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의 컨설팅 계약을 따내는 PT 발표 자리.

“우리 회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PT에 참여한 5개 컨설팅 회사 중 모르겠다고 대답한 건 가온이 유일했다. 기업의 임원들은 만장일치로 가온에게 컨설팅 업무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쌀쌀한 바람 사이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날, 컨설팅 회사 가온파트너스의 김기홍 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 사진=박재성기자

기업이 원하는 건 기법이 아니다

“즉답이 아니라 정답이 필요한 거예요.” 김기홍 대표는 기업이 원하는 것에 대한 컨설팅 회사들의 이해가 부족하다며 운을 뗐다. PT 발표에서 가온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컨설팅 회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제시했다. 그런데 가온은 기업 진단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답을 할 수 없었다고. “어느 기업의 임원 자리에 있다는 건 컨설팅 회사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자기 회사이기에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해결책을 찾지 못해 컨설팅 회사를 찾았단 말이죠. 단 한 번의 PT로 답이 나올 그런 문제였다면 그 기업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들도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이기에 더 세세하게 문제를 들여다보고 신중하게 답을 찾아야 해요. 기업들도 그런 걸 원합니다.”

김기홍 대표는 한국의 컨설팅 회사가 너무 기법에만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충분히 컨설팅 시장이 커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는데 더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남의 걸 배워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외국의 거대 컨설팅 회사의 기법을 공부하거나 일본의 토요타와 같은 회사가 어떤 식으로 성공 신화를 이루어냈는지 사례를 공부한다. 그런데 그 기법과 사례들을 한국의 기업에 맞게 적용을 하지 못한다고 김 대표는 지적했다. “컨설팅 회사가 의뢰 기업의 고민이 뭔지는 듣지도 않고 일률적인 ‘기법’만 제시해요. 어떤 기업이든 같은 답을 내놓는 거죠. 이게 과연 실행력이 있을까요?”

▲ 사진=박재성기자

소통은 ‘말’이 아니라 ‘실행’

기업들은 천편일률적인 컨설팅 회사들의 기법 제시에 이제 컨설팅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각 기업에 맞는 ‘실행 가능한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과 컨설팅 상담을 해보면 ‘우리 회사에서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기업이 원하는 건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실행 방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온이 제시하는 것이 ‘오퍼레이션 컨설팅’이다. 오퍼레이션 컨설팅은 ‘사람’이 중심이다. 결국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 가온의 컨설턴트들은 현장으로 나가 사람을 살피고 문제점을 찾아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이다. 현장의 직원들과 경영진 사이에서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흔히 소통 하면 ‘말’을 떠올리는데 소통은 ‘실행’이에요. 결국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했는지가 소통이 됐느냐 안 됐느냐를 판단하게 하는데 이해를 했다면 행동이 바뀌는 게 맞죠. 말을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거예요.” 기업이 원하는 실행 가능한 해결 방법은 바로 이런 소통 방식에서 나온다.

“기법을 달라고 하는 기업은 정말 한 군데도 없어요. 우리 직원들이 현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달라고 하죠.” 결국 사람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가온만의 강점인 셈이다.

▲ 사진=박재성기자

100개의 기업, 100개의 혁신

“한국만의 것이 필요해요.” 김 대표는 중국 출장에서 있었던 일화를 설명했다. 중국 진출을 고려해 중국의 컨설팅 회사와 협업을 하려고 사업 제안을 하던 중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중국 파트너의 말은 마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배우고 싶은 것은 일본이 아닙니다. 한국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김 대표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식 컨설팅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일본이나 미국에서 건너온 컨설팅 기법들이었다. 한국 기업에 맞게 실행한 ‘한국식 경영방식’이 뭔지 도대체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김 대표의 경영 철학이 탄생한 순간이다. “100개의 기업이 있으면 100개의 혁신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예요. 처음 기법을 외국에서 배워 오더라도 각 기업의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형해야 하는 거죠. 그 과정이 정리되고 체계가 잡히면 그게 바로 한국식 컨설팅이 되는 거예요. 그걸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죠.”

‘가치’를 만들 줄 아는 회사

국내 컨설팅 업계도 사실 이미 거의 포화상태나 다름없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밀려 국내 회사는 힘도 못 쓰는 상황이다. 거기에 경기까지 어려워지자 컨설팅 업계는 싸늘한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기업들이 아직까지는 컨설팅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온은 직원이 부족해 일손이 딸린다. 밀려드는 업체의 요청을 받을 수가 없어 김 대표도 답답하다. “저도 하고 싶죠.”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욕심나는 일이라도 무리할 수 없어요. 컨설팅은 신뢰에서 시작해 신뢰로 끝납니다.”

컨설팅 업체들은 경기불황에 몸을 사리느라 직원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다. 정직원은 줄이고 프리랜서 컨설턴트와 계약을 맺는 식이다. 이러면 고정비용이 들지 않아 컨설팅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고객사 입장에서는 컨설팅 결과에 대한 검증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거래는 컨설팅 업체와 한 것이지만 일을 진행하는 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구조가 돼 버린다. “매출만 생각한다면 가온도 프리랜서를 고용해서라도 수주를 해야겠지만 한 기업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가온의 교육을 직접 이수한 직원들이 아니라면 프로젝트 진행은 하지 않고 있어요. 컨설팅이라는 건 고객사를 ‘남의 기업’이라고 생각하면 책임감이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가온은 직원들에게 자신이 맡은 고객사를 ‘우리 OO회사’라고 부르게 한다.

“처음 가온을 세울 때 목표가 ‘직원 300명이 일하는 기업’이었어요. 돈만 생각했다면 매출 얼마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겠죠. 중요한 건 ‘가치’를 만드는 회사로 커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가온을 설립한 지 어느덧 꽉 찬 4년. 가온은 올해까지 꾸준하게 매출을 올리며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쌀쌀한 컨설팅 시장에서 김 대표와 직원 25명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가온 고유의 따스한 온기를 품고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