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공원에는 조깅보다 걷는 시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꽤 오래 전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프리카 마사이족의 독특한 걸음걸이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보폭을 성큼성큼 크게 해서 빠르게 걷는 방식이었어요.

이 ‘마사이 워킹’ 덕분에 육식 위주 식사를 하는데도 성인병이 없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서구인의 1/3정도라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시중에 마사이족처럼 걷게 도와주는 전용 신발도 나왔더라고요.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저 발 편한 운동화를 신고 뛰는 운동이 대세였던 시절, 마사이족 걸음과 마사이 워킹용 신발을 처음 접했던 조정혁(40)씨의 회고다. 요즘 ‘워킹화(걷기 운동에 적합한 신발)’ 열풍에 휩싸인 주변을 둘러보자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얘기다.

달리기의 주 무기였던 운동화가 이제는 걷기를 위해 순도 100%의 워킹화로 쏟아져 나온다. 신분만 달라진 게 아니다. 같은 워킹화라도 기능과 디자인, 컬러의 차이가 살아난다. 바야흐로 워킹화가 장소 불문, 나이 불문 주연급으로 약진하는 시대다. <편집자 주>

현재 국내에 출시된 기능성 브랜드 워킹화는 줄잡아 20여 개다. 아식스스포츠, 리복, 나이키, 뉴발란스, 푸마 등 수입 브랜드와 토종 브랜드로는 프로스펙스, 르까프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중 판매 부문 선두주자는 프로스펙스다.

프로스펙스는 2009년 국내 최초의 워킹화 라인 ‘W’를 만들었다. 걷기에 적합한 설계로 가장 바람직한 11자 워킹을 도와 몸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도록 했다. 지난 2월에는 다양한 워킹 동작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적정한 지지력과 쿠셔닝, 반발탄성을 강화한 ‘W POWER 4’ 시리즈를 내놓았다.

아식스스포츠는 인체공학 기술이 적용된 워킹화 라인을 갖추고 있다. 그 중 워킹 시 분산되는 무게중심을 가운데로 모아 팔자걸음 및 안짱걸음을 잡아주는 ‘BC워킹화’, 아식스 고유의 쿠션 시스템인 ‘젤(gel)’을 장착해 장시간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는 ‘젤 트랜드워커’가 유독 돋보인다.

르까프의 ‘더 핏’은 목적과 강도에 따라 기능을 세분화한 아이디어로 워킹화의 다양한 용례를 선보였다. 맨발로 걷는 효과를 주는 닥터세로톤 핏, 바닥에 자기장을 넣어 걸을 때 진동이 느껴지는 바이브로 핏, 근육 사용량을 늘려주는 에어 핏, 임신부에 좋은 밸런스 핏 등 4가지 제품으로 구성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낯설었던 토닝화는 리복의 ‘이지톤’을 거쳐 몸매 관리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신고 걷기만 해도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활성화한다는 기능성 워킹화가 바로 토닝화다. ‘이지톤’은 엉덩이와 다리 근육을 강화시켜 탄력 있고 건강한 각선미를 가꿀 수 있게 도와주는 국내에 처음 출시된 피트니스 토닝슈즈다.

휠라의 ‘휠라 핏’도 토닝화에 설정을 맞췄다. 밑창에 부착된 10개의 밸런스 패드가 최대 42.4%까지 다리 운동 효과 높여주는 것은 물론이다. 인위적으로 다리 근육을 긴장시키는 기존 토닝화와 달리 안정적이면서 다리 전체에 360° 토닝 효과를 준다는 취지다.

몸매 관리에 뛰어난 스케쳐스의 ‘쉐이프업스 오리지널’이나 보행 시 몸의 균형을 맞춰 주는 뉴발란스의 ‘트루발란스’도 워킹화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빛나는 존재들이다. 각 브랜드들 사이에서는 걸음걸이를 바로잡는 제품부터 각선미를 아름답게 다듬을 수 있는 제품까지 점점 워킹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추세다.

