인의 대세설이 조심스럽게 시장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앞으로 15년 안에 비트코인이 세계 6대 기축통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의 M&A 전문 투자자문업체 매지스터 어드바이저스는 30개 비트코인 업체를 연구한 결과 앞으로 2년간 세계 100대 금융기관의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의 핵심기술 '블록체인에 투자하는 비용이 10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 초 이틀 만에 32% 급락하며 200 달러 아래로 내려가 국내 채굴 비용에도 못미치게 폭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12월 현재 500 달러를 넘었다.

 

베일에 가린 비트코인 창시자... 천재 수학자 존 내쉬설도

비트코인은 탄생부터 미스터리였다고 전해진다. 비트코인 시스템을 처음 창시한 사람은 나카모토 사토시(Satoshi Nakamoto)라는 가명을 쓰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겸 경제학자였다. 2008년 10월 개발자들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한 사이트에 새로운 가상 화폐 시스템을 다룬 화이트 페이퍼(논문)이 올라왔다. 그는 P2P(개인간 거래)를 기반으로 전자 화폐를 보낼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화폐의 가장 큰 전제는 위조가 불가능하고 거래가 1회로 끝나야 한다는 것인데, 디지털의 특성 상 화폐가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할 때와 같이 무한대로 복사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일찍이 암호학자나 컴퓨터 공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것이었다. 그는 다시 사이트를 통해 “내가 개발해 그 프로토콜 공개하겠다”고 단언했고 그 것이 비트코인의 시작이었다.

다음 해인 2009년 1월 3일 사토시는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시작했다. 당시는 금융 위기 여파로 씨티그룹 주식이 1 달러대로 떨어져 미국 재무부가 긴급 자금을 투입하고 사실상 국유화 조치를 위한 베일아웃이 논의할 때였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기존의 금융시스템이 실패했다”며 ‘제네시스 블록’이라는 최초의 비트코인 지갑을 내놨고 자체적으로 채굴을 시작했다.

사토시 나카모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2013년 일본인 교수가 지목됐지만 지목 당사자는 물론 사토시 본인도 자신의 계정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그는 일본어나 한자 표기를 전혀 하지 않고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를 혼재해 썼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P2P 재단 사이트에 직접 등록해 놓은 정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9세로 일본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도 알려진 천재 수학자 존 내쉬가 사토시라는 설도 있다.

다만 그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케인즈학파와 돈을 찍어내 경기부양을 하는 중앙은행들을 비판한다. 어떤 사람이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화폐 시스템 비트코인을 만든 의도도 기득권의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비트코인은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다. 마치 금이나 석유처럼 채굴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 셈이다. 비트코인은 암호화된 수학문제를 풀어 채굴하는 시스템으로 거래는 P2P기반 분산 데이터베이스로 이뤄진다. 현재는 개인의 소규모 채굴보다 공장에서의 대규모 채굴이 주로 일어나며 중국에서 60%이 비트코인을 채굴한다. 초기 6개월 간은 사토시 본인이 직접 채굴했는데 이 때 채굴된 비트코인의 8%를 사토시가 가졌고 현재도 60만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블과 붕괴를 오가던 비트코인 가격이 내년 초 다시 한번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최근 제기됐다. 당초 약 10분마다 채굴한 사람한테 주어지는 비트코인은 50개였는데 현재는 매 10분마다 25개를 지급하고 내년 12.5개로 줄어든다. 지급 코인이 50개에서 25개로 줄었을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약 5배 올랐던 것을 비춰 업계는 내년 12.5개로 줄어들면 2~3배 가량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비트코인 가격에 다시 거품이 끼고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나오고 있다. 12월 초 현재 현재 2100만개 중 1450만개가 발행돼 총량의 3분의 2가 이미 발행됐고 채굴로 생성되는 하루 비트코인 신규 발행량 약 3600개(약 15억원)가 꾸준하게 시장에 공급되는데 15억원의 수요, 그러니까 신규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증권사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일하던 스티브 임(임상혁) 코인덱스 대표도 2011년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을 때 “폰지 사기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코인덱스는 국내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 전문 선물거래소다.

그는 2년 전 유럽 사이프러스가 금융위기로 은행에서 현금 인출을 못할 때 비트코인이 3배 가량 올랐고 지난 여름 그리스 금융위기 당시에도 비트코인의 가격이 올랐다면서 경제 안정성과 비트코인 가격은 반비례한다고 전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디지털 화폐라기보다 ‘디지털 골드’로 보라”고 조언한다.

비트코인 인사이드 컨퍼런스에서 홍기훈 홍익대 교수도 "비트코인이 다른 전통적인 자산 수익 사이클과는 별로 연관성이 없었지만 금이나 은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결제 수단으로서의 비트코인의 쓰임은 정체됐고 관련 신생업체들도 재미를 못봤다. 현재 비트코인 생태계는 전자지갑 생성 업체, 비트코인 거래소, 은행이나 ATM 등 금융 서비스, 채굴업체, 결제 처리 업체, 보험 등 인프라 업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월스트리트로 간 비트코인

주류 화폐로 쓰이기에는 변동성을 높다는 특징 때문에 비트코인을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금융 투자 상품으로 개발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임 대표는 2015년 비트코인에 있어 새로운 움직임이 보였는데, 그 것은 바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실리콘밸리에서 월스트리트로 옮겨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은행권은 비트코인을 적대시 해왔다.

