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의 대규모 전환사채(CB)발행에 대해 그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과거 현대상선과 무리한 파생상품 계약을 맺어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번 CB 발행을 두고 현대그룹 지원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현대그룹 자구안의 일환인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증권 매각 무산의 중심에는 오릭스가 있다. 오릭스는 현대증권 인수 포기 이유로 자베즈가 현대증권과 맺은 ‘이면거래’과 자신들의 ‘파킹거래’ 의혹을 들었다. 이면거래와 파킹거래는 ‘대출’이라는 공통적인 측면에서 시장의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오릭스 측에 부담이 됐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현대그룹의 자구안 계획은 다시 암초를 만났다.

지난달 19일 현대증권 인수 주체로 떠올랐던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오릭스)가 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오릭스는 현대증권 인수계약 해제에 대해 국내 여론에 대한 부정적인식과 정치권에서 제기된 파킹거래 의혹에 대한 부담 등이 작용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현대그룹과 자베즈파트너스(자베즈)가 맺은 이면계약도 언급했다.

‘이면계약’은 지난 2012년 자베즈가 현대증권에 투자할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로부터 연 7.5%의 수익을 보장 내용을 말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사모투자펀드(PEF)가 수익을 완전히 보장받는 것은 대출업과 같아 금지돼 있다.

자베스 ‘이면계약’과 오릭스 ‘파킹거래’ 의혹의 공통점

사실 자베즈의 ‘이면계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는 최근 오릭스에 대한 파킹거래 의혹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베즈는 현재 현대증권의 2대주주로 현대증권과 자베즈의 인연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1년 11월 29일 현대증권은 자베즈와 태그얼롱(Tag-along) 및 드래그얼롱(Drag-along)을 동시에 맺었다.

태그얼롱이란 최대주주가 보유지분을 매각할 경우 2, 3대 주주가 최대주주와 동일한 조건으로 매각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권리를 말한다. 드래그얼롱은 최대주주가 보유지분을 매각할 때, 2, 3대 주주도 같은 조건으로 매각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한편, 지난 2012년 9월 민경윤 전 현대증권노조위원장은 현대증권 매각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현대증권은 이를 부인했으며 노사간 공방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이어 2013년 1월 민 위원장은 현대증권과 자베즈가 태그얼롱과 드래그얼롱을 동시에 맺은 시기를 가리키며 현대증권 매각이 이미 계획돼 있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일반적으로 두 주체가 태그얼롱과 드래그얼롱을 동시에 맺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이 두 조항이 공존할 경우의 성격을 자세히 보면 자금의 주체는 다르지만 사실상 최대주주와 2, 3대 주주는 그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기업매각 시 최대주주 및 2, 3대 주주들이 동시에 지분을 매도할 경우 차익뿐만 아니라 ‘암묵적 동맹’의 힘을 통해 추가적으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현대증권과 자베즈가 동시에 맺은 태그얼롱과 드래그얼롱의 목적은 ‘경영권 매각’이라는 점이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는 ‘이면계약’ 의혹이 제시되면서 현대그룹과 자베즈의 관계가 이전대비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주체가 태그얼롱 및 드래그얼롱으로 묶인 만큼 그 관계에 시선이 모아지는 상황에서 ‘이면계약’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오릭스의 파킹거래 논란도 수면위로 떠올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베즈의 이면계약과 오릭스의 파킹거래 의혹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이는 ‘대출’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유사하다.

사모펀드, 다른 ‘구조’ 같은 수익’ 추구

현대증권을 인수하는 주체는 오릭스PE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인 버팔로파이낸스다. 버팔로파이낸스는 오릭스사모펀드(PEF)가 3800억원,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가 500억원, 현대상선이 807억원을 각각 투자하고 1500억원은 인수금융(선순위대출)으로 조달하기로 돼 있었다. 오릭스PEF에는 한국투자증권과 하나대투증권 등이 1300억원, 현대상선이 1200억원, 오릭스PE가 1300억원을 투자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을 매각하면서 2000억원을 다시 투자하는 형태지만 이는 사모펀드를 투자에 끌어들이는 구조로 볼 때, 이상한 거래는 아니다.

