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지하철은 서울보다 낡고 흔들림이 컸다. 전동차 실내도 좁았다. 승객들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비좁게 앉았는데, 그 자세로 책 읽는 이들이 여럿 보였다. 출입문 옆에 기대선 청년은 애니팡 게임이라도 하듯 뚫어져라 문고판을 읽고 있었다. 츠타야 서점이 있는 시부야로 가며 목격한 풍경이 낯설었다.

하지만, 일본 출판계도 불황이다. 출판사 수는 1997년 4612개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이다. 지금은 3분의 1 이상 폐업했다. 서점 수도 1999년 2만2296개였지만 작년에는 1만4241개로 집계됐다. 8000여 서점이 침체를 견디지 못했다.

이 와중에 홀로 성장중인 서점이 츠타야다. 츠타야 서점은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이 운영하는 전국 브랜드로 일본 각 지역에 1400여개나 된다. 츠타야서점은 지난해 7월 말 기준 일본 전역에 1444개의 지점과 4918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IT시대에 성공한 오프라인 서점으로 꼽힌다물론 츠타야 서점들이 줄어드는 독서 수요를 되살리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보다는 연환계와 같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간신히 출판 불황을 버텨내는 것 같기도 하다.

도쿄 시부야의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CCC 산하 서점들의 대표선수 격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의 초대형 서점 ‘기노쿠니야 서점’을 누르고 연간 서적 판매고 1위를 지키고 있고, 작년 잡지·도서 매출이 1109억엔을 기록했다.

시부야 역에서 내린 뒤 한참을 걸어 올라가 공원풍의 ‘다이칸야마 츠타야 T-site’를 만났다. 3개 건물로 나뉜 이 지역 츠타야 서점에는 책과 잡지뿐 아니라 음반, 영상 콘텐츠, 커피, 음식, 자전거 등 모든 것을 팔고 있었다. 라이프스타일의 모든 정보가 모인 거점이었다.

젊은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문을 열고, 휴일을 없애는 방법으로 여유시간이 각기 다른 다양한 세대를 수용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은 <엘르>, <보그>, <앙앙>, <지큐> 등 유명 매거진의 창간호부터의 아카이브로 사방 벽을 둘렀다. 뒷좌석에 낯익은 중년 남녀가 보였는데, 하마터면 인사할 뻔했다. 아사히 TV의 수사물 <경시청 수사1과 9계>에 나오는 형사 역의 후키코시 미츠루와 여형사 역의 하라 사치에였다.

츠타야 서점은 특히 각종 책과 매거진을 마음대로 열어 보도록 하면서 잠재적 구매자까지 확보하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이틀 후 밤늦게 롯본기에 있는 225년 역사의 우동집 ‘사라시나 호리이’에 갔다가 인근에서 츠타야 서점을 발견했다. 자정이 다가오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국인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서점 안에 입점한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무료 매거진을 펼쳐보다가 한두 권 책을 사 갔다.

츠타야 서점의 성공은 단지 모든 것을 다 팔기 때문일까. 한국의 대형 서점들도 그런 방식은 도입한 지 오래다. 마침 민음사에서 마스다 무네아키 CCC 회장의 <지적 자본론>을 보내왔다. 그의 통찰력은 달랐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좌절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시대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부족한 물자에 시달리던 ‘퍼스트 스테이지’, 안정을 구가하던 ‘세컨드 스테이지’를 지나, 고객의 고유한 취향을 충족해야 하는 ‘서드 스테이지’로 진전돼 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전 단계의 시대 인식에 머물러 있다.

마스다 회장은 또, 이렇게 주장한다. ‘라이프스타일 제안’이 ‘고객 가치’와 결합될 때 그 기업은 시장에서 선택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기업인들은 여전히 상품을 주고받는 장소를 여전히 매장(賣場), 즉 상품을 파는 곳이라 부른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 반대(買場, 사는 곳)인데도 말이다. 기업가들은 ‘세계 최초’, ‘전국 최초’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 뒤에는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은 감수하라”는 변명이 숨어 있다.

대형서점이 적지 않은 한국의 여행자들이 왜 “일본에 가면 꼭 츠타야 서점에 들러봐야 한다”고 말하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편리했다기보다 행복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