현재는 씨티그룹과 UBS 등의 금융기관이 블록체인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투자자가 됐고 금융계 거물들도 자리를 옮겨가기 시작했다. 지난 2013년 비트코인 투자신탁을 런칭한 뉴욕의 비상장 증권거래 중개업체 ‘세컨드마켓’은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에 인수됐다. 페이스북과 아이디어 소송을 벌여 유명해진 쌍둥이 윙클보스 형제는 마크 저커버그로부터 받은 합의금을 비트코인에 투자해 업계 거물이 됐다. 비트코인 전체 발행량 가운데 1% 정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윙클보스 형제는 1100만 달러 투자를 통해 60% 정도의 수익률을 올렸으고 비트코인 관련 ETF 상품과 ‘윙크덱스’라는 비트코인 가격 지수도 개발했다.

마이클 모로 세컨드마켓 임원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대화에서 “헤지펀드업계나 트레이드업계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높은 수준이지만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적어 대형 기관투자가가 들어오기엔 작은 규모”라고 했다. 현재 추산된 시가총액은 한화로 6조원에 불과하다.

▲ 전체 비트코인 공급량. 출처=위키피디아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불리던 JP 모건의 파생상품 개발부서 핵심 임원인 블라이스 마스터스는 블록체인 전문 스타트업 디지털애셋홀딩스(Digital Asset Holdings)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는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을 통해 은행들은 결제, 송금, 트레이딩 등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오류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비트코인 거래의 장점은 수수료 절감이다. 기존의 은행 시스템에서는 최소 30-40 달러의 은행 수수료 때문에 해외에 소액을 송금하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을 통해서는 수수료나 환전 없이 어디라도 송금이 가능하다.

또한 은행계좌 보유율이 낮은 신흥국들을 감안하면 비트코인의 성장 잠재력은 더 커진다. 인도는 전체인구의 30%만이 은행계좌를 갖고 있다고 알려졌고 아프리카의 계좌 보유율은 그보다 더 낮은데, 스마트폰의 보급율은 전세계 인구보다 보급대수가 더 많을 만큼 높고 보급 속도 또한 빠르다. 이들 국가들에서 계좌가 필요하지 않은 비트코인 거래가 더욱 힘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은행도 정부도 필요없다 그래서?

이처럼 비트코인의 거래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과거보다 더 대규모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먼저 해킹과 같은 기술적 문제점에 대한 걱정이다. 전자지갑을 탈취하기 위한 악성코드인 ‘봇넷(Botnet)’이 등장했고 환전소 등에 대한 해킹 공격으로 최대 거래소였던 일본의 마운트곡스가 파산했다. 코인덱스의 임 대표는 비트코인 자체가 해킹이 된 것이 아니라 비트코인을 관리하는 관리소나 지갑이 해킹된 것이라며 “은행이 강도맞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발 방지를 위한 보안 기술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고 전했다.

비트코인을 둘러싼 또 다른 우려는 화폐발행권을 가진 각국 정부의 제재다. 정부가 거래정지(셧다운)을 시킬 수도 있다고 본 것인데 현재의 흐름으로 볼 때는 선진 시장의 정부는 이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유럽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했고 미국은 비트 라이선스를 발급해 통제 하에 뒀다. 이들은 비트코인을 합법적인 거래로 인정하는 대신 거래 차익에 대해 과세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2013년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할 당시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4개 관련당국이 회의를 갖고 비트코인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비트코인은 화폐도 금융상품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초기 한국 비트코인 거래자들도 가격 폭락으로 손해를 봤다. 그러나 올해 11월 KB국민은행은 블록체인 기술 기업인 ‘코인플러그’와 전략적 제휴(MOU)를 체결했고 신한은행은 블록체인 기반 외화송금 업무 기업인 '스트리미'에 투자해 주주가 됐다. 현재 비트코인 거래소에 계좌를 만든 사람이 5만명, 실제 비트코인을 거래한 사람은 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한국시장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유명 엑셀러레이터 ‘Y 컴비네이터’의 창립자 폴 그래햄은 “비트코인이 성공할 것이라는 징후들이 보인다”면서 “먼저 해커들이 반응했고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도 보이지만 사람들은 아직 이 것을 장난감이라고 한다. 마이크로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이라는 말을 했다. 분명 시장에서 화폐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화폐를 넘어 안정 자산이라고 믿고 있는 유로나 달러도 사람들이 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지 실제로는 무의미하다는 각성이 사람들을 깨웠다. 이러한 인식들이 가까운 미래에 통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12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으로 꼽혔던 사토시 나카모토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만 봐도 흥미롭다.

비트코인이 단일 화폐의 강제를 부정한 혁명적인 통화 시스템 해체인지 하나의 석택적 대안으로 기존 시스템에 흡수될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정말 거대한 사기극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시장에서 이러한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실험이 인기를 얻는 것은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