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현대건설

한동안 호황을 이어가던 부동산 시장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올해 들어 거래량, 청약률 모두 최고치를 달성하며 승승장구하던 주택 시장이 최근 들어 거래 하락과 미분양 증가 등 경고음을 내고 있는 것. 여기에 최근 위례신도시 등 인기 분양 단지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억대 웃돈이 붙었던 프리미엄(분양권) 가격이 떨어지는가 하면, 용인, 동탄2신도시 등 수도권 인기지역에도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최근의 전세난과 택지공급 부족 등을 감안할 때 부동산 시장 열기가 당분간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최근의 신규 아파트 공급과잉 여파가 향후 전국적인 ‘미분양’과 ‘입주대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이 지배적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상 징후들과 향후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단해본다.

분양 물량 급증… ‘미분양’ 수면 위로

최근 부동산 시장에 신규 아파트 공급 과잉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올 한해 주택 인허가 물량이 70만가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올해 분양 물량도 50만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9일 국토교통부와 주택업계에 따르면, 올 한해 주택 인허가 물량은 역대 최고 수준인 70만가구, 분양 물량은 50만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올해 9월까지 주택 인허가 물량은 총 54만140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7%나 증가했다. 분양 물량도 올 9월까지 33만561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2% 늘었다. 미국 금리인상 등의 우려가 상존하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가 좋은 틈을 타 주택건설사들이 신규 공급 물량을 마구잡이로 쏟아낸 결과다. 여기에 최악의 전세난을 맞은 세입자들이 앞다퉈 내 집 마련에 나선 것도 분양 물량이 급증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미분양 가구수(출처=국토교통부)

이와 함께 주택 수요자들이 조합 설립 후 땅을 직접 사서 집을 짓는 공동구매 형태의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공급도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청약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일반 분양 시장에서 내 집 마련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실수요자들이 지역주택조합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에서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지역주택조합 분양가구 수는 2만1431가구(33개 조합)다. 이는 작년 연간 분양 물량 1만5485가구보다 5946가구 많은 물량으로 집계를 시작한 2005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도 최대치다.

최근 분양 열기에 편승해 기존 관급공사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해온 중견 건설사들도 아파트 분양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아파트 분양 시장 호황에 따라 민간 분양 시장에 진출해 새로운 수익을 얻기 위해서다.

먼저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으로 잘 알려진 대보그룹의 계열사인 대보건설은 최근 아파트 브랜드 ‘하우스디(hausD)’를 론칭하고 민간 아파트 시장에 진출했다. 한진중공업도 최근 경남 통영시 재개발 단지인 ‘통영 해모로 오션힐’ 분양에 나섰으며, 이랜드그룹 계열사인 이랜드건설도 ‘김포 한강신도시 이랜드 타운힐스’ 공급에 나서며 7년 만에 아파트 분양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신규 공급 물량이 잇따르자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소화불량’ 신호를 보내고 있다. 청약자수가 과거에 비해 줄고,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는 등 이상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 최근 부동산114가 집계한 지난달 1순위 청약경쟁률을 보면 평균 8.6대 1로 전달 16.1대 1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아파트 일반 공급물량이 지난 9월 2만5449가구에서 10월에는 4만1422가구로 62.8%나 늘었으나, 1순위 청약자 수는 지난 9월 41만222명에서 10월에는 35만5911가구로 13.2%나 줄었다.

