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탱크 시계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하는 탱크 앙글레즈 모델. 자료 제공/ 까르띠에

시계 브랜드마다 예닐곱에서 많게는 수십 개에 달하는 컬렉션을 두고 있다. 하지만 긴 세월 사람들 뇌리에 남아있는 스테디셀러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브랜드보다 더 유명한 시계 컬렉션’을 살피는 것은 좋은 시계를 보는 안목을 기르는 첩경이다. 또한 갖고만 있어도 돈이 붙고 명예도 붙는 확실한 시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브랜드보다 더 유명한 컬렉션의 첫 번째 이야기, 까르띠에 탱크.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은 자주 바꿀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이얼은 물론 시계의 모든 연결 부위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까르띠에 탱크가 꼭 그렇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장을 누비는 탱크가 따로 없는데, 이는 손목시계로는 매우 보기 드문 형태다. 20세기 초 까르띠에는 새로운 시계 디자인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의 목적은 간결한 러그로 브레이슬릿과 케이스를 한 몸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안된 정사각형 또는 장방형의 시계가 바로 탱크 시계이다. ‘탱크 노멀’로 불린 이 시계는 케이스와 통합된 러그가 인상적이었고, 이내 독특한 스타일과 진보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917년 루이 까르띠에는 2차 세계대전에 쓰인 탱크의 차체에서 영감을 얻어 케이스를 제작했고, 탱크 바퀴에서 착안해 샤프트를 만들었다. 여기에 로마 숫자, 철길 모양 분 표시, 검 모양의 블루 스틸 핸즈, 블루 사파이어 카보숑 크라운 등이 더해져 탱크만의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1919년 11월 15일에서 12월 26일 사이에 제작되어 대중에게 소개된 6개의 탱크 시계는 이듬해 1920년 1월 17일, 모두 팔려나갔다. 탱크는 될 성 부른 떡잎임이 분명했다.

▲ 1930년대 스포츠가 대유행하면서 등장한 탱크 바스퀼랑트. 자료 제공/ 까르띠에

이후 까르띠에는 눈부신 탱크 연대기를 써나갔다. 우선 새로 선보이는 시계를 정사각형이 아닌 장방형으로 만들었다. 1921년에 선보인 탱크 상트레는 손목에 잘 맞도록 고안된 만곡형으로 지금도 ‘기능하는 디자인’의 선례로 꼽힌다. 훗날 탱크 아메리칸 시계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932년에 나온 탱크 바스퀼랑트는 스포츠를 즐기면서도 아끼는 시계를 보호할 수 있는 리버서블 시계였다. 케이스에 통합된 크라운은 12시 방향에 있고, 다이얼을 위로 보이게 하거나 뒤로 돌려 보이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1950년대에는 탱크 렉탕글(L 모델)처럼 큰 사이즈의 시계가 출시되었다. 당대 건축 양식을 따르기라도 하듯이 당당하고 남성적인 형태를 취하며 선이 굵은 매력을 발산했다. 반면 1960년대에는 여성스러운 케이스와 더 작은 사이즈로 변모했다. 미니 탱크 루이 까르띠에 시계를 기리고자 만든 탱크 알롱제가 대표적이다. 1970년대에는 탱크가 머스트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미니멀한 다이얼 디자인과 70년대를 대표하는 컬러, 실버 마감, 다양한 파인 스톤 등 탱크가 전세계 모든 이가 열망하는 표준이 된 것이다. 당시에 얇은 시계의 유행은 절정에 달했고, 탱크 루이 까르띠에는 가죽 스트랩과 순은 시계로 선택의 폭을 넓히는 전략을 펼쳤다.

▲ 미국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만곡형 디자인의 탱크 아메리칸. 자료 제공/ 까르띠에
▲ 세련된 댄디 가이에게 제격인 오토매틱 시계 탱크 MC. 사진 제공/ 까르띠에

현재 까르띠에는 탱크 프랑세즈, 탱크 아메리칸, 탱크 앙글레즈, 탱크 디반, 탱크 솔로, 탱크 루이 까르띠에, 탱키씸므 등 시계와 주얼리를 아우르는 다양한 탱크 컬렉션을 운영하고 있다. 1989년에 등장한 탱크 아메리칸은 탱크 상트레의 연장선에 있는 시계다. 만곡형 케이스는 탱크 상트레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장방형은 더 좁아졌고, 샤프트는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부드러움과 강함, 직선과 곡선, 원형과 각과 같은 기하학적인 요소를 거침없이 사용해 발군의 스타일을 자랑한다. 1996년 출시한 탱크 프랑세즈는 클래식 탱크의 코드를 재구성한 시계다. 비스듬히 잘린 샤프트와 오목하게 휜 링크, 만곡형 디자인의 시계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은 라인과 볼륨 면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탱크 아메리칸과 탱크 프랑세즈의 바통을 이어받은 탱크 앙글레즈는 까르띠에의 글로벌한 행보를 대변한다. 형태와 라인은 강화되고, 디자인은 더욱 풍부해져 탱크 미학의 절정으로 통한다. 특히 탱크만의 디자인 요소에 새로운 사이즈를 접목했다. 탱크 시계의 특징인 평형 샤프트는 이때부터 크라운과 완전히 통합되었다. 그래서 옆에서 보면 크라운은 탱크의 바퀴처럼 보이기도 한다.

▲ 높은 소장 가치를 지닌 탱크 루이 까르띠에 XL 엑스트라 플랫. 사진 제공/ 까르띠에

더 높은 소장 가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골드 케이스가 압권인 탱크 루이 까르띠에가 제격이다. 절제된 직사각형 케이스와 멋스러운 블루 사파이어 카보숑의 조화가 클래식의 힘을 잘 보여준다. 2012년에 선보인 XL 버전은 컬렉션 내에서 가장 얇은 두께인 5.1mm의 초박형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까르띠에의 첫 번째 자사 무브먼트인 1904 MC가 장착된 탱크 MC는 댄디 가이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오토매틱 워치가 있다면 다이얼의 사파이어 글래스 케이스백 너머로 아름다운 메케니컬 무브먼트와 로터를 언제든 감상할 수 있다. 탱크 특유의 장방형을 변형한 넉넉한 공간 덕에 다이얼 위로 시간이 여유롭게 흘러간다. 다이얼을 리드미컬하게 장식해주는 스몰 세컨즈는 남성미를 강조한다. 가장 최근에는 SIHH 2015에 까르띠에의 자사 매뉴얼 와인딩 메커니컬 무브먼트인 9622 MC 칼리버가 이식된 탱크 루이 까르띠에 스켈레톤 사파이어 워치가 출품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바 있다.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탱크 컬렉션은 까르띠에 하우스에서 신화적인 존재다. 이 신화를 만들어 간 유명 인사들의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까뜨린느 드뇌브, 엘튼 존, 알랑 드롱, 다이애나 비, 샤갈, 세자르, 앤디 워홀, 모니카 벨루치, 랄프 로렌, 미셸 오바마 등이 그 예이다. 까르띠에 탱크를 차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시계를 차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선과 세련되고 우아한 형식을 아는 혜안과 식견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