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국내 화장품 업계다. 크리스찬 디올, 샤넬, 갤랑 등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이 ‘관세 철폐’로 가격 인하가 되며 국내 화장품 시장의 가격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유럽산 수입화장품은 오는 7월 한·EU FTA가 발효되면 단계적으로 3~5년에 걸쳐 현재 6.5%인 관세를 모두 감면 받게 된다.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연간 약 12조원. 이 가운데 국산 화장품의 점유율은 60~65%, 그중 35~40%가량을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산 수입 화장품이 차지하고 있다.

화장품협회 관계자는 “FTA 발효 5년 후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면 국산과 외산의 점유율이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관세 장벽 때문에 국내에 진출하지 못했던 유럽 화장품업체들이 직접 진출을 검토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명품기업인 루이뷔통 모에헤네시(LVMH)의 화장품 유통체인인 ‘세포라’와, 독일 기업 더글러스 홀딩 에이지(Douglas Holding AG)가 운영하는 화장품 소매점 ‘더글러스’, 프랑스의 화장품 유통체인으로 홍콩 왓슨에 합병된 ‘마리오노’ 등이 한국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기업은 유럽에만 각각 800여개에서 1천여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어 국내 화장품 업계의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한편 구찌·에르메스·샤넬 등 명품 브랜드는 기대만큼 가격이 내려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명품가방·옷·화장품 등은 8~13% 정도의 관세율이 사라진다. 품목별로 즉시 철폐, 혹은 5년 내 철폐 조건이다. 그러나 고가정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는 명품업체들이 FTA 발효 이후 값을 실제로 내릴지는 불투명하다.

관세율 철폐가 가격 인하보다는 오히려 명품이나 제조소매업자(SPA)브랜드의 마케팅 확대로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관세율이 13%라면 실제 소매가격 하락폭은 8~9%로 적기 때문에 명품이나 H&M 등 SPA브랜드가 그 수익차를 마케팅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

SPA 브랜드 역시 전세계 동일 수준의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고 그 동안 중저가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에 가격을 더 내릴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EU와의 경쟁관계에 놓인 국내 중고가 의류, 패션 업체들도 FTA가 판매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으로 보고 있다.

한편 지난해부터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았던 농축산업계 역시 한·EU FTA의 여파로 또다시 몸살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7월부터 EU산 냉동삼겹살의 관세는 현행 25%에서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사라지고 냉장삼겹살과 냉장목살도 현행 22.5%의 관세가 10년 내 철폐된다.

실제로 관세 25%가 철폐된 EU산 냉동삼겹살 1kg의 예상 판매가격은 4720원. 9280원에 판매되고 있는 국산보다 값이 절반 가까이 저렴하다. 이 때문에 발효 15년차가 되면 양돈산업이 1200억원대 피해를 보는 등 국내 축산물 생산액은 3000억원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절반 가까이 할인된 외국산 삼겹살 가격에 소비자들은 반기고 있지만 국내 축산농가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한편 미국산과 캐나다산 냉동 삼겹살을 취급해온 이마트는 7월 중에 벨기에산을 들여온다. 이마트 관계자는 “현재 삼겹살 가격은 100그램(g)당 2200원 수준이나, 벨기에산 삼겹살은 1천원대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원영 기자 uni354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