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한 주였다. 무고한 많은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로 전 세계가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국내에서는 한 노동집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으로 온 국민이 화가 나 있다. 두 사건이 별개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 근간에 집단적 갈등이 존재하고 또 근본적인 갈등의 수습 없이는 결국 불행이 반복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갈등을 겪으면 당장의 고통이 싫다. 그래서 가능하면 빨리 해결을 보고자 서두르게 된다. 문제는 갈등을 그대로 두고 해결하려 하니, 겉으로 보아서는 잘 넘어가는 듯해도 속은 계속 곪아터지게 된다. 테러를 뿌리 뽑겠다고 폭탄을 퍼부어도 테러의 위협은 결코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신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결방법을 찾는다지만, 결국 한쪽은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이유이다. 갈등의 해결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항우울제 사용 최저의 나라, 그리고 자살률 최고의 나라

가뜩이나 답답한 마음을 더 힘들게 한 통계자료가 있다. 2013년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전체 회원국 중에 항우울제 사용량이 최하위다. 우리보다 항우울제를 적게 사용한 나라는 칠레밖에 없었다. OECD 회원국의 평균 DDD(Defined Daily Dose, 1000명당 의약품 하루 소비량)가 58인 반면 우리는 20에 불과했다. 이 통계만 놓고 보면 항우울제를 적게 먹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우울증이 가장 적은 나라 중의 하나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반대이다. 우리는 OECD 회원국 중 벌써 1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하고 있다. 그냥 1위가 아니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의 두 배이고, 모든 연령층에 걸쳐 1위이다. 자살률을 보자면 우울증이 적어서 우울증 치료제를 안 먹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살하는 모든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체계적인 우울증 연구에 의하면 자살 환자의 80% 정도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우울증을 앓게 되면 그렇지 않는 사람에 비해 무려 자살 시도가 무려 약 12배 높아진다.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를 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우울증도 1위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울증을 치료받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특히 현대 정신의학에서 우울증 치료의 핵심은 약물치료이니, 항우울제 소비량도 1위를 차지해야 이치에 맞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우울증 환자가 많을 것이 확실한데도, 항우울제 소비가 적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낮은 항우울제 사용 = 우울증의 만연과 악화 = 자살 증가’라는 단순한 도식이 좀 무리이기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분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편견이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편견에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도 편견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안 한다는 것이다. 비단 우울증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신과, 정신질환, 정신과 치료 모두가 나쁘거나 이상한 것으로 잘못 인식되어 있다. 오죽하면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을 했을까!

그래서 상담을 하다 보면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창피해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리에 앉자마자 통곡을 하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고 자책한다. 정신과에 왔다는 사실을 무슨 죄를 지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마치 와서는 안 될 곳에 온 사람처럼 말이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이러하니 치료가 잘 될 리도 만무하다. 자식이 오랜 우울증으로 바깥출입조차 못 하는데도 편견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꺼린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더구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무조건 그만 두고 약을 끊으라고 한다. 정신력으로 이겨보라고 한다. 조금만 더 신중히 생각하면, 우울증 환자에게 ‘치료를 끊고 정신력으로 이겨보라’는 이 흔한 이야기가 가장 잔인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선 환자를 무시하는 언사다. 마치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유리 멘탈’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상대를 유약하고 형편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우울하다고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남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우울증에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 안 되니까 병인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교육을 해도 쉽사리 치료를 중단한다. 조금만 불편함이 없어지면 약을 끊고 버티려고 한다. 경한 우울증의 경우 잠시만 약물의 도움을 받고 스스로 이겨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은 치료 도중 투약을 중단하면 100% 재발된다. 재발된 우울증 치료에는 저항성이 생긴다. 심리적인 원인과 생물학적 원인으로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 치료의 어려움뿐만 아니다. 재발을 겪으면서 생기는 심적 고통, 경제적 손해, 직업적 또는 사회적 어려움이 막심해진다.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아서, 또 간신히 치료를 시작했는데 재발해서 생기는 문제는 환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를 둘러싼 가족과 지인들이 고통받는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만성적인 우울증은 그냥 방치해두면 가족 전체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밝고 건강한 아내 또는 남편 아니면 부모님을 되찾고 싶어도 그놈의 편견 때문에 막무가내다. 우울한 감정은 전염이 되어 온 식구들이 우울증을 앓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정신과 제대로 이용하기

우울증을 치료하면 정말 행복해질까? 물론 우울증이 없어진다고 모두 행복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해질 확률은 비교할 수 없게 높아진다. 우울증을 방치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20%가 자살을 시도한다. 치료를 받으면 자살시도는 현저하게 줄어, 10만명 중 불과 약 140명 정도만이 자살을 시도한다고 한다. 또한 부정적 시각이 주된 증상인 우울증이 호전되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행복이 내게 올 수 있을까?’라는 비관적인 태도로 살아오다가, 우울증에서 해방되면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욕구가 용솟음친다.

그렇다면 정신과건강의학과는 언제 찾으면 좋을까? 무조건 우울하다고 정신과건강의학과를 찾을 일은 아니다. 우울한 감정은 정상적인 것이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하루 거의 대부분이 우울하고, 이 우울함으로 일상적인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그런 기간이 2주 이상이면 무조건 병원을 찾아야 한다. 또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늘 불행하다고 느껴지거나, 평소에 객관적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주눅이 들어 있는 사람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우울함이 덜하지만 수면장애, 식욕장애, 기타 원인 모를 통증 등이 심각해서 일상이 불편하면, 이 또한 정확한 진단 후에 필요하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불행하다고 늘 걱정을 한다. 정부나 학계에서는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하지만 우선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서로에 대한 인정과 이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테러와 보복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이 자살률은 줄어들 리 없고, 우리는 불행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이 없다. 이 사회가 이토록 우울해진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해야겠지만, 그보다 앞서 우울증은 그저 질병일 뿐이고 또한 정신간강의학과는 내과나 소아과처럼 질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인식하는 의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