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통업계에서는 유독 ‘창립기념’, ‘가을맞이’, ‘아웃도어전’까지 다양한 이유를 내세워 반복되는 세일 경쟁에 돌입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치킨게임은 두 대의 차량이 마주 보며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 한 명이 방향을 틀어서 치킨, 즉 겁쟁이가 되거나 아니면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되는 게임이다. 결국 무분별한 세일이 판매자와 제조사에게 부담을 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약 3~4년 전부터 로드숍 화장품 업계에서는 연중 평균 100일 이상 세일을 진행하면서 결국 업체 모두가 할인 경쟁에 뛰어들었고, 이는 관련 업계가 불황기로 갈 수 밖에 없는 요인 중 하나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백화점과 할인마트 역시 이 시대의 ‘치킨’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올해 각 백화점은 ‘역대 최대 규모’, ‘노마진’을 앞세우거나 ‘출장 판매’까지 나서면서 매출 특수를 노렸다.

롯데백화점은 1월 2일 ‘2015 첫 세일’을 시작으로 여름, 가을 정기 세일은 물론 하반기에는 노마진 출장 세일, 블랙프라이데이, K-세일로 경쟁적으로 관련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역시 이에 질세라 비슷한 형태의 세일로 소비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불경기에 메르스까지 겹친 이후 계속 하락세를 이어오다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오랜만에 내수경기가 활기를 띠었다”라면서 “이후 K-세일데이를 행사로 준비해 매출 특수와 내수 활성화 촉진을 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적은 부진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올 3분기 매출액으로 1조896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9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2.7% 하락했다. 현대백화점은 소폭 상승했다.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2.1% 증가한 3976억원으로, 영업이익은 700억원으로 0.1% 올랐다. 이는 판교점 오픈 효과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연중 세일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주부 김진주(41세) 씨는 “최근 백화점에 가면 항상 다양한 타이틀을 내세워 세일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로드숍 화장품에서 제 값 주고 사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데 요즘 백화점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요즘에는 직구나 온라인 등 유통 경로가 다양하기 때문에 아무리 세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백화점만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마트 역시 올해 다양한 세일을 펼친 가운데 창립일을 바꿔가면서 진행하기도 했다. 이마트가 11월 개점 행사를 내세워 행사에 돌입하자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각각 4월, 5월이 창립 달이지만 일제히 행사에 들어갔다.

세일을 내세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은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이마트는 올해 3분기 3조6837억원의 매출액을 올려 전년 동기 대비 4%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3%으로 소폭 올랐다. 롯데마트는 올해 1조58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3.2% 성장한 수치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410억원으로 46.4%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 주도로 업계에서는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등 계획에 없던 세일 행사를 진행한 부분도 있지만, 이렇게 과도한 세일은 결국 판매자와 제조사에 부담을 주면서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업계에서 세일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나 변화를 내놓고 있지 못한다는 것 역시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