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펩시

최근 펩시가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콜라 만드는 그 회사가 맞다. 뒤질 것 없는 스펙에 가격은 23만 원에 불과하다. 물론 직접 제품을 생산한 것은 아니다. 중국 중소형 제조사가 OEM 방식으로 생산을 맡았다. 특이한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펩시는 주목받자 굳이 ‘일회성 이벤트’라고 일축했다. 펩시가 스마트폰을 선보였다는 건 펩시 말고 다른 회사도 얼마든 이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시장이 만만해졌다는 것이다.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버도 최근 특이한 시도를 예고했다. 한류스타 김수현을 소재로 삼은 스마트폰을 내년 초 중국에서 출시한다고 전했다. ‘김수현폰’은 미공개 김수현 콘텐츠가 담긴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만 김수현 팬클럽 회원이 1000만 명에 달하는데, 이 수요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시장에 등장한 차별화가 돋보이는 시도들이다. 이외에도 폴더형 제품을 부활시킨다거나, 스페셜 에디션을 내놓는 등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색다르다는 것’이 스마트폰 시장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스펙은 상향평준화를 이뤘고, 가격은 내릴 만큼 내려가 차별화 지점으로 삼기 어려우니 독특함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이제 관건은 아이디어다.

‘차별화’가 떠오른다는 것은 시장의 위기를 증언하기도 한다. 별 특징 없는 제품이 비싸게 팔리는 시대가 지나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이제 저렴하면서도 차별적인 요소가 있는 제품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업계는 안 그래도 수익성 악화로 신음하고 있는데 고민할 게 많아져 머리 아프다는 눈치다.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중저가 프리미엄’

세상에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는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 시장은 변화를 거듭했다. 회사들은 먼저 ‘첨단’이라는 가치를 선점하기 위해 겨뤄왔다. 그 다음에는 제품 가격을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가격이야 다 같이 비싼 값을 받으면 걱정이 없겠지만 암묵적인 담합을 깨는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회사들이다. 뒤늦게 중국 스마트폰 시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현지 업체들이 적극 대응했다. 그 회사들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샤오미, 화웨이, 레노버, ZTE 같은 업체들이다. 이들은 ‘중저가 프리미엄’이라는 중국 스마트폰 고유의 정체성을 창출해냈다.

▲ 출처=샤오미

저임금으로 굴러가는 대규모 제조 인프라를 바탕으로 헐값에 폰을 만들었는데, 그 성능이 선두 업체들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들은 자국에서의 성장을 발판으로 시장 구조가 비슷한 글로벌 이머징 마켓에 대응하며 선두 업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가성비’라는 뉴노멀

프리미엄 제품 소요가 높은 선진 시장 일부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에 따른 불황을 체감한 소비자들은 보여주기 위한 과시소비보다는 실리를 따지는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부가 단박에 돌아선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이 달리지는 모양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일단 사회 곳곳에서 실리 따지는 소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스타벅스 대신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 명품 의류 대신 유니클로, 고급 레스토랑 대신 백종원 프렌차이즈, 이태리 명품 가구 대신 이케아를 택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싸고 질 좋은 물건과 서비스의 시대가 왔다.

스마트폰 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중저가’라고 하면 예전 같았으면 노년 세대를 위한 제품이 당장에 떠올랐다. 이제는 아니다. 프리미엄 제품을 사며 낭비하기보다는 실속을 차리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국내 제조사들은 중저가 라인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J 시리즈와 A 시리즈, LG전자는 밴드플레이와 아카(AKA) 등을 선보였다. TG앤컴퍼니의 루나(LUNA)가 등장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과 같은 정책적으로 조장된 불황의 여파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프리미엄 제품이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으로 팔리기는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영향일까. 프리미엄 제품의 출고가가 떨어지고 있다. 일례로 ‘슈퍼 프리미엄 폰’ LG V10은 출시 당시부터 출고가가 70만 원대로 책정됐다. 프리미엄 치고는 이례적인 가격 정책이다.

▲ 출처=LG전자

다시 글로벌 시장을 보자. 중저가 제품은 2008년 전 세계에서 팔린 스마트폰 중 비중이 0.7%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더군다나 프리미엄 시장은 포화에 다다른 반면 중저가 시장은 아직 잠재 수요가 남아있다고들 한다. 결국 프리미엄 제품은 가격을 싸게라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시장이 중저가로 수렴되는 모습이다. 업체들은 수익성이 낮아지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블러드오션에 빠지다?

레드오션이란 말이 나온 지는 제법 오래 전이다. 이제는 레드오션을 지나 블러드오션(피바다)라고까지 말한다. 시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어느새 전 세계 스마트폰 제조사는 1300여개에 달하게 됐다. 시장은 정체기에 빠진 반면 플레이어는 계속 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아직까지는 스마트폰 판매량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지난 3분기 3억5420만 대의 스마트폰이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5% 늘어난 수치다. 가장 많이 판 회사는 삼성전자다. 8380만 대를 팔아치웠다. 역대 2번째로 많은 숫자다. 애플도 3930만 대를 팔아 전년 동기 대비 36%의 성장을 이뤘다. 3위를 차지한 화웨이는 2670만 대를 팔았다.

문제는 수익이다. 같은 기간 글로벌 스마트폰 수익 94%를 독점한 회사가 있다. 애플이다. 2위 삼성전자와 날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수익 점유율은 11%에 불과했다. 재미있는 것은 두 회사 점유율을 합하면 100%가 넘는다는 것이다. 무얼 의미할까? 둘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마트폰 회사들이 적자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 출처=애플

이런 배경 때문일까. 삼성전자가 조만간 스마트폰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크리에이티브스트래티지의 수석 산업 애널리스트 벤 바자린은 이 같이 주장하며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시장에서 애플에 밀려 경쟁력을 잃고 있고, 품질이 우수한 저가 제품들도 삼성전자 제품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전한 IT 매체 샘모바일은 “전혀 의미 없는 가정은 아니다”고 평했다.

신산업 허브 될 때까지 버텨라?

스마트폰 시장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색다른 시도는 블러드오션에서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일 수 있다. 시장 현황은 악화됐지만 ‘차별화’와 ‘혁신’을 통해 반드시 살아남으라는 압박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봤자, 싸지 않으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모바일 회로로 흐르는 돈은 더욱 많아지고 있지만 그 물리적 통로를 구축하는 일이 돈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결국 ‘돈 안 되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업체들이 손을 떼면서 스마트폰이 멸종이 되고 말 것이라는 급진적인 주장도 있다. 반대로 낙관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계를 팔아 벌 돈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통로로 흐르는 돈, 즉 콘텐츠와 서비스 수익을 함께 본다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스마트폰이 사물인터넷(IoT) 생태계 허브가 될 것이라는 ‘3세대폰’ 담론도 낙관론에 해당한다. 또 급부상하고 있는 온디맨드(주문형) 경제의 허브 역할까지도 수년 동안은 스마트폰이 담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많은 업체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 출처=삼성전자

초창기 이머징 디바이스들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스마트폰이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머징 디바이스란 웨어러블, 가상현실·증강현실 등 비디오 디바이스, 스마트카 등 신생 디바이스를 통칭하는 말이다. 스마트폰이 이 기기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사용자에게 무한대 가치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라고 일부는 말한다.

패러다임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쥐고 있던 패권이 변화기를 거친 후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일부는 벌써부터 블러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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