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는 자각에서 시작됐다. 자신과 집단을 자각하는 순간 신화와 전설이 생겼고, 이는 역사의 원류가 되어 특정집단의 내제화된 의식에 긴밀하게 숨어들었다. 신과 귀신, 마물과 내새의 삶은 모두 현재의 '나'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렇게 인류는 자각하고 깨달으며 스스로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물의 양이 많아질수록 컵이 넘치듯이, 한정된 영역에서의 자각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것이 폭력의 형태를 품으면 전쟁으로, 호기심에서 시작되면 무역이나 탐험으로 가면을 바꿔 쓸 뿐이다. 인류는 이동하고 뻗어나가기 시작하며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조직에 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말(馬)이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기원전 3000년 동부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말이 인류의 삶으로 들어오던 순간, 인류의 속도는 빨라졌고 덩달아 사고의 흐름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몸이 이동하며 동시다발적인 접촉의 경계선이 무한대로 증가했다. 말은, 속도는 그렇게 인류의 역사를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이는 자동차로 대표되는 이동수단의 발전적 측면에서도 동일하게 받아들여지는 명제다.

▲ 출처=픽사베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그리고 무인차
자동차는 종합제조사업이다. 120년전 칼 벤츠가 처음 개발하며 인류의 거대기반산업으로 성장한 자동차는 이제 전자 및 기계공학, 심지어 심리학까지 아우르는 종합예술영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이 주춤하는 사이, 소프트웨어 기술로 무장한 IT기업들이 자동차 산업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현재 TV시장에서 애플 및 샤오미와 같은 IT 다크호스들이 판을 뒤흔드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들은 자동차를 제조업의 정수로 여기기보다 일종의 소프트웨어를 담아낼 단말기로 생각하고 있다.

먼저 전기차다. 중국의 BYD와 미국의 테슬라가 눈부신 발전의 역사를 쓰고 있다. 특히 테슬라는 앨런 머스크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등장으로 마케팅적 측면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실 전기차는 기존의 자동차와 새로운 미래차의 접점을 나누는 매우 확실한 경계로 여겨진다. 엔진의 정의부터 운전자의 역할을 재조정하며, 기존 운송 인프라의 파괴와 에너지 혁명과도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도 있다. 여기서 구글이 가장 눈부신 진보의 역사를 쓰고 있다. 구글은 지난달 14일 존 크라프칙 임명으로 자율주행차 인프라를 더욱 끌어올리는 분위기다. 2009년부터 자율주행차 시범운영을 실시한 구글은 올해 7월까지 총 15건의 시범운영중 충돌사고를 기록했으나 구글의 자율주행차는 단 한 번도 가해차량으로 지목된 바 없다. 일단 기술적으로는 합격점이다.

구글은 지난해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차량용 OS ‘구글 오토 링크’를 발표하기도 했다.

애플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주요외신은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애플이 전기차를 확정계획(committed project)으로 지정하고 2019년 실제품을 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애플의 전기차 프로젝트는 포드 전 엔지니어 출신이자 애플의 아이폰 개발을 이끌었던 스티브 자데스키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팀 쿡 애플 CEO는 20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연례 테크 컨퍼런스에서 “자동차 산업에 거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진화가 아닌, 거대한 변화의 변곡점에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애플의 역할이 존재할 것이라는 일종의 시그널이다. 최근 다양한 루트를 통해 애플이 애플카를 개발하고 있다는 주장이 새어나오는 가운데, 이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실상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애플의 경우 전기차와 무인자율차의 명확한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애플이 전기차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자율주행차로 단숨에 교통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테슬라 등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포진해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차가 목표라는 뜻이다.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전기차는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내연엔진과 변속기를 전동기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후발주자가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진입할 수 있다.

기본적인 전략의 유연성도 꼽힌다. 애플이 구글과는 다르게 차량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 단서다. 이는 애플이 자율주행차를 선보이기보다 전기차를 먼저 선보여 이를 사실상 아이폰으로 만들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자동차를 거대한 아이폰으로 바꾸는 작업이 먼저, 제조 및 실제적인 작업은 협력사가 맡는 전형적인 아이폰 로드맵이다. 물론 팀 쿡 CEO가 “자동운전이 중요하다”는 말을 남겼던 만큼, 최종적으로 자율주행차를 염두에 두며 전기차와의 물리적 간극을 최대한 줄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카플레이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삼성전자도 출사표를 던졌다. CES에서 갤럭시 기어로 BMW의 전기 자동차인 ‘i3’를 제어하는 다양한 상황을 연출했던 삼성전자는 IFA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현재 삼성은 인텔, NTT도코모 등과 협력해 자동차 전용 타이젠 버전을 개발하는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삼성이 전자의 틀을 벗어나 이색적인 행보를 보이는 지점이다.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미래차 경쟁의 주도권을 바닥부터 장악하겠다는 포부다. 실제로 삼성은 최근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의 자동차 전장부품 경쟁력을 삼성전자에 일원화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대형 인수합병을 전제에 두고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배터리 등의 수직 계열화를 노리고 있다.

