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캘리포니아 대학이라면 UC 버클리와 UCLA를 우선적으로 꼽지만 센트럴 밸리의 중심에 위치한 UC 데이비스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농업 분야의 연구 중심 대학이다. UC 데이비스 지도자들은 21세기 세상에선 다양한 실무능력을 갖춘 새로운 영농 인재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농업과 식량 시스템을 만들어갈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 서로 다른 8개학과를 결합해서 현장에서 체험 학습할 수 있는 생명 과학, 경제, 인문학 과정을 만들었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특히 교실 밖에서 이뤄지는 인턴십이나 현장실습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이런 과정은 학습성과를 단순히 점수로 매기는 방식은 적합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를 차별화 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낸 것이 바로 ‘디지털 배지’ 시스템이다.

학부생이 가장 배우고 싶고 필요한 지식, 기술, 경험이 무엇인지 식별하기 위해 실무자, 학자, 학생들을 상대로 상세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대학을 졸업한 인재가 갖춰야 할 7 가지 핵심역량을 정리했다. 즉, ‘시스템적 사고력’, ‘실험과 질문능력’, ‘가치 이해력’, ‘대인간 소통력’, ‘전략적 관리능력’, ‘시민 참여능력’, ‘개인개발 능력’ 등이다.

미래인재의 일곱 가지 핵심역량

‘시스템적 사고력’이란 학생들이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관점을 통합하여 복잡한 시스템을 분석하는 능력이다. 전체적 관점에서 복잡성을 이해하고 각 부분품들이 전체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깊이 있게 사고하는 능력이다. ‘실험과 질문능력’이란 학생들이 질문을 만들고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의 부족한 점을 메우는 방법을 찾고 견실한 실험계획을 세우고, 현존하는 실험법과 관점들을 익히고, 과학적인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실험하고 과학적 발견과 실용적 지식을 종합하는 능력을 말한다. ‘가치 이해력’이란 학생들이 자신이 갖고 있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평가해보고 전혀 다른 관점이나 패러다임에서 가치를 재조명해보고 데이터를 넘어서 가치가 형성해 주는 상업성, 연구성, 정책성, 미치는 작용 등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대인 간 소통력’이란 학생들이 협력팀을 구성해서 조사된 내용을 발표하고 대중에게 전달하고 서로 실험적 접근법과 관점을 타협할 줄 알고 중요한 쟁점을 다루는 일에선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전략적 관리능력’이란 학생들이 미래의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정보에 작 적응해 처리하고, 인력과 자원을 최대 효과가 나도록 투입하는 등 개입해야 할 요소들을 집합적으로 정리하고 적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시민 참여능력’이란 학생들이 정치적 또는 비정치적 활동을 통해서 시민사회가 변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전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문제들을 최소한 자신의 일로 생각하며, 정보에 근거해 판단하며, 적절한 때에 행동으로 참여하는 능력을 말한다. ‘개인개발능력’이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깊이 이해하고 생각하며 학습하는 자세를 말한다. 자신의 행동이나 견지해야 할 기준이 명확해도 다른 의견이나 신념을 배려하며 애매함을 인정할 수 있다. 학생들은 예절, 감수성, 존엄성이 허용하는 범주 내에서 자신의 일을 개성 있고 다양하게 표출하는 능력을 갖는 경우를 의미한다.

UC데이비스 디지털배지.

이 핵심역량들은 ‘디지털 배지’로 표현하고 각 역량은 다시 단계별로 기능(Skill), 지식(Knowledge), 명예(Honor), 경험(Experience), 자신감(Competence) 등 5단계 배지로 구분하고 교육 내용을 달리했다. 즉, ‘기능 배지’는 문제해결법, 사고법, 시스템 및 제도, 전문가와 사람들의 기능, 농장실무, 보존법, 관찰 및 구분법, 연구방법, 컴퓨터, 경제적평가법, 장비, 디자인, 비즈니스, 마케팅, 실험법·정량화 기법 등을 이수하면 받는다. ‘지식 배지’는 토양, 생태환경, 해충, 물, 경작 기술, 연구기법, 철학과 윤리, 비즈니스·경제학, 정책, 동물과학, 마케팅, 식물과학, 사회적 연구, 지식 습득법, 역사, 기타 자연과학 등에 대한 지식을 쌓는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경험 배지’는 인턴십, 방문·견학, 교습법, 기획·관리, 연구, 네트워킹 및 집단 구축법, 실무경험, 소통, 실험실, 환경, 비즈니스, 마케팅 등의 과정을 이수한 경우다. ‘명예 배지’는 기능 배지와 지식 배지를 취득하면 바로 수여하고, ‘자신감 배지’는 ‘기능 배지’, ‘지식 배지’, ‘경험 배지’까지 모두 취득하면 주어진 특별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능과 능력 그리고 지식이 조합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보아 수여한다.