그동안 감소하던 미분양 주택도 최근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3만2524가구로 전월 3만1698가구 대비 2.6%(826가구) 증가했다. 증가폭은 미미하지만 향후 분양 물량이 대거 예정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시장의 우려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의 신규 아파트 공급과잉 여파가 2~3년 후 전국적인 ‘입주대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산 경기가 극심하게 침체됐던 2012년 7만가구 선에 비하면 아직은 절반 수준이지만, 미분양 가구 수가 다시 증가세로 방향을 틀었다는 점은 현재 분양 시장이 변곡점에 서 있다는 증거”라며, “특히 절대적으로 공급량이 많았던 지방 일부 지역의 경우 심각한 공급과잉의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고 전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인허가 물량은 시장 호황기였던 2007년보다는 많은 수준으로, 아파트뿐 아니라 비아파트 공급까지 증가하면서 공급 급증 현상이 강화됐다”며, “하지만 2016년까지 공급 증가가 지속되면, 하반기 이후에는 미분양, 미입주 등 재고적체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고삐 풀린’ 분양가, 매매가격‧거래량 ‘주춤’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아파트 매매 거래량도 최근 주춤하는 모양새다. 전년 동월대비 증가세를 보이던 거래량은 지난 9월부터 두 달 연속 전년 대비 거래량이 줄었다. 실제 9월 29일 기준 9월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8459건으로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거래량이 줄었다. 10월 아파트 거래량도 7만140가구로 지난해 동기 7만8826가구보다 11%나 거래량이 감소했다.

▲ 월별 주택거래량 추이(출처=국토교통부)

꺾일 줄 몰랐던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도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수도권 상승세 둔화에 따라 0.14% 오르는 데 그친 것. 이전까지 0.15%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며 오름세를 이어갔지만 10월 들어 매매가 상승폭이 줄어든 것이다.

청약률은 높았지만,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미계약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부산 동래구에서 분양한 ‘동일 스위트’는 일반 분양 577가구 모집에 부산 1순위에서만 2만6454명이 몰려 평균 45.8대 1의 높은 경쟁률로 1순위에서 청약을 마감했지만, 실제 계약은 생각보다 저조해 30%에 가까운 173가구가 미분양 주택으로 등록됐다. 서울에서 관심 아파트로 꼽혔던 ‘반포 푸르지오 써밋’은 평균 21대 1의 높은 경쟁률로 청약을 마쳤으나 계약률은 90% 이하로 나타났다.

고분양가 경쟁도 재연되는 모습이다. 최근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일반 분양가가 3.3㎡당 4000만원을 넘는가 하면, 부산 해운대구에서 분양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펜트하우스는 3.3㎡당 7000만원대의 역대 최고 분양가 기록을 세우며 주목을 받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나온 전국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992만원으로, 지난 2000년 이후 연간 평균 분양가로는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971만원)와 비교해도 47%나 뛰었다.

김수연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분양가상한제 폐지에 따른 최근 고분양가 현상은 주택 시장에 독이 될 수 있다”며 “입주 물량 폭탄이 현실화되면 분양권 거품이 빠지고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속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택담보대출 급증…美 금리인상 시 주택 시장 ‘뇌관’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도 향후 부동산 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624조8000억원으로, 한 달새 9조원 늘어났다.

부문별로 보면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465조1000억원(모기지론 양도분 포함)으로 7조원 늘었다. 이는 전세난 속 이사철을 맞아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부터 강화되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한몫하고 있다. 대출을 받을 때 소득심사가 강화되는 데다, 대출을 받고 1년이 지나면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하기 때문에 올해 미리 받아두려는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해 머지않아 국내 금리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한국은행도 외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가계빚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실위험지수(HDRI)’ 가구는 작년 말 기준 금융부채를 보유한 가구의 10.3%에 해당하는 112만2000가구로 조사됐다. 즉 빚이 있는 가계 10곳 중 1곳은 금리 인상, 주택가격 급락, 실업 등의 내·외부 충격이 오면 지급 불능에 빠질 위험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 위험가구 비율은 2012년 9.4%, 2013년 10.2%, 2014년 10.3%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가 오르면 일단 LTV 상한선인 70%까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가계는 대출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빚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부채를 줄이기 위해 주택을 대거 매물로 내놓을 경우, 집값 하락 등으로 이어져 부동산 시장의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주택 시장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상승 여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저금리에 의한 주택 수요가 집중되고 있어 주택경기 위축 시 둔화폭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