이는 LG의 행보와 묘하게 겹친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LG화학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아예 2013년 LG전자에 전담 자동차 팀을 만들었다. LG CNS의 자회사 'V-ENS'를 합병해 VC(Vehicle Components)사업본부를 신설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GM과의 잭팟을 통해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가혹한 조직재편의 칼바람 속에서도 VC부문은 꾸준히 인력이 늘어나고 있다. LG의 전자 계열사 경쟁력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을 성공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사실 구글과 애플도 마찬가지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존 완성차 업체들과 협조하며 이들에게 부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로 미래동력을 장악하겠다는 일종의 '바닥근본설'이 핵심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독자 운영체제인 타이젠의 자동차 버전을 공격적으로 연구하며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부품사업 측면에서는 LG의 행보를 따라가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여기에 기존 자동차 업체의 노력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무인차다. 자율주행차와 오인되기는 하지만 자율차는 일종의 지상을 달리는 드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매우 오묘한 설명이 필요하며, 자율주행차의 미래이자 현재의 가능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애플카 컨셉 이미지.

신시대를 빨리 만날까?
사실 업계에서는 전기차의 경우 기존 자동차 업계와 정면승부가 가능하다고 봤다. 동력이 다르고 다양한 인프라가 판이하지만 현재의 법과 체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성공 가능성과는 별개로, 당장 게임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차와 무인차의 경우 기술적인 진보는 빠르게 일어난다고 해도 기존의 법과 체계, 여기에 IT다크호스를 경계하는 기존 자동차 업계의 강자가 구사하는 '경계태세'에 걸려(전기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지만)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런 이유로 구글이 자율주행차를 준비하며 동맹군인 우버와 파열음이 발생했을 당시, 업계에서는 기술을 선보이는 선에서 법과 체계를 당장 바꾸는 것을 주특기로 삼는 구글의 전략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법과 체계의 굳건함이 여전항 상태에서 묘한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기술적 발전도가 상당부분 인정을 받은 지점에서 의외로 빨리 변화가 찾아올 조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먼저 패러다임의 변화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뒤흔든 폭스바겐 사태 이후, 소위 전기차가 주목받고 있다. 물론 폭스바겐의 디젤이 친환경과 관련된 논란을 겪으며 전기차가 주목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실제적인 동력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중요한 문제이지만 친환경은 특정사업의 부흥을 완벽하게 끌어내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 차인가?'라는 질문도 문제다.

▲ 테슬라 전기차. 출처=픽사베이

하지만 디젤을 택한 시장의 결정이 전기차의 발전으로 수렴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굳이 주식시장의 변화를 말하지 않아도 이러한 현상은 전기차의 현실성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모호하지만 최소한 많은 이들의 뇌리에는 폭스바겐 사태를 거치며 전기차의 존재감이 더욱 강렬하게 박혔다. 실제적이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변화다.

여기에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무인차에 대한 수요가 법과 체계가 굳건한 상태에서도 일정부분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에 집중하자. 최근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회사 '리지에 그룹(Ligier Group)'과 로봇 전문회사 '로보소프트(Robosoft)'의 합자회사인 '이지마일(EasyMile)'이 공동으로 개발한 무인 전기버스 위팟(WEpod)을 보자. 올해 11월 30일부터 네덜란드 지역에서 운행되는 이 버스는 12명에 불과한 탑승인원과 17분밖에 되지 않는 운행시간 등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 전 지역에 무인 교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유럽연합의 전략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시티모빌(Citymobil)2'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유럽연합은 일종의 인프라 변혁을 꿈꾸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비전 중 하나가 법과 체계를 바꾸는 것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흥미롭다. 법과 체계의 주관자가 나서기 시작한 대목은 우리에게 상용화 시기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일본에서는 법과 규제에 대한 정부차원의 진지한 담론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무인자동차가 사고를 낸 경우 책임소재 등에 대한 법적 검토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오는 2020년을 목표로 법을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에도 이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에 대한 다양한 규제완화를 검토하는 가운데 스마트시티를 추구하는 대구시의 행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 19일 프랑스 파리의 르노 본사에서 직접 전기차 트위치를 몰아보기도 했다.

법과 체계의 틀 안에서, 자율주행차와 무인차가 활용되는 경우도 포착된다. 주요외신은 지난 19일(현지시각) 세계 주요 광업업체인 리오 틴토가 서호주 필바라 지역의 얀디쿠지나 광산과 나물디 광산에서 철광석 운송에 무인트럭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쉬는시간이 없이 운행될 수 있으며, 기사휴식도 필요없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동하고 작동하게 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IT 다크호스들이 주도하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무인차는 기술적 완성도를 끌어 올리며 나름의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법과 체계가 이들을 모두 품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당장의 상용화는 어렵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러나 최근 법과 체계를 다루는 주체인 정부가 경쟁적으로 이들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과, 통상적인 교통 인프라가 아닌 특별한 상황, 즉 정교하게 계산된 산업의 일부에서 활용되는 운송영역에서 자율주행차와 무인차의 상용화가 의외로 빨리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다양한 이유로 경비절감을 추구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업들의 욕구가 맞아 떨어지며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물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무인차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기술적 진보성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100%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법과 체계는 아직 굳건하며 일부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지만 이를 전향적이고 파괴적인 혁신의 전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약간 고전적인 주제지만 실직자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다. 지금, 우리 모두가 생각하던 고정관념이 의외로 빨리 바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