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주식 오토카 코리아 편집장.

지난 1990년대 초, 첫 차를 샀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볼륨을 높이고 큰소리로 따라 불러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었다. 일종의 해방감, 자유였다. 자동차가 처음 ‘이동의 자유’를 준 것처럼 차 안에서는 ‘정서적인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음악을 듣던 시절이었다.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는 한동안 CD플레이어(CDP)와 동거하다가 이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 전 기아자동차 신형 스포티지를 시승했는데 CDP가 없어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옵션으로 내비게이션을 선택하면 CDP가 제외되는 구성이었다. 이제는 CDP쯤은 없어도 괜찮다는 세상인 것인가? CDP가 없어도 USB 포트나 블루투스 등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치는 많다. 그런데 음악의 질은 어떨까?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사라진 또 다른 하나는 재떨이일 것이다. 아직도 일부 고급차의 뒷좌석이나 원통 모양의 이동식 재떨이를 제공하는 메이커도 있지만, 거의 기본적이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오디오 데크도 단순했다. 좀 더 나은 음향을 위해서 사제(私製) 오디오 데크로 교체하는 경우도 많았다. 카오디오 시장이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기반을 둔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 바람이 불며 차 안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설정과 주행정보를 보여주는 모니터는 점점 커졌다. 내비게이션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지도를 보여줄 대화면을 필요로 했다. 모니터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진화하며 브랜드를 상징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조그 다이얼로 차내 각종 장치를 통합 컨트롤하는 BMW i-드라이브는 업계의 벤치마커가 되었다. 더불어 자동차 회사들은 유명 오디오 회사들과 협업하며 카오디오를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보스, 뱅앤올룹슨, 하만카돈, 바우어스앤윌킨스, 메르디안, 크렐 등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우리 생활의 변화는 이제 자동차에도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블루투스 통화 기능과 스마트폰 연결을 위한 USB 포트는 차를 선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얼마 전 GM의 신형 쉐보레 스파크를 탔을 때 새로운 UI, 즉 ‘카플레이(Car Play)’는 필자처럼 아이폰을 사용하는 이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이폰의 주요 앱을 모니터에 구현해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와 이메일, 음악, 유튜브 등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 때문에라도 스파크를 구입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UI가 차의 구매에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커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애플의 카플레이에 대응하는 것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Android Auto)’이다. 향후 이 둘의 연동 가능성 또한 이슈다. 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오는 2016년 일부 모델부터 이 둘을 동시에 탑재한다는 방침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는 이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을 중심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는 차내 환경을 블루투스와 NFC, 와이파이 핫스팟 등의 형태로 인터넷을 연결해 실시간 교통정보나 SNS,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생활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 BMW 7시리즈의 터치스크린 작동 모습. 사진=BMW 7시리즈 동영상 캡처

차와 사람을 이어주는 HMI(Human Machine Interface)는 조그 다이얼이나 터치스크린 방식에서 음성명령, 터치 패드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동작 인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BMW 신형 7시리즈에서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빙글 돌리면 오디오 볼륨이 높아지고 반대로 돌리면 낮아졌다. 그밖에 몇 가지 동작이 더 있다.

어쨌든 편리해지는 세상이지만 공짜는 없다. 자동차 회사들은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연구하는데 이어 앞서 나간다. 앞으로는 이런 것이 필요할 것이라며 당장은 필요도 없을 것 같은 장치를 선보인다. 사용해 보면 편리하긴 하다. 소비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여기에는 비용의 추가가 따른다.

단순했던 시대가 더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운전에 집중하기 위한 UI 구성이다. 운전석 앞 윈도에 주행속도와 길 안내 방향표시 등이 나타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운전자의 시야를 도로에 집중시키기 위한 장치다. 신형 아우디 TT의 경우 센터 페시아에 아예 모니터가 없다. 모든 기능은 운전석 계기판에 집중된다. 계기판 가운데 내비게이션 지도는 버튼을 눌러 크게 확장시킬 수 있다. 이때 속도계와 타코미터는 작아진다.

차 내 인터페이스가 복잡해지는 과정은 결국 안전한 주행이라는 단순한 목적을 위한 것이다. 안전하게 주행하면서 여러 가지 편리를 누리자는 것이다(꼭 그렇게 편리를 누려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또 한편으로 자동차업계는 사용자가 직접 운전하지 않는 자율주행차에 개발 역량을 모으고 있다. 어쩌면 모순이다.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모순을 통해 발전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