유심히 관찰해야 하는 부분은 현대상선과 오릭스의 현대증권 매각약정이다. 현대증권 측이 공개한 매각약정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 3년이 경과한 날로부터 1년동안 매수인이 보유한 현대증권 주식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인수 이후 4년간 버팔로파이낸스가 매각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는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선매수청구권, 콜옵션 관련 인수 조건이 현대증권 주가가 1만9000원 미만일 경우 직전 분기 연결재무제표상 1주당 순자산가치에 0.89를 곱한 금액과 연복리 15%를 충족하는 1주당 금액 중 큰 금액이라는 것이다.

▲ 현대증권 주가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문제는 현대증권 주가가 1만9000원 이하일 경우다.

오릭스가 매수하는 현대증권 주식가격은 1만2200원으로 이를 3년간 연 15%의 복리로 계산할 경우 1만8550원대의 가격이 도출된다. 이는 매각약정에 표기된 ‘1만9000원’과 유사한 수준이며 쉽게 말해 현대증권의 주가가 1만9000원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현대상선은 연 15%에 달하는 ‘이자’를 오릭스에 지급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

따라서 이번 파킹딜 의혹은 단순히 현대상선이 현대증권을 매각하고 이를 되사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조건으로 둔갑한 ‘대출’ 구조라는 점이 동시에 지적되는 셈이다. 물론 이를 파킹딜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옵션 조항이기 때문에 현대그룹이 반드시 되사야 하는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현대증권 매각 불발 전 이면거래와 파킹거래 의혹은 오릭스 측에 분명 부담이었다는 것이다.

현대증권 매각무산, 시선은 현대엘리베이터 CB로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매각을 통해 6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는 계약을 진행 중이었다. 지난 2013년 12월 발표한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에서 20%를 차지하는 만큼 현대증권 매각은 현대그룹에에 중대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된 후, 지난달 28일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에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한 강도 높은 자구안 제출을 요구했다. 같은달 23일 산은은 만기가 돌아온 2000억원 상당의 현대상선 차입금 만기를 2개월 연장해주는 조건으로 이를 제시한 것이다. 그만큼 현대증권 매각 무산은 현대그룹의 자구안에 제동을 건 셈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5일 2050억원의 전환사채(CB) 발행 계획을 공시했다. 그 규모는 공교롭게도 산은이 현대증권 측에 연장해 준 차입금 규모와 유사했으며 자금조달목적은 운영자금으로 명시돼 있어 그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증권업계는 현대엘리베이터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6일 보고서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하향조정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현대엘리베이터가 본업인 국내 및 해외 엘리베이터 업황은 양호하나 CB 발행의 구체적인 용처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며 올초 단행한 2774억원의 유상증자로 재무구조가 안정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CB 발행은 시장이 갖고 있는 의구심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현대엘리베이터 주가 추이 [출처:한국거래소]

이러한 의구심은 현대엘리베이터의 CB 발행 규모변화에서 더욱 증폭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500억원의 CB 발행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해 유상증자 과정에서 갈등을 겪은 현대엘리베이터 2대주주인 쉰들러 홀딩스 아게를 의식한 조치라는 평도 있었지만 이미 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지분이 30%를 넘는 상황에서 500억원 규모의 CB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어려웠다.

현대엘리베이터의 CB 발행설이 제시된 시기는 현대증권 매각 무산 시기부터였으며 산은의 자구안 제출요구가 알려지기 전까지 지속됐다. 이후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상선 보유지분(현대증권, 현대아산) 인수 및 현대상선 지분매각설도 불거지면서 CB 발행규모도 1500억원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550억원이 추가 증액되면서 총 2050억원의 CB 발행이 결정됐다.

만약 이 자금이 현대그룹의 자구안 마련 목적으로 이용될 경우 계열사 부당지원 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실적추이를 보면 지난 2012~2013년 영업이익은 각각 493억원, 986억원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당기순이익은 -2710억원, -3427억원으로 큰 폭의 적자로 나타났다. 당시 지분법손익은 각각 -2360억원, -1664억원을 기록해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그 중심에는 현대상선이 있었다.

현대증권 매각 불발로 현대그룹 자구안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이번 현대엘리베이터의 자금흐름에 시장의 시선은 더욱 모아지고 있다.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됐던 항해 도중 '현대증권 매각 불발'이라는 암초를 만난 현대그룹.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