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 카카오 대표가 지난 27일 오후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있는 스페이스닷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브런치를 비롯해 자사의 다양한 모바일 플랫폼을 바탕으로 대중과 만나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오프라인 현장에서 자신의 소신을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임지훈 대표는 카카오의 비전과 미래, 그리고 성장을 천명하며 눈길을 끌었으나 묘한 불안의 그림자를 노출시켜 눈길을 끌었다.

▲ 임지훈 대표. 출처=카카오

왜 제주인가?
임지훈 대표의 데뷔전이 치뤄진 장소가 제주도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제주도는 카카오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다음카카오 합병 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한국의 베델스만을 꿈꾸며 제주도를 본사로 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카오와의 합병을 기점으로 제주사옥의 위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핵심인력이 대거 판교사옥으로 몰리며 제주사옥에는 400명의 직원만 남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남동 사옥이 문을 닫고 해당 인력이 대거 판교사옥으로 몰리며, 사실상 판교사옥이 실질적인 본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다음을 뺀 카카오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임 대표는 자신의 첫 기자회견장을 제주도로 정했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답은 간단하다. 표면적인 이유야 새로 지은 '스페이스닷투' 첫 공개를 겸한다고는 하지만, 카카오가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제주도 권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당장 정부가 주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참여한 카카오가 제주도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테크노파크 벤처마루에서 열린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 자리에 '어색한 표정'의 김범수 의장이 등장한 대목에 주목해보자.

여기에 카카오가 최근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으며, 김범수 의장의 도박설로 홍역을 치르는 상황이라는 점도 연결하고, 포털 뉴스 편향성 시비까지 휘말리고 있다는 것도 포함시키자. 이석우 전 공동대표의 다소 치욕스러운 검찰수사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카카오 감청영장 조건부 수용도 동일선상에서 고려해보자. 답은 하나다. 카카오가 지나치게 '관'을 의식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논리는 결국 임지훈 대표가 제주도를 택한 이유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단서를 달아준다. 사실이라면 성장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카카오 입장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분명히 있다. 제주도가 미래 카카오의 비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가능성도 있고, 그냥 제주도가 좋아서 기자회견장을 골랐을 가능성도 있다. 한라봉 때문일 수도 있다.

▲ 제주사옥. 출처=카카오

위기대처능력은? '불안하다'
물론 카카오가 신임 대표의 기자회견을 제주도에서 열었다고 비판받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은 임지훈 대표의 행보가 위기관리면에서 적절하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는 점은 분명 불안요소다. 조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성과도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지점에서 임지훈 대표는 썩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먼저 뜨거운 논란인 카카오톡 감청협조에 대한 임지훈 대표의 반응이다. 현장에서 의외로 능숙하게 예리한 질문을 피해갔다는 평가다.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며 실정법을 어기는 것이 반드시 옳은 행동은 아니며, 제한적인 경우 적법한 절차를 밟아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법이 존재하고 당국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카카오가 초법적인 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이 지점에 대해 비판하고 싶다면 당국에 그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 아쉬운 지점이지만 일리가 있는 모범답안이다.

포털 뉴스 공정성을 둘러싼 논쟁에 있어서도 노련하게 넘어갔다는 후문이다.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약간의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힌 지점은 백전노장을 방불케 했다. 정치권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대목도 준수했다는 평가다.

▲ 임지훈 대표. 출처=카카오

다만 김범수 의장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현재 김범수 의장은 2007년 미국의 고급 호텔 카지노에서 상습 도박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무수한 루머가 난무하는 상황이었다.

이 지점에서 임지훈 대표는 "회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 아니다"는 말로 핵심을 비껴갔다.

자연스럽게 정확히 1년전, 지난해 10월 다음카카오 합병 기자회견이 떠오른다.

당시 이석우 최세훈 공동대표는 카카오톡 감청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할 무렵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자리에서 사실상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이 자리에서 논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당시 업계에서는 다음카카오가 카카오톡 감청논란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있다. 카카오는 서비스가 망가지지 않더라도, 유저들이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온 몸으로 느껴야 했다.

현재의 임지훈 대표는 80년생 젊은 CEO라는 특징과 더불어, 사실상 김범수 의장이 발탁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불편한 루머를 일소하는 방향으로 기자회견장에 나섰으면 어땠을까. 카카오는 입장자료를 통해 김범수 의장과 관련된 루머를 퍼트리는 경우 법적인 책임까지 묻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당당하다는 뜻이다. 그랬다면 기자회견장에 당당하게 나서는 것도 방법이 아니었을까. 물론 굳이 벌집을 쑤시고 싶은 마음은 없겠지만 최소한 이 대목만큼은 대표의 첫 기자회견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강하게 밀고나갔어야 했다. 1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할 셈인가. 이럴 생각이었으면 차라리 '사람이 전부다'라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 출처=카카오

그래도 희망을 쏜다
임지훈 대표는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가 연출되고 있다는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를 일축하고, 매우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선에서 봉합에 나서는 분위기다. 다만 이 지점에서 임지훈 대표가 밝힌 비전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먼저 자신의 주특기인 스타트업 발굴로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대목이다. 현재 카카오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스타트업에 약 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고, 연 2조 4500억원 규모의 연관매출을 파트너와 함께 창출하고 있다.

온디맨드 사업의 강화도 천명했다. 카카오택시와 같은 O2O를 바탕으로 실물경제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수렴한다는 전략을 선명하게 발표했다. 물론 수익성 및 골목상권진입, 기존 사업자의 반발 등 험난한 가시밭이 예고되고 있으나 방향성만큼은 준수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수익개선 의지를 보여줬고, 다음 서비스 종료에 대한 나름의 이유도 충분히 설명했다. 조직의 시너지를 구현하는 대목에서도 자신감을 보여줬다.

사실 카카오는 모바일 플랫폼 시대를 주도하는 저력의 기업이다. 인터넷전문은행까지 진출하며 자신의 경쟁력을 날카롭게 다듬고 있다. 다만 '관'으로 대표되는 현실에서의 냉정한 파워게임과 더불어 애매한 논란에 대처하는 과감한 결단력의 부족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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