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를 방문했다. 이 부회장이 거제조선소를 찾은 것은 삼성전자의 전무시절인 2007년이었다. 여기서 전제해야할 지점은, 경영 일선에 나선 이 부회장이 그룹 계열사 국내외 사업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특이한 행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역 사업장과 미국 법인 등을 방문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청취했다. 그런 이유로 이 부회장이 거제시 장평동 거제조선소를 찾았다는 것을 두고 침소봉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삼성그룹도 "특별한 현안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며 이번 방문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이번 행보를 의미심장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 출처=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넘기지 않겠다?
현재 삼성그룹은 사업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해 지주사로 올라섰고 한화에 방산을, 롯데에 정밀화학을 넘기며 선택과 집중을 단행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삼성토탈과 삼성테크윈 등 방산과 화학 계열사 4곳을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최근에는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의 화학부분을 롯데에 넘겼다.

물론 복잡한 순환출자고리는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았으나 때로는 사업적 필요에 따라, 때로는 기업의 기본적인 속성을 쫒아 현재 삼성그룹은 나름의 셀프 대수술에 돌입한 상태다.

여기서 삼성중공업의 '어려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삼성중공업은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이 무산된 후 올해 3분기 1조5000억 원의 적자를 내며 유상증자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모색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그룹의 강도 높은 경영진단을 받으며 구조개편을 위한 환골탈태를 선택받기도 했다.

여기에 조선업 전반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삼성중공업을 포함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가 모두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해양플랜트 부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빅3가 글로벌 경제를 강타한 저유가 폭풍으로 발주 자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다. 당연히 선박 발주도 회복세가 느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소폭 영업이익을 냈으나 해양플랜트 계약이 해지당해 다시 적자로 돌아선 대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결론적으로 삼성중공업은 고통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마저도 요원해진 상태에서 결국 매각 가능성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상황이었다. 수주 포트폴리오가 중복되지 않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합치는 방안이 논해졌던 것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방산과 화학분야처럼 매각을 단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업계 일각에서는 글로벌 조선소 3위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해외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삼성중공업은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올해 7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해양플랜트 3건을 수주한 것도 해외 매각을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여기까지가 삼성중공업이 처한 최근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이 부회장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를 방문하자 분위기가 일변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현안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경영 일선에 나선 이 부회장이 조선소를 직접 찾았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는 평가다.

먼저 매각 가능성이다. 최근 이 부회장은 해외 법인을 방문하며 현지에 마냥 선물만 안겨준 것이 아니다. 도리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현지 법인을 철수시키고 있다. 삼성전자 중국 DS의 경우 중국 시안(西安)을 제외한 다른 사업장에서 주재원 신분의 직원을 장기출장자로 바꾸고 있다는 말이 들리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는 실용주의를 택하고 있는 이재용 스타일과 맞물리며 상당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게다가 삼성중공업은 선택과 집중을 단행하며 그룹의 경쟁력에 포함시키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금융과 전자 등으로 힘의 집중을 추구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계열사와 삼성중공업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행보 자체에 집중하면 이번 거제조선소 방문이 '매각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기 보다는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상술했지만 삼성그룹이 선택과 집중을 단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당장 매각 상대를 쉽게 찾기도 어렵고, 삼성중공업의 의미도 남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삼성중공업은 태생부터 정부의 영향력이 강했던 기업이다. 1974년 설립된 이후 1977년 우진조선과 대성중공업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린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중공업 정책을 강조했던 정부의 설득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인 9월 삼성중공업은 성동조선해양 위탁경영을 결정했는데, 여기에도 정부의 입김이 강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정부가 조선 빅3를 철저하게 관리해 인수합병을 포함한 다양한 가능성을 시사하며 관리에 나설 확률이 높아지는 가운데, 삼성중공업 매각은 곧 삼성만의 일이 아니게 된다.

게다가 정부의 최근 경제기조는 내수진작이다. 최고기업인 삼성의 매각은 그리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그룹의 준조세라는 비야냥을 듣고 있는 청년희망펀드로 어떻게 막아볼 수 없는 '충돌'이다.

결론적으로 이 부회장의 이번 행보는 삼성중공업에 대한 믿음의 표시라는 뜻에 중론이 쏠린다. 게다가 이 부회장의 경영철학으로 여겨지는 실용주의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소극적 경영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다.

이는 곧 현재의 삼성이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찾기보다 운신의 폭을 최소화시켜 어려운 부분은 깔끔하게 잘라내고, 될 부분에만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삼성중공업은 분명 '어려운 부분'이지만 방산과 화학과는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현안이 산적해있다. 결국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현상유지로 가닥이 잡힌다.

마지막으로 최근 빅딜을 통해 삼성맨에서 한화맨, 롯데맨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이 변해버린 이들을 둘러싼 반발도 상당한 수준이다. 한화와 롯데의 현재이자 미래권력인 김동관, 신동빈의 주도로 빅딜이 이뤄지며 이들의 조직 장악에 삼성이 일조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최소한 더 이상의 빅딜을 연속적으로 실시하기에는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 복잡한 문제
하지만 문제를 삼성중공업에서 확대시켜 더 크게 바라보면 묘한 지점이 여럿 포착된다. 먼저 현재의 삼성그룹을 둘러싼 구조조정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삼성은 구조조정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사실상 삼성이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으로 보고있다. 이는 올해의 문제만이 아니며, 당장 삼성전자의 경우 2013년 485명, 2014년 475명, 2015년 353명 등으로 임원 승진 인원을 축소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통상적인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으나 이미 대규모 인력 조정설이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취임설이 나오고 있다. 즉 빅딜과 사업재편 및 선택과 집중, 대규모 구조조정이 삼성의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과 더불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의 발판을 다지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늦어도 11월 사장단이 대거 바뀌는 인사폭풍이 오며 이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삼성은 부인하고 있으며 11월 인사설도 사실무근으로 일축하고 있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은 와병중이던 이병철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회장에 오른 것은 선대회장이 사망한 후였다. 전례를 봐도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은 시기상조라는 말이다.

다만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면, 여기에서 삼성중공업을 대하는 삼성그룹의 변화 가능성이 점쳐진다. 구조조정과 빅딜, 사업 재편 등을 통해 삼성의 수익성과 이 부회장의 조직장악 분위기가 실제적인 회장 취임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촉매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삼성중공업이 전격적으로 매각절차를 밟을 가능성은 낮아도, 이 부회장의 경영 분위기가 어떻게 조성되느냐에따라 상황은 일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대외적인 선택과 집중 경영에도 부합된다. 현재 삼성은 금융과 전자에 방점을 찍고 모바일 헬스 등에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중국과 일본의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들과 회동하고 중국인민재산보험공사(PICC), 도쿄해상화재보험 대표 등과 만찬을 주도했으며 지난 1월과 2월 삼성의 중국 및 일본법인을 연달아 방문했던 이재용 부회장은 곧장 삼성전자 DS 부문 임직원들과 미국으로 날아가 주요 고객사를 연이어 만났다. 3월에는 중국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 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CITIC(중신)그룹 창쩐밍 동사장(董事長)도 만났고 이후 베트남 응우옌 푸 쫑 베트남 당서기를 만나 삼성그룹의 베트남 추가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다.

만약 이러한 연장선상이 탄력을 받아 대내외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강요'받으면 삼성중공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시선도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 삼성은 B2B와 B2C를 아우르는 B2B2C 전략을 구사하며 활로를 찾는 상황이다. 여기에서 수익성 측면에서도,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악재가 발생하면 소극적 경영이 적극적 잘라내기 경영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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