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스타 2015 현장에 나타났다. 그가 누구인가. 게임을 마약·도박 등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해 통합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일명 ‘게임중독법’을 발의했던 인물이다. 게임업계와 게임 유저들의 가장 많은 원성을 받은 인물 중 하나다. 지스타에는 무슨 일일까.

무려 지스타 국제 게임 콘퍼런스 개막 축사를 맡았다. “혹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께서 신의진이라는 이름을 한번 검색해 보시면, 굉장히 호의적이지 않은 눈길이 있을 것인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스타에서 저를 이렇게 축사를 할 수 있게 끔 초대를 해줘서 굉장히 감격할 정도로 감사드립니다.” 신의진 의원이 축사를 통해 전한 말이다.

▲ 출처=신의진 의원 페이스북 캡처

지난 13일 신의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지스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도 남겼다.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게임 콘퍼런스에 참여하고 있어요. 기능성 게임에 대한 토론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 건강과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게임 산업이 미래에는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해요.”

게임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뀐 걸까. 다소 전향적인 태도를 드러낸 듯하다. 그러나 ‘게임=마약’이라는 프레임을 제시했던 과거를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이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직설적으로 불편한 시선을 내비치는 댓글이 수두룩하다. 차마 인용하기 어려운 말들도 다수다. 아직까지 그에 대한 여론이 상당히 차갑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규제의 유령이 지스타를 떠돌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아직까지도 ‘규제 포비아’를 완전히 떨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생활에서 아직까지 위축된다. 소개팅에 나가서는 게임사에서 근무한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게임 산업에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봐.” 게임사 관계자 A씨의 말이다.

현재 다양한 게임 산업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웹보드 게임 이용시간 제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이다. 여기에 게임중독법과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손인춘법)까지 가세하면서 게임업계는 급속도로 움츠러들었다.

“찬사를 받던 한국의 게임 산업을 정작 우리 정부는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 싹을 잘라 버렸다. ‘신데렐라법’이라 불리는 셧다운제를 비롯해 외국 학자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온갖 규제를 쏟아냈다.” 중앙대 위정현 교수의 분석이다. 규제는 산업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제 실시 이후 국내 게임 시장 규모가 1조1600억 원가량 위축됐다.

업계는 여전히 충격과 공포에 허덕이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러니 이런 충격을 주도했던 인물이 “사실은 게임 산업에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식의 뒤늦은 고백을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의 '앙심'이 눈 녹 듯 해소되긴 어려운 것이다. 그 말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고 있는 형국이다.

“가장 심각한 건 자체 검열이에요. 규제 공포 때문에 창의적인 시도를 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상황이 이러니 국내 게임 산업이 성장 동력을 잃게 될까 우려스럽네요.” 게임사 관계자의 말이다. ‘성장 동력 상실’은 일정 부분 현실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발행된 ‘대한민국 게임백서 2015’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시장은 10조 원 규모를 달성하지 못했다. 역성장은 면했지만 성장세가 주춤하다는 분석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산업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2만658개이던 국내 게임업체 수는 지난해 1만4440개로 5년 새 30% 정도 급감했다. 게임업계 종사자 수도 2012년 5만2466명이었으나 작년에는 3만9221명으로 25% 줄었다.

신의진 의원 말고 지스타를 계기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인물이 또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이다. 그는 지난 14일 벡스코에서 열린 ‘2015년 추계 한국게임학회 학술발표대회’에 참석했다. 그는 과거 국회의원 시절 ‘손인춘법’에 서명해 업계 반발을 부른 인물이다.

서병수 시장은 행사에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일단은 과거를 인정했고, 자신이 확실히 전향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증명하려 했다. “마침 오늘 학술대회 주제가 ‘게임 산업 규제와 청년고용’인데, 제가 이 부분에서 유명하죠? 제가 과거에 국회의원 시절에 ‘손인춘법’에 서명했다는 것 한 가지만 가지고 많은 비판을 하고, 저는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SNS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서병수 시장은 이어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에는 게임 산업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시장으로서 게임 산업을, 부산의 전략적인 산업으로 발전시키게 결심하게 된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화위복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냉랭한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그를 두고 "뻔뻔하다"고 일갈했다.

위정현 교수는 칼럼을 통해 당부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게임 산업의 맹아는 규제도 진흥도 없는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싹텄다. 그런 민간의 창조력이 작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복구되도록, 그래서 창조의 파랑새가 회생할 수 있도록 규제의 칼날을 거두는 것이 필요한 때다.”

결국 게임인들의 충격을 치유하고 국내 게임 산업을 살리려면 말보다는 게임 산업 육성에 무게를 두는 정책적 실천을 지속해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게임업계 도처를 떠도는 규제의 유령을 잡는 유일한 방법이다. 시간은 조금 오래 걸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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