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는 내복 한 벌’ 이라는 말이 있다. 청명한 가을에 비가 한번 내리고 나면 찬 성질을 가진 대륙성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기온이 떨어져 이런 말이 생겼다고 한다. 올해는 여름 더위가 유난히 오래 갔던 터라 이제야 불기 시작한 싸늘한 바람에 내복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내복을 입기 시작했을까? 내복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때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역사에는 내복의 기원을 추리해볼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고 한다. 우선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옷소매 밖으로 드러난 옷이 내복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에 ‘내의’나 ‘내상’이라는 의복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내복으로 추정되는 속옷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내복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방한내복이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를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정도로 보고 있다.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선물로 사다드렸다던 ‘빨간 내복’이 그 당시 내복을 대표하는 제품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부터 원단과 소재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특히 달라진 점은 내복의 신축성이다. 이전의 내복은 신축성이 없어서 일반 옷과 같은 느낌이었고 구부러지는 관절 부분은 한 번만 착용해도 툭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신축성 있는 소재가 내복에 사용되면서 한층 착용감이 좋아졌다. 들뜨지 않고 몸에 꼭 맞게 밀착돼 겉옷 안에 입기도 편했고, 움직임에 따라 원단이 조금씩 늘어나 활동성도 좋아졌다.

1980년에는 보온성을 높인 보온메리, 에어메리 등의 내복이 인기를 누린 시기였다. 주로 면과 신축성이 좋은 스판덱스를 혼용한 소재와 더운 공기를 담아두기 위해 여러 겹으로 누빈 두꺼운 원단이 사용됐다. 당시에는 따뜻한 내복이 부모님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생각에서 ‘효도의 상징’으로 통했고 첫 봉급을 타면 부모님께 드리는 첫 선물로는 단연 내복이 손꼽혔다. 또한 내복의 두께는 그 가정의 ‘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내복에도 패션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우선 단색 일색이던 내복은 디자인적으로 매우 화려해졌다. 밋밋한 단색에서 벗어나 꽃무늬 등의 다양한 프린트 내복이 선보였고, 레이스나 반짝이는 큐빅 등도 사용됐다. 겨울에도 미니스커트를 입는 여성들이 생겨나고 실내에서는 반소매의 니트를 입는 등 패션의 종류가 다양해져, 그에 맞게 내복도 3부나 7부 등의 여러 가지 디자인이 생겨났다.

2000년대는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 열풍을 타고 천연소재를 가공한 기능성 원단이 다양하게 등장한 시기다. 합성섬유가 아닌 100% 천연소재인 실크나 오가닉 면, 항균방취 기능이 있는 숯이나 피부에 좋은 성분이 있는 해조류 가공 원단 등 여러 가지 천연소재가 사용됐다. 디자인적인 변화도 있었는데, 늘어나지 않도록 만든 손목과 발목 조임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옷을 입었을 때 이 부분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최근에는 기능성 원단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게 개발되면서 내복은 두꺼워야 따뜻하다는 인식도 변했다. 보온성을 한층 높인 발열기능의 원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기능성 소재들은 신체에서 발산되는 열과 수분을 이용해 열을 내는 성질이 있어 두께가 얇으면서도 따뜻한 내복을 만들 수 있었다. 발열소재를 사용해 얇아진 내복은 몸에 꼭 맞게 밀착돼 활동성도 좋고 옷맵시도 망치지 않아, 젊은 층이 내복을 다시 찾게 하는 데도 일조했다.

더 나아가 이제 내복은 겉옷과의 경계마저 허물고 있다. 불편한 느낌을 주지 않을 만큼 두께가 얇고 따뜻한 것은 기본이고, 이제는 재킷이나 카디건 안에 받쳐 입을 수 있는 옷처럼 보이는 세련된 디자인의 내복도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온도나 습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등의 기능을 갖춘 일명 ‘스마트 의류’까지 선보이고 있는 요즘, 머지않아 첨단 기능을 갖춘 ‘스마트 내복’의 등장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