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명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해 지금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정의할까? 방대한 이야기의 굵직한 줄기만 따라가면 다음과 같다. 고대 중동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피어오른 인류문명의 불빛이 이집트로 번져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가 해양국가 카르타고를 완전히 복속시키며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로 부르는 로마제국의 시작이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395년 동서로 분열되고 말았으며 476년 기어이 서로마제국이 무너졌다. 이후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서유럽은 소위 야만족이 들어와 험난한 중세시대를 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샤를마뉴 대제시대를 기점으로 서프랑크 왕국, 현재의 프랑스가 버티고 있다.

프랑스는 절대왕정시기를 거치며 대륙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시절에는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륙을 집어 삼키며 정치, 군사, 문화의 중심지로 활약했다. 비록 그 패권은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같은 신흥세력과 뒤이은 영국의 도전에 직면하며 상당부분 소실되었고 최종적으로 세계의 팽창과 더불어 현재 미국이라는 세계질서를 체화하고 있으나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그리고 현실에서도 막강한 파워를 가진 유럽의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 대관식하는 샤를마뉴 대제. 출처=위키디피아

프랑스와 네이버의 만남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과 플레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통신부 장관, 그리고 네이버의 김상헌 대표가 한국에서 만났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이해 한국과 프랑스의 IT 산업 현황과 문화교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프랑스 문화를 더 널리 알리고 문화유산 보존 및 스타트업 육성이라는 세 가지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어떤 내용이 오갔을까. 일단 네이버는 내년 예정된 ‘프랑스의 해’ 행사를 포함해 프랑스의 문화, 라이프 스타일, 경제, 교육, 언어, 관광 등의 다양한 정보를 동영상 서비스 ‘네이버TV캐스트’를 통해 제공하고 ‘네이버뮤직’, ‘N스토어’ 등의 여러 플랫폼들을 통해서도 프랑스 뮤지션과 아티스트, 영화, TV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이는 자신들의 문화를 더욱 알리고자 노력하는 프랑스의 노력과 네이버의 플랫폼 기능이 적절하게 맞아 들어간 대목이다.

이 지점에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확산을 위해 경험과 전문지식을 공유하는 한편, 네이버는 문화유산의 디지털화 작업 노하우를 전달하고 국가 및 세계 문화재를 디지털화해 보존하는 공공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는데 의견을 모았다는 후문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스타트업 협력이다. 이에 네이버는 프랑스 스타트업 및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네이버가 운영하는 D2 스타트업 팩토리의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프랑스 내 스타트업 관련 행사 주최 및 멘토링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협력키로 했다.

▲ 출처=네이버

 이유가 뭘까?

한국을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과 플레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통신부 장관이 네이버와 ‘문화’를 키워드로 협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지금도 유럽문명의 중심으로 활동하며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국의 문화를 최고로 여기는 프랑스가 콘텐츠인 문화를 적절하게 생태계로 만들어줄 생태계 플랫폼으로 네이버를 택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먼저 현실적인 고려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은 구글과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ICT 경쟁력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의 정보공조는 어느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지만 국가와 타국의 기업이 ICT로 밀접한 정보교류에 나서는 것은 격한 반응을 보인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구글의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쟁이 튀어나왔고, 유럽연합의 구글 및 페이스북 제재안이 전격적으로 통과되기도 했다. 지금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구글 및 애플, 페이스북에 대한 유럽연합의 세금탈루 주장도 비슷한 연장선상이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는 검색엔진 분야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려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독일과 협력해 `나는 찾는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콰에로(Quaero)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구글, 야후 등 미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검색엔진 시장에 프랑스와 독일이 대항해야 한다"고 말해 유럽의 자체 검색엔진 개발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시대와 대상만 바꾸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상대로 서구사회가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영국의 처칠 수상 발언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야심찬 계획은 실패했다. 미디어 서비스 및 장비 회사인 톰슨과 프랑스의 국가 과학연구센터(NSRC)가 팀을 이루고 미디어 그룹인 베텔스만을 내세운 독일의 팀이 의욕적으로 힘을 합쳤으나 사실상 지금은 용도폐기된 상태다. 구글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뜻이며, ICT 인프라가 지엽적으로 뭉쳐있는 유럽의 한계라는 분석도 나온다.

▲ 라인. 출처=네이버

 왜 네이버인가?

악셀 스프링거가 구글과의 전면전에 나섰다가 백기투항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은 플랫폼 전성시대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의 고민이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대세인 플랫폼에 몸을 맡겨 적절한 운용의 묘를 찾거나, 혹은 전혀 다른 가능성의 끈을 잡아 전격전을 벌이는 방법뿐이다. 후자의 경우 자체적인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도 포함되지만 이는 이미 실패를 맛보았다. 그리고 전자는 아무래도 불안하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단 하나다. 후자에서 새로운 플랫폼 상대를 찾는 것이다. 막강한 잠재력을 가진 제3자와의 적절한 융합.

여기에서 프랑스는 네이버를 택했다. 미국의 구글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유럽연합이 너무나 잘 보여줬고, 그렇다고 내수시장만 보고 중국의 바이두나 텐센트와 손을 잡기에는 늑대를 쫒으려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패착이다. 바로 여기에서 프랑스는, 아니 유럽의 자존심은 네이버를 주목했다는 분석이 타당하다.

마침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은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상당하게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IPO 일정이 미뤄지기는 했지만 라인은 일본을 비롯해 태국 등 새로운 시장인 동남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브이’와 같이 한류스타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MCN 여지도 있다. 포털 사업자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플랫폼적 기술에도 조예가 깊다.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다루고 있으며 최근에는 프로젝트 블루로 통칭되는 하드웨어 경쟁력까지 아우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프랑스는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한 결과 아시아 시장, 지엽적으로 보면 중화권 시장 진입을 목표로만 전제한 상황에서 동남아시아 일대에 자신들의 문화를 유통시킬 플랫폼 사업자로 네이버를 택했다는 평가다. 필연적이지만 스타트업 협력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도출된 결과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전성시대를 바탕으로 탄생한 지금의 스타트업 열풍은 네이버와 같은 ICT 사업자에게 가장 어울린다.

이제 남은 것은 네이버의 행보다. 프랑스가 막강한 자신들의 콘텐츠를 국가적 차원에서 유통할 플랫폼으로 네이버를 택했다면, 이제 네이버는 이를 활용해 자신들의 역량으로 적절하게 수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