워킹화의 인기는 판매 규모로도 확인된다. 프로스펙스의 W는 출시 첫 해 30만켤레, 2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엔 그 2배가 넘는 510억원어치가 팔렸다. 통상 업계에서는 신제품이 1년간 2만켤레가 팔리면 히트상품으로 친다는데, W POWER 4시리즈는 출시 두 달 만에 판매량 5만켤레를 기록했다. 높은 인기 덕에 매장 재고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달 선보인 이후 1만켤레가 판매된 아식스스포츠의 젤 트랜드워커는 올 하반기까지 4만켤레 판매가 예상되고, 지난 3월 출시한 휠라의 휠라 핏은 현재까지 전체 물량의 70%를 팔아 높은 실적을 내고 있다.

이 같은 워킹화 붐은 2000년 마사이워킹을 표방한 스위스 기능성 슈즈 브랜드 ‘MBT’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국내 기능성 신발 전문 브랜드 ‘린’과 엠에스존 등에 이어 프로스펙스, 아식스스포츠, 리복 등 대형 스포츠 브랜드들의 걷기 전용 운동화가 잇따라 히트하면서 워킹화는 하나의 대중적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식스스포츠 마케팅부 박용석 담당자는 “워킹화가 인기를 끄는 것은 러닝화와 차별화된 기술로 가벼우면서도 충격 흡수력이 높고 오랜 시간 걷기에 적합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프로스펙스 제조업체 LS네트웍스의 마케팅팀 박주남 과장은 “일반적으로 브랜드 운동화가 6만~7만원 수준이라고 볼 때 워킹화는 10만~14만원대로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빅모델 앞세워 마케팅 전쟁

이에 따라 워킹화 브랜드들의 마케팅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김혜수(프로스펙스 W), 이하늬(리복), 김사랑(르까프), 황정음(스케쳐스) 등 완벽한 몸매를 지닌 유명 연예인을 저마다 모델로 내세우고 있는데 광고로 한판 붙어보자는 전략이다.

워킹 전용 매장을 열어 워킹 마니아를 위한 휴식공간과 맞춤형 발 계측 프로그램 및 워킹 효과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올바른 걷기 운동 방법을 체험하는 워킹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발시장의 전체 규모는 약 4조원. 그 중 워킹화 시장은 7000억원으로 매년 40~50%대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왜 워킹화에 열광할까. 일단 걷기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전용 신발을 신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회사원 김종우(42)씨는 “어떤 신발을 신고 걷느냐도 매우 중요하다”며 “워킹화를 활용한 다음부터는 발의 피로감이 줄고 운동 효과도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워킹화 바람은 걷기 열풍과 나란히 불어닥쳤다. 종합광고회사 HS애드가 지난해 만 2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 스포츠 레저 관련 태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 중에서 ‘걷기 운동’이 전체의 70.3%로 1위를 차지했다.

걷기 운동을 주 3회 이상 한다고 대답한 경우가 62%였고 시작한 시점은 최근 1년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이 43%에 달했다. 또 전체 응답자의 80%가 걷기 운동을 할 때 워킹용 전문 신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몇 년 사이 걷기가 더 이상 보조 운동이 아닌 당당한 대표 운동으로서 위상이 격상됐기 때문이다. 우선 기초체력 증진 및 전반적인 건강 관리는 물론 다이어트,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다리나 허리 등의 근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남녀노소 간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더 선호되고 있다.

아식스 워킹클럽 회원인 회사원 김혜경(39)씨는 “운동이 부족해 항상 고민이었는데 집 주변에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운동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워킹화 업계 관계자는 “걷기 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제주 올레길 걷기나 국토걷기순례 등이 인기를 끌고 관련 동호회가 부쩍 늘어났다”며 “워킹화 수요도 2~3년 전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몸짱’ 트렌드도 무시 못 할 요인이다. 군살 없이 탄력 있는 몸매를 만들어 줄 수 있는 토닝화 또한 소비자가 워킹화로 몰리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과학적인 기술력을 적용하므로 보행 자세 개선뿐 아니라 몸매 교정 및 관리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 걸을수록, 신을수록 건강해지는 신발 버전 ‘워킹화의 미학’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토닝화가 워킹화에 소속된 카테고리로 인식되고 있다. 토닝화 시장이 별도로 존재할 만큼 규모와 성장세가 매우 큰 미국과는 다른 양상이다. 하지만 특성별로 세분화되고 고객 대상을 집중화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향후 한국도 기능성 시장으로 더욱 확장될 것이란 전망이다.

