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월급 다 어디에 썼어? 왜 돈이 없어?"
"월급이요? 이미 정부형님과 은행형님들이 다 가져갔어요"

개인적으로 즐겁게 봤던 웹툰의 한 장면입니다. 질풍같은 센스를 자랑하는 광고 대행사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활약을 보여주는 주인공은 항상 돈에 쪼들립니다. 월급날이 되어도 실제로 돈을 쥐어보지 못하죠. 물론 목돈이 생기면 대책없이 주식에 투자하거나 별 쓸모도 없는 한정판을 사는 것도 그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상당한 공헌을 합니다. 덕분에 소소한 일상의 지출은 항상 선배의 몫이죠.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입니다.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느냐? 사실 방금 소개한 이 대화야말로 현재 금융과 온라인의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돈을 출금하는것 보다 카드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체도 하고, 대출이자도(또 눈물이..) 갚고 있어요. 현물의 화폐를 사용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저 거대한 디지털 숫자의 알고리즘만 정신없이 오고가고 있어요.

월급날 노란봉투에 두툼한 지폐를 담아오며 퇴근길 치킨 한마리를 담아오던 아버지의 콧노래는 이제 추억의 한장면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저' 숫자뿐입니다. 갑자기 열받네요.

 

화폐의 정의가 바뀐다?
지금 우리는 온라인 시대를 맞이하며 실물화폐와 서서히 멀어지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괴리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멀어지고 있어요. 여기에 핀테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도입되며 금융 인프라는 빠르게 모바일에 녹아들고 있습니다. 즉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추구하는 모바일 인프라가 금융과 협력해 전혀 다른 기회를 포착하는 셈이죠.

이 지점에서 팀 쿡 애플 CEO가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그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칼리지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다음 세대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현금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력한 보안을 전제로 모바일 결제와 같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기존 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한 셈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제 정말 우리의 주변에는 '숫자'만 남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물론 팀 쿡의 이러한 발언은 패러다임적, 관념적 측면의 도발적인 미래전망이지만 사실상 자사의 애플페이를 홍보한 것으로도 풀이됩니다. 애플페이가 뭐냐? 스마트폰을 일종의 카드로 만드는 개념입니다. 기본적인 결제기능을 아이폰에 담아 차원이 다른 시너지를 노린다고 보면 이해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발언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진짜 그의 주장처럼 현금(화폐)이 사라질까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가 실물경제의 주류로 부상할 수 있을까요?

업계의 의견은 갈립니다. 다만 극적인 변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제로 지금의 추세가 계속되면 화폐가 사라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비트코인 대신 블록체인이 각광을 받는 것처럼 아직 지금의 가상화폐가 '다가올 미래'에 대비한 완벽한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장기적 관점으로는 '대체 가능하다'고 보는 셈입니다.

하지만 상술한 것처럼 이러한 담론도 결국 하나의 가능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어때요? 모바일 결제와 계좌이체 등을 포함한 핀테크 경쟁력이 기존의 화폐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인터넷전문은행이 흥미로운 이유
여기서 인터넷전문은행에 주목하면 재미있는 대목이 보입니다. 은산분리 및 각종 규제완화에 대한 담론을 포함해 비대면 거래를 중심에 둔 부분을 볼까요? 한국은 금융실명제를 하는 나라인데 비대면을 근간에 둔 인터넷전문은행은 참 재미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두운 자본흐름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사실 이는 패러다임을 바꿔서 생각해야할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네, 맞아요. 인터넷전문은행은 화폐 그 자체에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정의되든 상관이 없어요.

중요한 것은 흐름입니다. 즉 인터넷전문은행은 화폐의 정의를 바꾸거나 없애는 것에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화폐가 움직임으로써 발생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위비뱅크와 같은 기존 은행들의 온라인 은행 서비스와 인터넷전문은행의 차이를 가르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화폐에 대한 정의는 차치한 상태에서 오로지 '다음에 발생하는 부차적인 생태계'를 노리는 것.

글로벌 인터넷전문은행이 아직 주류로 부상하지 못하고 틉새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부차적인 생태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다려야 하니까요. 참고로 인터넷전문은행과 모바일은행의 성격을 나누려는 시도가 최근 보이는데, 이는 정말 의미없는 일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모바일은행을 포함하는 것에서 출발하니까요. 기대를 걸 이유가 하나 더 늘었죠?

정리하자면, 인터넷전문은행은 화폐의 의미를 숫자로 바꿔 간편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 혹은 신경쓰지 않는 상태에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이득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이 지점에서 최초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까요? 화폐에 대한 정의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핀테크의 패러다임이 굵직한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화폐는 어떻게 될까요? 사라질까요? 생태계가 중요한데, 그 생태계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바일의 영역입니다. 자, 화폐가 사라질까요?

사라질겁니다. 다만 매우 오랜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화폐의 정의가 완전히 바뀌려면 인터넷전문은행을 포함한 다양한 생태계의 가능성이 완전히 주류에 올라서야 합니다. 이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화폐가 아닌 화폐의 흐름, 생태계, 파생의 시너지 측면에서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요? 제3자에게 절대 들키면 곤란한 소위 '검은돈'을 숫자로 매겨 데이터베이스에 당당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당장은 어렵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해킹으로 민감한 정보 캐내는 것 보세요. 에드워드 스노든과 같은 이들도 생각해보세요. 당장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폐는 사라질겁니다. 하지만 팀 쿡 CEO가 말한 것처럼 우리 자식세대는 아니라는 것에 한표를 던집니다. 지금의 핀테크는 보수적이고 정체된 현재의 금융시장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IT와 연결된 분위기입니다.

결국 화폐의 정의가 아니라 생태계, 즉 화폐의 흐름을 새로운 권력이 장악하고자 이빨을 드러냈다는 뜻입니다. 이 치열한 복마전은 의외로 길어질 전망입니다.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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