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특성상 기업 홍보 관계자들과 만나는 자리가 잦다. 언론의 입장에선 해당 기업 소식은 물론 경제 전반의, 업계의 돌아가는 사정과 정보들을 취합할 수 있고, 기업 홍보 담당자도 자신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경쟁사 속사정들을 귀동냥할 수 있는 자리로 활용한다. 일종의 비공식적인 정보 교환의 만남인 셈이다.

최근 한 홈쇼핑 업체 홍보 담당자와 만난 자리였다. 화제는 ‘가짜 백수오’였다. 지난 4월 하순 한국소비자원의 ‘시중에 유통되는 백수오 제품 32개 중 진짜와 구분하기 어려운 이엽우피소 사용 제품을 21개(37.5%)로 확인했다’는 발표로, 약 두 달 동안 ‘가짜 백수오 파동’이 이어졌다.

홈쇼핑 업체 담당자는 줄곧 홈쇼핑 업계가 ‘가짜 백수오 파동’의 희생양이었음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야기인즉, 주요 6대 홈쇼핑 업계는 소비자원의 발표 직전까지 팔아치운 백수오 제품에 대한 소비자 환불을 실시했다. 하지만 정작 내츄럴엔도텍을 포함한 ‘가짜 백수오’ 제품을 만든 기업들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리를 받으면서, 환불금에 대한 구상권이 사라져 피해가 막대하다는 주장이었다.

사정을 전해 들으면서도 처음에는 내심 ‘어쨌든 가짜 백수오(물론 홈쇼핑 업체들은 이엽우피소가 함유된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제품이 몸에 좋다며 적극 홍보해서 판매했으니,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선 환불하는 게 당연하지 뭐 그럴까?’라고 시큰둥하게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데?’하고 의구심이 솟아났다.

이엽우피소를 백수오로 알고 건강제품 재료로 사용한 생산자에겐 ‘혼입 과정에 고의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니 무혐의 처리’한 검찰의 결정으로, 가짜 백수오 파동의 주범인 회사는 소비자 피해 보상에 ‘면죄부’를 줘버렸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홈쇼핑 업계가 게워낸 가짜든 진짜든 백수오 관련 제품의 소비자 환불금액 규모는 지난 8월 기준으로 총 417억원에 이르렀다. 환불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검찰의 무혐의 처리 논리대로라면, 홈쇼핑사들도 ‘판매의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굳이 환불을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국내에는 제조업체가 만든 제조물의 결함이 발생해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제조업체에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하는 제조물책임법이 있다. 그렇다면 제조물의 결함 발생에 고의성이 없다면 제조업체는 손해배상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일부 소비자단체들도 홈쇼핑 업체들이 ‘가짜 백수오’ 제품을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며 검찰의 영업정지 처분이 조속히 취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정작 가짜 제품을 만든 장본인들에게는 구체적인 피해구제나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리액션이 없다. 이 또한 의아한 부분이었다.

이런 와중에 ‘가짜 백수오’의 한 당사자인 내츄럴엔도텍은 ‘백수오 제품 판매’를 재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조업자는 어깨를 펴고 있는데, 유통업자는 눈치를 보며 속앓이를 하는 형국이다.

홈쇼핑 업계를 두둔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단지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가짜 백수오’를 만든 제조업체에게 이엽우피소 혼입의 고의성을 발견하지 못해 무혐의 처분함으로써 소비자 피해 보상에 면피 기회를 주었다면, 홈쇼핑 업체들의 제품 판매 광고에서 고의성은 어떻게 규명해낼 것인가. 허위과장 광고 부분은 문제의 본질인 ‘혼입 여부 사실’을 홈쇼핑 업체들이 과연 알았느냐는 것과는 별개다.

소비자단체들이 가짜 백수오 제품을 산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 나선다는 선의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 피해 구제를 위해 홈쇼핑 업계를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혐의를 붙여 공격하는 것은 일종의 ‘희생양 삼기’가 아닌가 싶다.

지난 11월 17일부터 24일까지 농촌진흥청이 백수오와 이엽우피소 구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전국 백수오 재배농가 220곳을 대상으로 현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액션 영화의 단골 장면인 열혈남아 주인공이 사건을 혼자서 해결하고 난 뒤에야 경찰차량이 경고등을 울리면서 출동하는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