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방향에 대해서는 국민 다수가 지지를 보낸다. 공감도 면에서는 ‘창조경제’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실적이 뒷받침된다면, 가장 돋보이는 치적으로 남을 것이란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정상화'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킨 듯한 '비정상' 분야가 하나 있는 것 같다. 바로 '기업 준조세', 그 중에서도 기부금 성금 등이다. 예를 들어보자.
 
‘청년희망펀드’라는 게 있다.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을 돕자는 취지라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 첫 가입했다. 박 대통령은 일시금 2000만원, 매월 월급의 20%인 340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명칭이 펀드인데 ‘투자’가 아닌 ‘기부’를 했다고 하니 언뜻 이해되진 않지만, 아무튼 대통령이 가입하자마자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가장 먼저 250억원을 냈다. 이에 뒤질세라 현대차가 200억원, LG와 SK가 100억원씩 기부에 동참했다. 펀드의 정확한 용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인데, 돈부터 몰려들었다.

마침내 74일 만인 12월 3일 현재 청년희망펀드는 약정분을 포함해 총 1038억원이나 확보했다. 이는 대한적십자사 기부금 총모집액(325억)의 3배,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589억)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펀드는 대통령의 '힘'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번에 처음 이름을 들어본 ‘미르’라는 낯선 문화재단이 있다. 한류를 전 세계로 확산하겠다며 설립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땅히 정부예산으로 할 사업이다. 하지만, 이 곳에도 박 대통령의 문화융성정책에 ‘스스로 화답한’ 대기업 16곳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한다. 헌데, 출연금이 무려 486억원이나 된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후원금 모금도 한창 진행중이다. 목표액이 무려 8,730억원이다. 삼성이 역시 통크게 1000억원을 내기로 했고, 현대차와 SK, KT 등은 500억원 이상을 후원하기로 약정을 맺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다른 대기업-중견기업들도 더 이상 눈치만 볼 수가 없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의 자금을 자기네 쌈지돈으로 여긴다는 사실은 얼마전, 한중 FTA 국회 비준안 통과 때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여야는 사상 최대 규모인 1조원 짜리 FTA상생기금을 뚝딱하고 만들어냈다. 농어촌을 돕겠다고 생색은 자기네가 내고는 돈은 대기업들이 대도록 했다. FTA로 돈 벌게될 기업들은 세금 뿐아니라 피해농어민 지원까지 떠맡게 됐다. 명백한 준조세이면서 반시장적이다. 이중과세 처럼도 보인다.
 
박 대통령의 뜨건 관심 하에 대기업들이 앞다퉈 나섰던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사례는 여기서 재론할 필요가 없겠다. 설립취지의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타당성 부족에서 기인하는 부작용과 문제점이 끝도 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업들로서는 자금 면에서, 운영 면에서, 특히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 측면에서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박근혜 정부가 이처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정기조와는 상반되는 행태를 보이면서 기업 기부금은 과거 정부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연간 4조1000억원 수준이었던 기부금은 2013년 4조7000억원, 2014년 4조9000억원으로 계속 늘었다. 법인소득 대비 기부금 비율도 지난 정부 1.5% 수준에서 지난해 2% 가까이로 상승했다.
 
기업은 화수분이 아니다. 기업은 기부금이나 성금을 내놓게 될 경우 상품 가격을 올리거나 인건비를 줄이거나 인력채용을 줄이거나 다른 필요한 지출을 줄이거나 또는 하청업체 단가를 낮추면서 부담을 다른 곳에 전가하게 된다.
 
준조세의 부작용은 보다 심각한 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투자비 감소와 성장동력 약화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해 95개의 법정부담금과 4대 보험료, 기부금·성금 등을 포함한 전체 준조세는 58조6000억원이었다. 반면 6200여 기업의 전체 연구개발(R&D) 투자비는 43조6000억원에 그쳤다. 사상 처음으로 준조세가 투자비를 앞지르는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나라가 커졌다. 정부 재정이 부족해 기업에 손벌리던 시절은 지났다. 기업의 팔을 비틀며 자발적 성금인 양 포장하는 일을 그만할 때도 됐다. 기업의 돈은 결코 정권의 쌈짓돈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란 국정기조에 ‘준조세’ 항목을 예외로 둬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