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약 7% 성장한 12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이는 세계 10위로 5년 새 20% 넘게 성장한 수치다. 또 올해 상반기 화장품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80% 가까이 늘어난 13억9233만달러다. 내수 불황에도 이처럼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바로 해외 시장 매출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세계 1위의 13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 수출 비중이 39%로 급성장했다. 증가 추세인 외국인 관광객의 최고 인기상품이 화장품인 점을 감안하면 뷰티산업의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다.

국내 뷰티업계 1위 아모레퍼시픽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아세안, 미국, 유럽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한국의 뷰티를 전파하고 있는 선두기업으로 꼽힌다.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성장 전망이 밝지만 이미 오랜 기간 글로벌 기업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만큼 과제도 남아있다.

미국 패션뷰티 전문 언론사인 <WWD>에 따르면 2013년 매출 기준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에 이름을 올린 한국 회사는 아모레퍼시픽(17위), LG생활건강(26위), 에이블씨엔씨(56위)까지 불과 3개다. 100대 기업 가운데 이들 3개 기업은 2.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반면 이른바 화장품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100대 기업 중 31개가, 일본은 1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고 프랑스(15개), 독일(7개), 영국(6개) 등 유럽은 30여개에 달했다. 특히 최근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주요 타깃으로 보고 있는 중국의 경우도 4개사가 100대 기업에 랭크돼, 순위 면에서는 낮지만 우리나라보다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한국 화장품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수출만이 살 길이지만, 세계 시장의 벽은 아직 높다는 평가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만 겨냥해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 유럽 등의 시장으로 적극 진출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화장품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화장품 기업에 비해 명성과 매출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게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산 화장품의 명성은 아직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미국, 유럽의 경우 이미 오랜 기간 글로벌 기업이 뿌리를 내린 만큼 공략이 쉽지 않다”면서 “한국은 아직 연구·개발(R&D)과 마케팅 능력, 브랜드 파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유통망도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크리스찬 디올이 아모레퍼시픽과 쿠션파운데이션 생산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처럼 우리만의 독특한 제품을 늘려야 한다”면서 “아모레퍼시픽 등 업계 선두 기업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좋은 제품과 기술력으로 글로벌 기업과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도 국내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글로벌이 주목할 만한 ‘쿠션’ 기술로 여성들의 화장법을 변화시키고, 중국 시장에서는 한국산 화장품 인기를 주도하고 있다. 아직은 아시아에 국한되어 있지만 적극적인 미국과 유럽 진출로 흑자전환에도 성공, 글로벌 기업과의 힘겨루기에 나선 모습이다.

세계적인 그룹과의 기술 제휴로 ‘한 걸음 더’

 

아모레퍼시픽은 1959년 프랑스 코티사(社)와 기술제휴를 시작, 1990년 현지법인을 세우고 7년 뒤에는 ‘롤리타 렘피카’를 선보였다. 당시 프랑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는 입장이었던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6월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과 쿠션기술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 기술을 전수하는 입장이 됐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올해 1월 크리스찬 디올 측에서 ‘아모레퍼시픽이 갖고 있는 쿠션 화장품 관련 기술제휴를 할 수 있느냐’는 제의를 먼저 해왔다. 쿠션 화장품은 마치 주차 스탬프를 찍듯 쿠션 형태의 부드러운 파운데이션을 피부에 톡톡 찍어서 바르는 형태로, 아모레퍼시픽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국내외 시장에서 빅히트를 친 제품이다.

특히 이번 크리스찬 디올의 행보는 로레알 계열의 랑콤과는 다른 행보라 더욱 주목된다. 크리스찬 디올이 원조 기술력을 인정하면서 먼저 손을 내민 반면, 랑콤은 지난해 말 비슷한 형태의 쿠션 화장품을 아모레퍼시픽의 주력 OEM 업체인 코스맥스에 의뢰해 ‘블랑 엑스퍼트 쿠션 컴팩트’를 시장에 선보였다. 세계적인 글로벌 그룹인 로레알이 ‘베끼기’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쿠션 화장품을 출시한 만큼, 타 글로벌 기업에서도 출시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업계에 만연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해외에 뺏길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와 강력한 대응이 요구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나라 화장품 기술 제휴를 먼저 요청하고 따라한다는 점에서는 그만큼 한국 뷰티의 위상과 기술력이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이 2008년 처음 선보인 쿠션 제품은 ‘화장품을 주차도장 찍듯 간편하게 사용할 순 없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선크림과 파운데이션 등을 발포 우레탄 스펀지에 안정적으로 가두는 것이 핵심기술이다. 제품 상용화 전, 쿠션 아이디어는 참신했지만 이를 제품화하고 판매로 연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게 아모레퍼시픽 관계자의 이야기다. 아모레퍼시픽 연구원들은 가장 적합한 스펀지를 찾아 청계천 세운상가 등을 뒤져 제품을 선보였지만, 생소한 제품인 탓에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전통적인 판매채널에서 외면받던 쿠션 제품은 홈쇼핑에서 대박을 낸 뒤에야 입소문을 타며 불티나게 팔렸다. 지난해 아모레 쿠션 제품 판매량은 2600만개로 1.2초당 하나꼴로 팔렸다고 한다.

