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가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개념화한 러시아 형식주의의 문학적 수법 ‘낯설게 하기’가 있다. 이미 일상화되어 친숙하거나 반복되어 참신하지 않은 것들을 낯설게 해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현대시에서 주로 쓰이기도 하며, 몰입을 방해하기 위한 브레히트 연극의 방법론으로, 객관적 거리가 필요한 사진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낯설기 하기’의 목적은 결국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주로 문학이나 예술에서 상업적 행위로 변용되어 왔는데, 새로운 제품은 기존의 것을 진부하게 만들어 소비를 유혹한다. 인간에게는 어쩌면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는지 모른다. 자동차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자동차에서 ‘낯설게 하기’는 어쩌면 대비되는 두 가지 개념으로 쓰인다. 전통 깊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멀리서 한눈에 보아도 그 브랜드임을 알 수 있는’, 그리고 ‘어디서나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한눈에 그 브랜드임을 알 수 있는 스타일’이 중요한 신차 디자인 개발 요소가 된다.

이 경우 ‘낯설게 하기’는 오히려 피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상 브랜드 아이덴티티(정체성)는 대중차 메이커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급적 통일감 있는 디자인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현대차의 헥사고날 그릴이나 기아차의 호랑이코 그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면을 부각해야 하는 게 디자이너의 숙명.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더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개발비를 들여 새롭게 디자인을 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오히려 옛날 차 디자인이 화려하고 멋있었던 이유가 여러 가지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 인피니티 Q30 프리미엄. 사진=최주식 제공

지난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만났던 인피니티 Q30을 11월의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타볼 수 있었다. Q30은 인피니티 브랜드 최초의 C-세그먼트 콤팩트 모델. 5도어 해치백과 크로스오버 사이에 위치하는 독특한 성격이 화제를 모았다. 말하자면 크로스오버 해치백인데 이런 성격이 처음은 아니다. 흔히 자동차는 진화하는 생물과 같다고 말한다. 하나의 종이 생기면 거기서 파생하는 다양한 변종이 생겨난다.

쿠페의 변종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CLS로 4도어 쿠페 시대를 열었고, 아우디 A7 등이 뒤따랐다. BMW가 쿠페와 SUV를 혼합한 X4, X6를 내놓자 메르세데스 벤츠는 GLE로 뒤쫓았다. 그리고 왜건과 SUV의 조합은 볼보 XC70,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 폭스바겐 올트랙 등을 낳았다. 해치백과 SUV, 또는 크로스오버의 조합 역시 르노삼성 QM3, 시트로엥 DS5, 메르세데스 벤츠 GLA, 볼보 V40 크로스컨트리 등 다양하다.

인피니티 Q30은 한눈에 인피니티임을 알 수 있는 디자인과 키 큰 차체의 낯섦이 동시에 다가왔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키면서 ‘낯설게 하기’까지 성공한 셈이다. 초승달 모양의 꺾어지는 C-필러를 비롯해 자잘한 근육질의 몸매가 인상적이다. 점점 도시화되어가는 SUV의 변종이 크로스오버를 만들었고, 그 크로스오버 역시 또 다른 변종으로 파생되어 가는 느낌이다.

Q30에 더욱 놀란 것은 도어를 열고 실내에 들어섰을 때다. 어디선가 익숙한 모습은 전형적인 인피니티가 아니라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것이었기 때문. 스티어링 휠에서부터 계기판, 오디오 조작부, 기어 레버 등 주요 인터페이스가 모두 벤츠 A클래스 그대로인 것. 심지어 엔진도 다임러에서 가져왔다. 인피니티와 다임러는 지난 2010년부터 기술 제휴를 맺어왔는데 Q30에 다임러 엔진을 비롯한 부품 공유가 이루어진 배경이다. 이쯤 되면 합체라 불러도 무방한 수준이 아닐까.

2.0L 211마력 휘발유 터보 엔진 얹은 Q30 스포츠와 2.2ℓ 170마력 디젤 터보 엔진을 Q30 프리미엄 모델을 연달아 타고 리스본의 외곽지역을 달렸다. Q30 스포츠는 시트 포지션이 15㎜ 낮고 스프링을 단단하게 조율해 보다 민첩한 주행성능과 핸들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디젤 2.2 모델은 휘발유보다 파워는 약했지만 부드럽고 매끈한 주행 질감이 매력적이었다. 이미 공고한 벽을 쌓고 있는 독일 프리미엄 콤팩트 모델들에 도전하는 Q30은 만만치 않은 상대로 보였다. 그리고 Q30을 통해 변화하는 세계 자동차업계의 제휴 전략과 트렌드를 읽을 수 있었다. 내년 상반기 국내에 들어온다니 기대를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