워킹화, 기능도 실하지만 외모도 멋져지고 있다. 화려한 색상에 개성 있는 디자인을 가미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걷기 신드롬의 역할이 적지 않다. 운동용뿐 아니라 출퇴근, 쇼핑, 산책, 나들이 등 일상생활에서 패션아이템으로 영역을 끊임없이 화장해가는 것도 워킹화의 경쟁력.


엣지 있는 패션 트렌드로 진화

아식스스포츠의 젤 트랜드워커는 옐로·핑크 컬러를 적용해 진이나 레깅스와 함께 착용해도 잘 어울린다. 남성용은 블랙 컬러를 메인으로 운동화 끈과 아웃솔(겉창)에 옐로를 강조했다. 여성용의 경우 깔끔한 화이트 컬러에 하단 부분은 핑크와 바이올렛으로 포인트를 줬다.

케이스위스의 워킹화를 포함한 다목적 하이브리드 슈즈 ‘튜브 시리즈’는 비비드한 컬러로 스타일리시하게 신을 수 있다. 휠라의 ‘휠라 핏’은 핑크, 옐로, 그레이 등 감각적인 컬러와 미니멀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워킹화다. 나이키의 ‘루나 글라이드2’ 역시 바이올렛, 옐로 등 패셔너블한 컬러를 사용해 스타일을 살릴 수 있게 했다.

요즘 젊은 층에게는 워킹화가 필수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신세대들은 “스니커즈는 이제 한 물 갔다. 워킹화 하나로 폼 나는 패션을 완성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전문가 남주호(28)씨는 “약간 형광빛이 도는 색상이 멋스러운 나이키의 루나는 최고 인기”라며 “거의 모든 옷의 스타일을 잘 살려준다”고 말했다.

수트에는 꼭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사라진지 오래다. 워킹화를 조화시켜 ‘댄디 가이’의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 재킷과 원피스에 워킹화를 매치함으로써 색다른 오피스룩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업계는 워킹화의 인기가 앞으로도 죽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기능과 형태로 진화를 거치면서 마니아층이 생길 수 있다는 시각도 나왔다.

LS네트웍스 스케쳐스 사업부 이승훈 팀장은 “지난해 워킹화가 돌풍을 일으켰던 원동력을 기반으로 올해부터는 각 업계마다 전문적인 기능성 상품 전략과 모델 기용으로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준비 중”이라며 “국내 스포츠화 시장에서도 토닝을 비롯한 다양한 기능화 제품들이 쏟아지면서 품질과 마케팅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경쟁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야말로 워킹화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발뒤꿈치 먼저 닿아야 올바른 걷기

건강을 지키려면 바른 자세로 걸어라. 워킹 자세를 올바르게 해야 운동 중 부상도 예방할 수 있다. 걷기 운동을 할 때는 발뒤꿈치 바깥쪽으로 디디기 시작해 발바닥 중앙 바깥쪽을 거치면서 앞쪽 새끼발가락, 엄지발가락쪽으로 체중을 전달하며 걷는 것이 좋다. 이런 자세로 걸으면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근육을 단련시켜 오랫동안 걸을 수 있다. 또 칼로리 소모에도 효과적이다. 운동 전에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주고 운동 후에는 정리 운동을 해 준다.

팔방미인 돼야 최고의 워킹화

워킹화를 고를 때는 우선 발뒤꿈치 충격을 잘 흡수하고 분산하는 기능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이는 발 전체로 충격이 분산되는 러닝에 비해 걷기 운동의 경우 발뒤꿈치에 몸무게의 3배까지 충격이 몰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걸을 때 발이 흔들리지는 않는지, 발이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 보면서 직접 신어보고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이어트, 걷기 자세 교정 등 워킹 목적에 따라 기능성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8가지 체크 포인트

■발을 부드럽게 감쌀 수 있는가 ‘피트감’
■걸을 때 충격 완화는 잘 되는가 ‘쿠션성’
■굽히기 쉬운가 ‘굴곡성’
■후끈거리지 않고 편안한가 ‘통기성’
■장시간 걸을 수 있을 만큼 가벼운가 ‘경량성’
■똑바로 걸을 수 있는가 ‘안정성’
■노면을 제대로 잡는가 ‘그립성’
■오래 신을 수 있는가 ‘내구성’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