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 마진 악화로 적자의 늪에 빠져 허덕이던 정유·화학 업계에 최근 활기가 돌고 있다. 저유가 속 매출은 줄었지만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며 미소를 띄고 있는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3분기에도 선전하며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국제유가 급락의 공포는 잊혀져가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2016년의 업황에 이목이 쏠린다. 맑은 날씨가 예상된다.

 

정유 4사 3분기 실적 ‘선전’

11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했다. 불황의 늪은 건너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실적을 끌어 올린 것이다. 이들 4사의 매출액 합계는 24조281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9.83% 빠진 수치다. 저유가가 계속되면서 전체적인 몸집이 줄어 전체 매출액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대신 영업이익은 늘었다.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며 4사 합산 337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SK이노베이션의 3분기 영업이익은 1068억원이다. 2014년 3분기에 226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된다. 말 그대로 ‘냉탕과 온탕’을 오고간 셈이다. GS칼텍스는 올해 3분기 118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3분기에는 144억원을 손해봤었다. S-Oil은 124억원의 이익을 올리며 흑자로 전환했다. 작년 3분기 383억원의 적자를 냈던 흑역사를 말끔히 씻어냈다. 현대오일뱅크는 100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157% 증가한 수치다. 이례적으로 13분기 연속 흑자 영업을 달성하고 있다.

▲ 사진 = 교보증권

호실적은 비결로 꼽히는 것은 수익성 개선이다. 저유가와 국제유가 안정세로 시장이 진정됐다는 분석이다. S-Oil을 제외한 다른 정유사들이 원유 공급처를 다각화하며 경쟁력을 갖춘 것도 주효했다. S-Oil은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에서 원유를 전량 수입하고 있다. 여기에 4분기 계절적 성수기까지 도래하고 있어 정유사들의 표정을 더욱 좋아지고 있다.

 

2015년 이어 2016년도 ‘수확기’

교보증권 손영주 연구원은 “2015년 우리나라 정유·석유화학 업종은 2014년 국제유가 급락의 공포를 뒤로 하고 국제유가 약세를 발판으로 가파른 실적 개선을 경험했다”며 “호실적의 배경에는 정유의 가솔린 가격 강세, 석유화학의 NCC 정기보수 등도 있지만, 결국 저유가에 따른 마진 개선 영향이 가장 컸다”고 판단했다. 이어 “2015년은 2014년 하반기 유가 급락으로 잃어버린 이익을, 2016년은 2011년 하반기~2014년 상반기 고유가로 잃어버린 이익을 회수하는 수확기”라고 내다봤다.

교보증권이 최근 발간한 정유·석유화학·태양광 산업전망 리포트에 따르면 2016년 국제유가는 약세 구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국제유가 전망치는 WTI(West Texas Intermediate) 기준 평균 50$/bbl 수준으로 예측된다. 2015년 평균 금액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공급과잉 현상은 점차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2016 년 원유시장 수급은 공급 증가가 둔화되는 가운데 하반기로 가면서 글로벌 경기가 회복, 2015년 대비 개선되는 모습이 기대된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 하락이 걸림돌이 되긴 하겠지만 미국·독일·프랑스 등 경제 대국의 성장률 상승이 이를 상쇄할 것으로 예상된다.

▲ 사진 = 교보증권

손 연구원은 “정유 업종에게 있어 유가 안정세가 전망되는 2016년은 고유가에 따른 ‘11~14년 상반기’까지의 실적 부진이, 2015년 유가 급락하의 과도기를 거쳐 빠르게 회복되는 초년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2016년은 또한 유가 영향을 벗어난 실질적인 실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LPG 중고차 판매·이란 사태 등 눈여겨 봐야”

정유 업계의 2016년은 맑은 날씨가 예상되고 있지만 구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큰 폭의 매출 시장이 어렵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는 만큼 이 같은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핵 협상 타결로 이란의 원유 수출이 재개될 경우 시장이 공급 과잉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앞서 언급했든 미국, 유럽 등에서 수요가 늘 것으로 관측되지만 중국의 저성장은 분명 눈여겨봐야 할 요소다.

국내 시장에서도 작은 고민거리가 생겼다. 내년부터 액화석유가스(LPG) 중고차량 매매를 일반인에게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산업통산자원위원회는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 개정안을 막판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운행한지 5년이 지난 중고 LPG 택시와 렌터카를 일반인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다. 정유 업계는 이렇게 될 경우 LPG 수요가 크게 늘고 석유제품의 수급 불균형이 심해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한편 최근 지속되고 있는 저유가 기조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저유가 현상이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에 축복보다는 공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출판자회사 FKI미디어가 한국경제의 미래와 생존전략을 담은 '오일의 공포(OIL FEAR)'를 내놨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저유가는 우리에게 축복이 아닌 공포가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우리나라는 산업구조상 정유, 화학, 조선, 기계, 철강, 건설 등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높은데 이들 기업의 매출액이 유가와 연동돼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 사진 = 교보증권

저자들은 “우리나라의 수출 1위 품목이 반도체(10.9%)도, 자동차(8.5%)도 아닌 석유 관련 제품(17.4%)이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주유소의 기름값이 낮아졌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석유 시장의 큰손들에 의한 저유가 전쟁·전기차 시장의 활성화·개발도상국들을 노린 ‘오일의 공포’ 상황·탈석유 시대와 가스 시대 등으로 정리되는 급격한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에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휘몰아치는 산업혁명의 큰 파도에서 도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