개인 역량을 포트폴리오 타일로 만든다

지금까지 대학에서 받은 학위증이나 성적표는 이를 발급해준 기관의 권위에 미루어 짐작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상급 교육기관에 진학할 때마다 필요한 일종의 신임장을 학교 졸업장과 성적표로 대신해 왔다. 그러나 ‘디지털 배지’는 단순히 공인된 고등교육기관을 졸업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디지털 배지’로 표현된 일을 처리할 역량이 있고 활용할 수 있다는 징표로 삼는다는 개념이다. ‘디지털 배지’는 단순한 성적표나 이력서 또는 작업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멋진 자기 표현법이다. 요즘 말로 공증받은 스펙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디지털 배지’들을 온라인에 전시하여 온라인 프로파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프로파일 속엔 자신의 경험, 학습내용, 사진들, 그래프, 심지어 평가점수까지도 상세히 서술할 수 있다. 자신을 평가하는 일종의 계기판 같은 것으로 개인의 포트폴리오 타일로 이뤄진 정보판이다.

‘디지털 배지’ 제도가 정착되면 대학의 성적표는 응시자의 능력을 파악하는 참고자료도 되지 못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정보가 되고 만다. UC데이비스 교육자들은 농업 분야에 ‘디지털 배지’ 제도를 시험 적용해봤지만 ‘디지털 배지’는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 학생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기업, 전문기관, 개인 학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는 시스템으로 활용될 수 있다. 즉, 자신에 맞는 학습목표를 세우고 이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학습을 통해 배지를 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역량을 쌓아가듯이 배지를 구축해 간다고 할 수 있다.

UC 데이비스가 ‘디지털 배지’ 제도를 시작한 지 2~3년 되면서 많은 그룹이나 기관들, 그리고 공동체들이 ‘디지털 배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온라인 교육기관인 칸(Khan) 아카데미에선 이미 온라인 학습실적에 따라서 다양한 배지를 수여하고 있다. 즉, 30일간 연속해서 학습비디오를 청취하면 ‘원자시계’란 배지를 수여한다. 100일 동안 연속해서 어떤 주제로 학습 비디오를 계속 보면 ‘10,000년 시계’ 배지를 수여해 준다. 뿐만 아니라 학습과정을 완료할 때마다 해당 과정의 ‘도전 완료’ 배지를 준다. 이런 배지들은 수도 없이 다양하며 자신이 획득한 배지들은 자신의 게시판에 게시되므로 실적을 점검하면서 학습의욕을 불태울 수 있다. MIT와 하버드대학이 운영하는 온라인 교육 edX 과정도 약간의 수강료를 받고 수료증을 ‘디지털 배지’로 수여한다. 카네기 멜론 대학교이 운영하는 컴퓨터과학 관련 온라인 교육과정에서도 STEM관련 주제의 강의를 수강하면 ‘디지털 배지’를 수여해 준다. 팬 스테이트대학에선 ‘디지탈 배지’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 퍼듀대학교, 인디아나 대학교, 남 캘리포니아대학교, 일리노이스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스 대학교 시카고 등도 ‘디지털 배지’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디지털 배지’는 학벌주의를 탈피할 수 있는 돌파구다

‘디지털 배지’ 제도는 모바일 연결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갖추었는지를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인증해주는 인적 자본의 평가 기준이다. 지금까지 대학이 독점했던 교육 기능과 자격인증 기능을 앞으로는 따로 분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대학은 교육만 하고 자격인증사업은 비영리기관에 맡기는 방법이다, 대학은 심오한 연구 활동과 학문의 경직된 벽을 뛰어넘는 실용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균형 잡힌 기능이 필요하다. 공개된 디지털 자격증명 운동은 일부 대학들에겐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까지 기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론 대학의 정원을 채우지 못할 만큼 학령인구가 줄어든다. 반면에 온 국민은 100세까지 살면서 평생교육을 통해서 제2, 제3의 인생을 준비해야만 한다. 새로운 기술과 문명을 다시 배우고 습득하는 기회가 많이 열려야만 한다. 그렇다면 공공교육을 담당했던 대학들이 앞장서서 평생교육의 장을 펼쳐주고 각 과정별로 학업성취도를 ‘디지털 배지’로 인정해 주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학벌시스템에 갇혀있는 인재육성의 길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역량을 재설계할 수 있는 ‘디지털 배지’ 제도가 고령화 사회가 구축해야 할 평생교육 시스템을 실무능력과 연결하는 고리가 될 수 있다.