국내외 경쟁사들도 쿠션과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지만 아모레퍼시픽의 기술력과 품질을 따라잡기에는 ‘원조보다는 아직’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쿠션 제품은 원료를 섞을 때 정해진 온도와 속도를 정확히 지켜야 하고, 스펀지에 내용물을 넣을 때도 양과 누르는 세기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면서 “아모레는 생산라인마다 샘플을 수거해 제품의 사용감과 색상, 포장상태를 점검하는데, 미세한 오류라도 발견되면 곧바로 전수검사를 실시하는 등 깐깐하게 품질을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과 겨뤄 ‘중국 시장 안착’

아모레퍼시픽은 로레알, 시세이도, P&G 등 업계 선두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보다 늦게 1992년 중국지사를 설립하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여러 차례에 걸친 시장조사와 중국 여건을 검토한 뒤 1993년 선양태평양보암화장품유한공사를 설립, 뒤이어 1994년 12월에 선양공장을 준공했다. 외국계 글로벌 기업이 중요 거점으로 생각하지 않은 곳에 첫 둥지를 튼 아모레퍼시픽은 이후 2002년 상하이 공장 준공으로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들이 진출한 중심에 합류, 그해 9월부터 ‘라네즈’로 중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현재 상하이의 1급 백화점 등 주요 350여개 백화점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며, 특히 매장 리뉴얼 및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통해 브랜드 콘셉트를 강화하고, ‘워터 슬리핑 마스크’, ‘BB쿠션’ 등 히트상품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글로벌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특히 ‘설화수’와 ‘이니스프리’는 신규 매장 출점과 신규고객 유입 증가로 매출 고성장을 이끌었으며, ‘라네즈’는 히트상품 판매 확대와 백화점, 디지털 채널에서의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개선하며 질적 성장을 달성했다. ‘마몽드’는 유통 채널 재정비 및 매장 리뉴얼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는 성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코트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백화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화장품 5위가 아모레 제품이다. 아모레는 미국의 P&G(6위), 프랑스의 샤넬(7위)을 제쳤다. 1위는 프랑스의 로레알, 2위는 미국의 에스티 로더, 3위는 일본의 시세이도였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에서 하나의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알리기까지는 철저한 브랜드 전략과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아모레가 이 부분을 잘해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이라며 “규모와 진출 시기 등을 고려했을 때 아모레의 성장세는 빠른 편이라 다른 글로벌 기업도 주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에 ‘뷰티사업장’을 신축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생산 효율성과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시스템을 자랑하는 중국 내 업계 최고 수준의 시설과 환경 친화성을 갖춘 생산, 연구, 물류의 통합 허브를 구축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이는 ‘중국 사업 성장 가속화’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 중점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국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만큼 이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투자와 개발로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프랑스 선점으로 로레알 넘는 기업 될까

제품 타입과 지역별 구성에서 가장 균형 잡힌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는 최대 화장품 기업으로 로레알그룹을 꼽을 수 있다. 로레알은 랑콤, 조지오 아르마니, 비오템, 비쉬 등 약 500개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로레알은 여전히 견고한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이다. 특히 럭셔리 사업부는 전년도에 이어 2015년에도 성장하면서 전체 외형 증가를 꾀하고 인기 로컬 브랜드 인수를 통해서 신흥시장 성장을 이끌어왔다. 지난해 진행된 중국의 마스크팩 브랜드인 매직 홀딩스와 브라질의 거대 헤어 제품 회사인 닐리 코스메티코의 매입은 2015년부터 실적 증가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로레알그룹의 M&A전략은 업체 규모와 상관없이 차별화된 제품과 개성이 있는 지역 화장품 회사를 인수한 뒤, 그 브랜드를 현지 시장에 적합하도록 제품과 이미지를 개선한 다음 다시 전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M&A전략은 로레알그룹의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이것을 바탕으로 추진하는 카멜레온 전략을 적용할 수 있게 해줬다. 또 로레알이 세계 화장품시장 1위라는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하는 데는 화학자에 의해 설립된 기업답게 제품과 기술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매우 활발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로레알의 매출이나 여러 면을 따라잡기에 아직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의 성장세가 이미 로레알을 앞서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2014년 매출은 4조7119억원으로 전년도보다 21% 성장했다. 로레알의 2013년 매출은 28조원대(229억유로)이고, 2014년 3분기 누계 매출은 20조원대(165억유로)다. 특히 2012년 매출은 27조원대(224억유로)로 연간 성장률은 2.2%대에 불과하고, 2014년 3분기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450억원(6억유로)가량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의 성장 동력이 해외라는 점에서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은 해볼 만한 것”이라며 “하지만 작년 아모레의 해외 매출은 8325억원으로 매출 절반 이상인 4673억원이 중국 시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는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아 1위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현재 20% 전후인 해외매출 비중을 오는 2020년까지 50%로 높일 계획이다. 해외매출 비중을 올리는 관건은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구 1000만명 규모의 30개 ‘메가시티’를 중점 공략할 예정으로, 방콕과 자카르타 등 동남아뿐 아니라 2016년에는 두바이를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에, 2017년에는 브라질과 멕시코·콜롬비아 등 중남미 지역에 진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세계적 화장품 회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아시아 지역 이외 미국과 유럽에서의 입지 확보와 브랜드파워 육성이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90년대 초부터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추구하며 중국과 프랑스에 공장을 설립, 현지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인 글로벌 중흥기를 맞아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미국, 프랑스를 3대 축으로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프랑스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설화수’가 2010년 첫 진출 이후 연 평균 4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라네즈’는 지난해 대형 유통업체 타깃 매장 750여개에 입점했다. 2010년 121억원이던 미국 매출은 지난해 349억원으로 뛰었다. 프랑스에선 현지 생산체계를 갖춘 ‘롤리타 렘피카’와 ‘아닉구딸’ 등 2개의 향수 브랜드에 주력하고 있다.

뷰티 업계 전문가는 “미국이나 유럽 지역에서는 이제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는 시초 단계”라면서 “중국 진출은 빨랐지만 약 10여년 만에 선두 자리에 오르면서 글로벌 기업과 겨루는 위치에 오른 만큼, 미국과 유럽에서도 조금은 느리지만 점점 시장 선점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글로벌 기업 도약을 목표로 삼은 만큼 미주, 유럽 시장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